지난해 국정감사장에 섰던 전명규 교수. 사진=일요신문 DB
전명규 교수에 대한 정부의 칼날은 2018년 초 시작됐다. 왕따 주행 등 곪았던 빙상계 내부의 문제가 드러나며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의 특별 감사가 시작됐다. 문체부는 2018년 3월 26일부터 4월 30일까지 5주간 50명에 이르는 관계자의 진술을 토대로 나온 전 교수의 전횡 대부분을 확인했다. 페이스 메이커의 실체가 드러났으며 한체대 출신 특정 선수에게 특혜를 제공해 온 부분 역시 세상에 알려졌다. 국가대표 지도 개입은 일상다반사였다.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으로 전 교수 징계 요구가 갔고 배임 및 공정거래 위반 의혹은 경찰청으로 수사 의뢰가 들어갔다. (관련 기사: ‘빙상 대부’ 전명규, 삼성이 쥐어준 칼 마음껏 휘둘렀다)
문체부가 빙상연맹 문제에 집중했다면 빙상 선수의 생애를 전부 장악할 수 있었던 전명규 교수 중심의 한체대 카르텔 문제는 교육부가 맡았다. 전 교수 문제가 언론에서 지적되자 교육부는 2018년 4월 23일부터 이틀에 걸쳐 조사에 착수했다. 그런 뒤 2018년 5월 23일 문체부가 특별감사 때 추가로 조사해야 할 부분을 정리한 사실통보를 교육부에 보내자 교육부는 5월 28일부터 사흘 동안 한체대 추가 조사에 나섰다. (관련 기사: ‘한체대-국대-실업팀’ 손아귀에…전명규가 쌓아 올린 ‘빙상 캐슬’의 실체)
2018년 7월 5일 교육부는 전명규 교수를 중징계하라고 한체대에 일렀다. 조사 결과 전 교수는 2013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모두 69번에 걸쳐 수업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섰다. 89시간 수업 결손이 발생했다. 빙상장 부당 사용에 개입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조교에게 학교발전기금 기탁을 강요하고 골프채 구매 비용을 대신 내도록 한 ‘갑질 의혹’은 검찰로 넘어갔다.
교육부는 다시 나섰다. 올해 2월 11일부터 17일간 추가 감사를 벌였다. 심석희 성폭행 의혹으로 비롯된 감사였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명규 교수는 빙상장 라커 룸에서 사설 강사가 수강생을 폭행한 사건을 무마하려 피해자 학부모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하거나 피해자의 지인을 동원해 피해자가 합의토록 압박했다. 피해학생과 격리조치를 통보 받았지만 제3자를 거쳐 피해학생과 소통해 졸업 뒤 거취를 거론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접촉했다. 2018년 문체부 특정감사 직전 폭행 피해 학생의 아버지를 만나 감사장에 출석하지 말도록 회유하기도 했다.
최근 15년 동안 부양가족 변동신고를 하지 않고 가족수당 및 맞춤형 복지비 총 1252만 원을 부당 수령한 사실도 확인됐다. 빙상부 학생이 훈련용으로 협찬 받은 400만 원대 자전거 2대를 빼앗고 가품 스케이트화 24켤레를 납품 받은 뒤 정품 가격인 5100만 원을 지급 받게 한 부분은 아예 검찰로 고발됐다.
정부 기관의 한 차례 조사와 두 차례 감사에도 전명규 교수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문체부 감사 뒤 징계를 받기 전 빙상연맹 부회장직에서 사퇴해 급한 불을 껐다. 2018년 교육부 조사 뒤 중징계 요구를 받아 결국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지만 훈장 감경을 이용해 ‘감봉 3개월’로 바꿔 받았다.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포상 감경을 받을 수 있다. 전 교수가 받은 체육훈장 ‘청룡장’은 1차 방어막이 됐다.
올해 있었던 교육부 감사를 통해 한체대는 또 다시 중징계 요구를 받았다. 전명규 교수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한체대에서 수업 배제 조치를 받았지만 지난 7월 초 학교 빙상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날 정도였다.
보호막이 된 건 안용규 한체대 총장이었다. 안 총장은 총장 선거 때 우호 세력이 돼줬던 전명규 교수에 대한 처분과 관련해 적당한 선에서 끝내야 된다는 식의 입장을 피력한 바 있었다. 하지만 안 총장은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안 총장이 청와대 인준을 받기 직전 함께 식사를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손아래동서 김한수 배재대 부총장까지 한체대의 최근 행보에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 까닭이다. 김 부총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전명규 교수를 둘러싼 최근 한체대의 움직임에 대해 “난 그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안다. 고쳐야 할 점,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기득권 때문에 난관이긴 하다. 단호한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었다. 안 총장과 한체대 동기 출신인 김 부총장은 최근 교육계의 큰손으로 불린다.
결정적인 건 최근 전명규 교수를 중심으로 관찰된 미묘한 기류다. 전 교수 거취 문제가 이번에는 대충 수습되기 힘들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7월 초 정부 최고위직 후보군에 한체대 교수 2명이 하마평에 올랐다. 두 교수 모두 7월 중순에 있었던 1차 인사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안용규 한체대 총장 선거 운동을 7년 동안 해온 인사로 안용규 총장의 후한 지원을 받았으나 제자의 논문 바꿔 치기를 총지휘했다는 윤리적 문제로 탈락했다.
긴급 기자회견 때 전명규 교수 주변에 섰던 한체대 교수 2명. 이 장면은 인사 검증 때 주요 검증 자료로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사진=YTN 갈무리
특이한 점이 발견된 건 하마평에 올랐다가 인사 검증에 실패한 또 다른 교수였다.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교수는 전명규 교수와의 인연으로 퇴짜를 맞았다고 알려졌다. 전 교수의 기자 회견 때 이 교수가 동행했다는 부분이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까닭이었다. 1월 2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 때 이 교수가 실제 전 교수를 비호하며 주변에 맴돈 장면이 YTN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와 같은 사실이 정부와 정치권에 전해지자 전명규 교수의 최고 우호 세력이었던 인사의 선 긋기도 하나씩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역시 최근 전명규 교수와의 선 긋기에 나섰다는 게 체육계 관계자의 반응이었다. 이 회장은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렸다. 국빈급 IOC 위원이 된 이기흥 회장의 꿈은 이걸로 멈추지 않는다. 불교계와 정치권 복수 이상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기흥 회장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체육계 인사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는 데에 필요한 건 비단 그가 가진 세력 크기만이 아니다. 윤리성은 기본이며 최근엔 친여성적 행보가 필요조건이 됐다. 이기흥 회장은 이 부분에서 유독 취약한 인물이다. 심석희의 부친 심교광 씨에 따르면 이기흥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전명규 교수와 심석희를 만난 자리에서 심석희를 폭행해 문제가 된 조재범 전 코치의 귀환을 약속한 바 있었다. 이 회장은 ‘일요신문’이 이를 보도하자 “그런 적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 교수가 긴급 기자회견 때 “이 회장이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었다”고 이 회장의 해명을 거짓으로 만들어 버렸다. 각종 로비 등으로 꾸준히 구설수에 오른 이 회장에게 전 교수와의 깊은 관계는 일촉즉발의 폭탄인 셈이다. 전 교수와의 거리 두기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반응이었다. (관련 기사: [단독]심석희 앞에서 “조재범 살려주겠다”고 말했다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던 7월 한체대는 전명규 교수의 직위 해제 소식을 알렸다. 한체대는 7월 17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전명규 교수를 직위 해제했다고 8월 6일 밝혔다. 포상 감경 카드를 재활용하더라도 최소 정직, 해임, 파면 등의 중징계가 예고된 셈이다. 지난해 교육부의 1차 중징계 요구 때 한체대는 직위 해제 없이 처분을 내렸다. 포상 감경을 거친 경징계 ‘감봉’이었다. 이와 같은 한체대의 공식에 따르면 지금 조치된 직위 해제는 최소 정직을 의미한다. 한체대는 9월 16일까지 징계위원회를 열어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나란히 선 전명규 교수(가운데)와 이기흥 회장(왼쪽). 사진=일요신문 DB
하지만 아직도 한체대 내부에서는 전명규 교수를 보호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알려졌다. 최고의 실적을 자랑하는 교수라 한체대 자체의 명성을 높여줄 가장 큰 카드인 까닭이다. 또한 한체대 내 전 교수 비호 세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문제는 전명규 교수가 맞닥뜨려야 파고가 교육부 징계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올 초 준사법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 구성된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과 긴밀한 협조를 거쳐 학생 선수에 대한 폭력·성폭력 피해 실태를 철저한 조사 등을 약속한 바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최근 빙상계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게 끝이 아니다. 문체부 특별 감사 뒤 경찰로 향했던 수사 의뢰와 교육부 조사와 감사에 따른 고발은 현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지휘 아래 여전히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전명규 교수가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으면 퇴직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솜방망이 처분을 했다간 닥쳐올 후폭풍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특히 고 노진규의 골육종 사망 관련 과실치상 및 과실치사, 폭력 등에 대한 추가 조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전명규 교수의 아킬레스 건이라고 알려졌다. 이번에 합당한 징계가 나오지 않을 경우 한체대 총장이 곧 있을 국정감사장에 설 수 있다는 게 여야 주요 의원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전명규 교수는 최근 나름의 방어막 구축에 힘쓰고 있다.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일부 언론인에게 전화를 돌려 자신의 억울함을 알렸다고 전해졌다. “교육부 감사가 잘못됐다”, “검찰은 내 편”이라는 식의 항변이었다. 몇몇 언론사는 전 교수의 이런 해명을 알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전명규 교수는 언론에 이를 알리는 동시에 감사 결과에 대해 재심의를 요구했다. 징계를 감경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교육부의 반응은 싸늘했다. 중징계를 요구했던 최초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9월 16일까지 있을 한체대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온 국민의 눈이 쏠리고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전명규 나비효과에 청와대까지 흔들려 전명규 교수의 날갯짓이 청와대를 덮친 태풍이 됐다. 7월 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손아래동서인 김한수 배재대 부총장의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은 “배재대는 2012년 이미 부실 대학으로 선정됐고 작년에도 교육부 1차 평가에서 탈락됐는데 최종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바뀌었다”며 “이렇게 평가가 뒤바뀐 데는 대통령 동서인 김한수 교수의 역할이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교육부는 대학별 등수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김한수 교수는 어떻게 등수를 알았겠느냐”며 “상식적으로 교육부나 청와대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입수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한 “건양대에서 학과장까지 했던 김 교수가 배재대에서 교양 과목 한 강의만 가르치는 교수로 작년에 이직한 뒤 1년도 되지 않아 부총장으로 승진했다”며 “이런 파격 인사는 자율개선대학으로 변경된 것에 따른 대가가 아니냐”고 말했다. 김한수 부총장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배재대의 평가 점수를 언급한 바 있었다. (관련 기사: 대통령 동서 행보에 시끄러운 교육계…한체대 총장 인준에 쏠리는 눈) 곽상도 의원의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평소 품위 있는 답변으로 유명했던 이낙연 총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의원님의 억측력은 제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반박했다. 이튿날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곽 의원을 향해 “이쯤 되면 스토커 아니냐”며 “곽 의원이 어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대통령 동서의 대학평가 개입 의혹 등을 주장하며 공작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아들·딸·사위·손자에 이어 동서까지 불법적인 뒷조사로 근거 없는 ‘신상털기’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의원의 의혹 제기 토대가 된 언론의 취재를 불법적인 뒷조사로 낙인 찍을 정도로 더불어민주당은 당황했다. 전명규 교수의 이승훈, 김보름 특혜설이 2017년 최초 제기됐을 때 이 사건이 문재인 대통령의 친인척 관련 의혹까지 이어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전 교수의 전횡 문제가 빙상연맹에만 국한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중심에는 한체대가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전명규 교수의 문제는 한체대의 구조적 문제로 재조명되며 곪은 엘리트 체육의 치부가 하나씩 드러났다. 전 교수 외 한체대 교수진의 전횡이 폭로됐다. 자연스레 교수진의 자격 논란으로 불은 옮겨 붙었다. 논문 표절과 조작으로 실적을 쌓아 임용된 교수가 차례로 도마 위에 올랐다. 안용규 총장도 논문 표절과 조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시기는 안 총장이 교육부의 임용 제청과 청와대 인준을 기다리는 시점이었다. 이때 안 총장은 김한수 부총장의 식사 자리가 확인됐다. (관련 기사: 또? 추가로 발견된 안용규 한체대 총장 당선인 표절 정황) 전명규 교수에서 쏜 작은 공은 그렇게 대한민국 권력 최정점으로 향했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