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의정부에서 열린 민주당 정당연설회에 참석한 정대철 대표(왼쪽). 임준선 기자 | ||
정치권이 온통 당 개혁을 놓고 격심한 내부 진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 치러지는 이번 재·보선 결과가 내년 총선의 핵심변수인 정계개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 신·구 세력 간에 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치와 향후 대응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 자당 후보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인으로서의 도리겠지만 양당 모두 재·보선 이후의 당 개혁과 지도부 개편을 둘러싼 신·구 세력 간의 일대 격돌을 염두에 둔 탓인지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채 각각 서로 다른 선거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21일 현재까지 국회의원 재·보선이 실시되는 3곳(서울 양천 을-경기 고양 덕양 갑-경기 의정부)의 판세는 한나라당이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개혁국민정당이 고전중이란 것이 정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호남 소외론’의 영향 탓에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인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이탈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대적으로 당 조직이 튼튼한 한나라당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실제 경기 고양 덕양 갑의 경우 호남출신 유권자가 28%로 영남(10%), 충청(18%)보다 훨씬 많고 서울 양천 을도 호남출신 인구가 대략 3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으로서는 ‘호남소외론’의 덕을 단단히 볼 것이란 예상. 특히 이번 재·보선이 유권자들의 심한 무관심 속에 투표율이 기껏해야 30% 선에 그쳐 전형적인 ‘조직선거’의 양상을 띨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이런 분석은 힘을 얻고 있다.
▲ 지난 10일 의정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정당연설회에서 활짝 웃고 있는 박희태 대표 대행(오른쪽). | ||
신주류 지도부는 특히 동교동계 등 구주류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기 고양 덕양 갑에 개혁당 유시민 후보를 연합공천하고, 서울 양천 을에도 범 동교동계인 한광옥 최고위원 대신 양재호 변호사를 공천한 터라 선거 패배시 제기될 ‘책임론’에 벌써부터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형편. 이들은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22일 청와대 만찬을 계기로 ‘호남 소외론’이 진화되기를 기대하는 한편 호남 지역 의원들을 선거지역에 적극 투입해 선거구 내 ‘호남 정서’를 다독이는 데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호남출신이 다수인 구주류 인사들은 신주류측의 애타는 지원 요청에 냉담한 반응이 대부분. 이들은 재·보선에서 민주당 이 고전하는 것은 대선 이후 당을 장악한 신주류측이 당 개혁을 앞세워 자신들을 청산 대상으로 몰고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권 유권자들에게 배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이번 기회에 신주류들의 기를 단단히 꺾어 놓겠다는 입장이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신주류들이 개혁당과의 선거 공조나 후보 공천 등 재·보선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자기들끼리 독단적으로 결정해 놓고 이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 아닌가. 더군다나 노 대통령 핵심 측근이라는 사람은 우리 더러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다’고까지 하지 않았나. ‘호남 소외론’만 해도 그렇다. ‘산토끼 잡느라고 집토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 얘기했는데 그때는 ‘구시대적 발상’ 운운하며 들은 척 만 척 하더니 이제 와서 등돌린 호남 민심을 어떻게 돌려세우란 말이냐”고 잘라 말했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신주류 한 의원은 “이번 재·보선에서 우리 당이 패배하면 DJ정권의 부정적 시각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동교동계와 일부 지구당위원장들이 사사건건 당의 개혁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재·보선 참패가 당의 내분을 폭발 직전 수위로 끌어올리면서 당내에서 책임소재를 놓고 갈등이 생길 것이다. 이 와중에 우리들은 개혁을 명분으로 내걸고 참신한 인물들을 영입해 새로운 정당으로 환골탈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도 “민주당이 분당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청와대와 코드가 맞지 않아 같은 당에 함께 있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참여정부가 민주당에 의지해 국정운영을 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재·보선에서 여당이 패배할 경우 이를 명분으로 한 개혁신당 창당이 공론화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한나라당도 내부 사정이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대체로 재·보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당내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선거 이후에 대한 ‘계산’이 다르기 때문. 특히 개혁파의 경우 이번 재·보선이 비록 수도권에서 치러지기는 하지만 전반적인 민심 향배를 파악하기 어려운 ‘지역-조직 선거’임에도 보수파들이 선거 승리를 내세워 당 개혁작업에 브레이크를 더욱 강하게 걸 것이란 점을 고민하고 있다.
개혁파들은 드러내진 않고 있지만 이번 재·보선이 한나라당의 ‘전승’ 또는 386세대인 오경훈 후보가 나선 서울 양천 을에서 지는 것을 전제로 한 ‘1승2패’로 나타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개혁파들의 ‘눈’으로 보면, 경기 의정부에 출마한 홍문종 후보는 과거 DJ정권에서 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복당한 ‘철새 정치인’이고 경기 고양 덕양 갑의 이국헌 후보도 고령(67세)에다 보수성향이 강해 원내에 진입할 경우 보수파들의 입지만 확대시킬 것이란 예상에서다.
개혁파의 한 의원은 “노무현 정권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만을 기대하고 있는 민정계 중심의 보수파들은 실제와는 달리 이번 재·보선을 두고 ‘새 정권에 대한 심판’ ‘17대 총선의 예고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마 보수파들은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면 ‘역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정 지지층 관리’라며 당 개혁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높일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우리 당의 고정 지지층은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듯 이제 영남권뿐이다. 결국 보수파의 주장은 내년 총선도 ‘한나라당=영남당’의 틀로 치르자는 얘기며 그렇게 되면 당의 변화와 인적 물갈이는 물 건너 가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걱정을 토로했다.
반면 보수파들은 개혁파의 주장을 ‘철없고 해당적인 발상’이라 규정하면서도 재·보선 승리가 굳어진 만큼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분위기. 영남권 한 중진의원은 “무계획적인 개혁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어떤 것인지 이번 재·보선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 그 친구들(개혁파)도 이제라도 정신차려 당의 화합에 동참하든지 아니면 그들의 본심인 ‘노무현 속으로’ 들어가든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