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금감위원장들이 비리연루 혐의로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0년 7월 금융노 련 총파업 대책 협상 당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이용근 금감위원 장의 모습. | ||
이들은 지난 98년 금감위라는 새로운 조직이 탄생하면서 경제계에서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IMF사태로 재벌들이 구조조정에 직면했을 때 이들의 말 한마디는 그야말로 ‘법’이었다. DJ정부 초기 경제계를 움직이는 가장 파워있는 인물이 금감위원장이었다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권력은 시간이 가면 부패하는 것일까. 이들은 DJ정부가 끝나기가 무섭게 직·간접적인 비리 혐의로 국정감사와 검찰에 출두한 사람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공통점을 갖게 됐다.
이처럼 최근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이 잇따라 비리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 8일에는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이 나라종금의 안상태 전 사장으로부터 4천8백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됨에 따라 이헌재 초대 위원장, 이근영 위원장 등과 함께 역대 금감위원장 전원이 국정감사나 검찰에 불려가는 낯부끄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금감원과 금감위의 분위기는 침울하기 그지없다. 최근 금감원은 일부 직원들의 보직을 이동시키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지만, 금감원과 금감위 직원들은 외부의 시선이 따갑기만 한 듯 보인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여태까지 금감원을 ‘권력기관’으로 보는 시선들이 많아 극구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왔는데, 역대 수장들이 줄줄이 검찰로 소환돼 이런 의혹의 눈길을 더 받게 돼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역대 위원장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불려간 걸 보면 ‘금감위장 자리=노른자위 자리’라는 항간의 소문들을 보여주는 일례가 아니겠느냐”며 비꼬기도 했다.
어찌됐건 ‘금융기관의 파수꾼’인 정부 고위 관료 전원이 각종 의혹에 연루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재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듯싶다.
금융감독위는 건전한 신용질서,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 등을 확립하고, 일반 예금자 등 금융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1998년 4월1일 발족된 국무총리 소속의 정부 기관. 금감위가 생긴 배경에는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이 있었다.
▲ 초대 금감위원장을 지낸 이헌재씨(왼쪽)는 국감에 불려갔 었고, 3대 위원장 이근영씨(오른쪽)는 검찰에 소환될 예정 이다. | ||
이렇다보니 당연히 이 기관을 이끌어가는 수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 기관의 초대 위원장으로 나선 사람은 이헌재씨. 이 위원장은 지난 1998∼2000년에 제 1대 금감위장 자리에 맡게 된다. 초대 위원장이라는 자리가 그러하듯이 그는 강력한 리더십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이제 막 출범한 금감위와 금감원의 항로를 결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는 약 7개월간 제 3대 재경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01년 대우그룹 특혜지원 차원에서 부실채권을 매입한 것과, 매각과정에서의 비리 의혹, 정부 감시감독의 실패 및 공무원 책임문제 등을 국정감사에서 집중 추궁받았다. 또 지난 98년 대우사태 때도 이 위원장이 당시 이규성 재경부 장관에게 64조원 가량을 지원해야 한다고 건의한 부분과 관련해 추궁을 받아야 했다.
1대 위원장에 이어 지난 2000년 1월∼8월까지 위원장을 맡았던 이용근 제 2대 금감위장의 경우는 아예 구속된 상황이다.
이 전 위원장은 이헌재 전 위원장처럼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돋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당시에 근무했던 금감원 한 관계자는 “이용근 위원장의 경우는 소박하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한 분이었다”며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강력한 리더십보다는 온화함으로 조직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기억되는 이 전 위원장은 지난 8일 검찰에 의해 구속수감됐다. 이 전 위원장의 혐의는 나라종금의 안상태 전 사장으로부터 총 네 차례에 걸쳐 4천8백여만원을 수수한 것이다.
현재 그는 안 전 사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대가성은 전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특히 그는 “금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금품을 수수한 시기가 지난 98년으로 사실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어서 그저 고향 후배가 주는 ‘떡값’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까지 금감위를 맡았던 이근영 제 3대 금감위원장도 마찬가지. 이 위원장은 지난 2000년 8월∼2003년 2월까지 가장 오랫동안 금감위의 수장을 맡았다. 그의 이름 앞에는 ‘노련한 수장’이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다닐 정도로 금감원 직원은 물론 재계에서의 평가도 높았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 역시 현대상선 불법대출 외압 의혹과 관련해 자택을 압수수색당하는 등 특별검사의 수사대상 영순위에 오른 인물이어서, 경제관료의 도덕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아직까지 이용근 제 2대 위원장, 이근영 제 3대 위원장 등에 대한 조사는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향후 이들에 대한 법적조치가 이어질 것인지의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법정에 소환되는 등 각종 의혹에 시달리는 고위 경제 관료들 중에 금융감독위원회의 전직 위원장들이 모두 연루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기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사실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