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8일 임종석 김영환 김근태 이재정(왼쪽부터) 등 민주당 개혁파 의원 7명이 오찬회동을 갖고 신당에 대해 논의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신주류 내 강경파 그룹인 이른바 ‘탈레반’을 중심으로 한 ‘신당파’들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민주당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사형이 집행됐다”(임종석 의원)며 곧바로 당내외 개혁세력을 총결집해 개혁신당 창당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개혁국민정당이 ‘범 개혁세력 단일정당’ 추진을 촉구한 데 대해 적극적인 동감을 표시하면서 6월 말 이전에 개혁신당의 주체와 창당시기문제가 확정되어야 하며, 지금부터 그에 대비한 당내외 세력규합에 나설 뜻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신당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김근태 의원 등 범 개혁세력 내 온건파 의원들 사이에서도 점차 ‘신당 불가피론’이 세를 넓여 가고 있다. 또 중도 성향의 인사들도 향후 진로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고민에 들어가는 등 민주당은 그야말로 ‘신당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상태.
그러나 이 같은 ‘신당 드라이브’에 대해 동교동계 등 구주류는 “개혁신당 창당을 말리지는 않겠지만 하려면 빨리 나가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고 일부에서는 “호남당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신주류와 더 이상 당을 함께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신주류의 핵심이었던 추미애 의원도 신당파들을 맹비난하며 나서고 여기에 일부 ‘친노’(親盧) 성향 의원들이 가세할 조짐을 보여 신주류 내 세력 분화 현상도 나타나는 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개혁신당과 관련해 먼저 신당파는 이번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국회 정보위원회 ‘부적합’ 의견 파문과 재·보선 참패를 통해 현재의 민주당 틀로는 정국을 주도할 수 없음은 물론 내년 17대 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부터 대립각을 세워온 구주류측과는 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 당 개혁에 대한 이견 차원을 넘어 이념·정책적으로 공존할 수 없음이 확인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당파의 한 초선 의원은 “그동안 구주류측과 당 개혁 등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혔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감은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장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야당 내 수구세력과 보조를 맞춰 노 대통령의 뒤통수 때리는 그들의 태도를 보고 그 같은 기대를 버렸다. 민주당은 이제 곪을 대로 곪아 있던 내부 모순이 한꺼번에 터져버려 더 이상 생명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탈레반 그룹의 양축인 천정배 신기남 의원도 구주류와의 결별을 각오하더라도 신당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공언하며 ‘열린개혁포럼’과 ‘바른정치모임’ ‘새벽21’ 등 5~6개로 분화된 당내 개혁세력의 결집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상태. 이들은 특히 당 개혁에 대한 구주류와의 이견이 좁혀질 것이란 기대를 버리고 구주류와의 타협을 통한 내부개혁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정대철 대표, 김원기 고문 등 신주류 시니어그룹에 대한 설득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 지난 4월25일 김원웅 개혁국민정당 대표와 유시 민 당선자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그는 또 “여야 개혁인사와 개혁당, 정치권 밖의 민주개혁인사가 참여하는 범개혁세력의 단일정당을 구성하자”는 개혁당 김원웅 대표의 제안에 대해 “그 방법이 가장 좋은 것 아니냐. 개혁당도 신당 범주의 일부 세력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해 시니어 그룹의 ‘민주당 중심의 리모델링’ 주장과 달리 ‘빅뱅’ 형태의 신당 창당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신당파는 내달 중순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6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개혁신당 추진의 핵심 계기로 설정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한 핵심인사는 “노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 전력을 경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방미 전에 신당 문제에 대한 어떤 입장을 밝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귀국하는 17일부터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6월 중순까지가 여권 내에서 신당 창당을 위한 세력 결집의 기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만약 이 기간에 여권 내에서 신당의 프레임이 제대로 갖춰지고, 전당대회를 고비로 내분 양상이 격화될 한나라당 내에서 ‘당의 보수화’에 반발하는 세력들의 이탈 움직임이 본격화된다면 여야의 틀을 뛰어넘는 개혁정당 창당의 인프라는 상당 부분 갖춰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핵심인사도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당의 통합을 위한 지도력의 옹립이 아니라 오히려 당내 분열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전망에 동조했다.
신당파들은 이 같은 계획을 토대로 이미 당내 세력결집에 발벗고 나선 상태이며 상당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관망입장이던 의원들 중 상당수가 “이제는 신당밖에 없다”는 데 동조하고 나섰고, 특히 ‘호남 소외론’이 확산되면서 한때 신당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호남권 의원들의 합류도 임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비(非) 신당파’로 분류되는 전남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을 통한 신당 창당 가능성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노 대통령을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눠보고 지켜본 결과 현재의 정치지형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신념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신당 창당 계기는 당 개혁안 원안 통과가 무산된 후, 늦어도 대북 송금 특검범 수사가 마무리되는 7~8월께가 될 것이며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 있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탈당하면 곧바로 20~30명의 의원들이 동조탈당할 것이며 이어 수도권의 중도성향 의원들도 신당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호남권 의원들 가운데서도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 의원들이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당파들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한 신주류 내 ‘반작용’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한때 정동영 의원과 함께 노 대통령이 ‘차기 지도자감’으로 지칭했던 추미애 의원은 신당파들을 강력비난하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추 의원은 “신주류 강경파들이 ‘구주류 타도’라는 정치적 목표를 지렛대로 삼아 개혁신당을 하면 지지자들한테 당장은 먹혀들어가지만 그런 식으로 국민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고 일갈했다.
그는 나아가 “바겐세일한 상품을 믿고 샀더니 점포를 폐쇄하고 다른 가게로 옮겨 사장을 바꾸고 신장개업을 하면 물건에 하자가 생겼을 때 소비자는 누구한테 하소연하느냐.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권재창출하라고 표를 줬더니 신당을 하면서 버리고 가면 뭘로 지지세력한테 표를 얻을 수 있느냐”며 신당파의 ‘청산 만능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신주류 중진으로 전남 순천이 지역구인 김경재 의원도 “일부 강경분리 그룹들이 내년 총선 승리의 관건인 호남을 계속 무시하고 나간다면 나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고 국회 정보위 간사로 국정원장 청문회 이후 신당파의 성토대상이 된 함승희 의원도 “당명을 바꾸고, 개혁세력을 수혈하는 쪽으로 가야 하며 노 대통령도 구주류를 껴안아야 한다”고 말해 신당파의 개혁신당 노선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