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길승 회장 | ||
“죽일테면 죽여라. 우리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손길승 SK그룹 회장)
SK글로벌 문제를 두고 손길승 SK그룹 회장과 SK글로벌의 주채권 은행인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의 몸싸움이 뜨겁다.
여기에 (주)SK의 대주주로 올라선 영국계 펀드 소버린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연대해 SK그룹 계열사들의 SK글로벌 지원을 막고나서 열기를 더하고 있다.
현재 칼자루를 쥔 쪽은 김승유 행장. 김 행장은 SK그룹이 SK글로벌 회생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SK글로벌을 청산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다른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도 차단하겠다는 강공도 내놓았다.
김 행장이 강수를 두자 손길승 회장도 “SK글로벌은 반드시 회생시킨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SK글로벌을 청산할 경우 국민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논리로 맞대응하고 있다. 손 회장의 입장에선 더 물러날 곳도 없다.
손 회장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 없다. 연일 SK글로벌 정상화 추진위 비상회의를 소집해 채권단의 움직임과 SK글로벌 회생전략을 짜고 있지만 가닥이 쉽게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SK글로벌은 이번 고비만 넘기고 나면 세계 일류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주장. SK글로벌이 청산된다면 채권단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며 벼랑 끝 대응을 하고 있다.
손 회장은 사내외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SK글로벌을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노종 SK구조본 전무(정상화추진본부 대변인)는 “SK글로벌이 청산될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나다”며 “비록 (SK글로벌이) 경영상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재계 3대 그룹으로서 소명을 다한다는 생각에서 이 회사의 회생을 지원토록 채권단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SK글로벌과 채권단은 서로 윈-윈 정책을 펴야하는 관계가 아니냐.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당 지원만 아니라면 채권단이 SK글로벌의 회생에 적극 협조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회장의 입장에서 SK글로벌의 청산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는, 이 회사가 청산될 경우 그룹 전체가 사실상 해체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기 때문이다. 그 중간에 최태원 회장이 자리잡고 있다.
최 회장은 그동안 SK글로벌의 대주주인 SK(주)를 통해 SK텔레콤, SKC 등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SK글로벌 사태 이후 최 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SK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채권단에 담보로 맡겨 둔 상황. 최 회장이 채권단측에 담보로 맡긴 지분은 SK주식회사 0.11%, SKC 7.5%, SK글로벌 3.31%, SK케미칼 6.84% 등.
최 회장의 지분을 담보로 맡을 당시 하나은행 등 채권단은 “그룹 오너가 그룹 경영에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라고 말을 했지만, 현재 상황은 백팔십도 바뀌고 말았다.
▲ 김승유 행장 | ||
이렇게 되면 최 회장의 SK계열사 지분은 모두 휴지로 변해 SK주식회사를 정점으로 묶였던 SK 계열사의 지분 관계가 무의미해지게 된다.
결국 SK글로벌의 청산은 SK그룹의 오너인 최씨 일가의 몰락을 뜻하기 때문에 SK그룹으로서는 사생결단으로 살리려 하지 않겠느냐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편 SK글로벌 사태가 터진 이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람은 56개 채권단의 대표격인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이다. 김 행장과 손길승 SK회장은 몸담고 있는 분야는 금융계와 재계로 다르지만 각별한 사이.
지난 2002년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통합할 당시 손 회장이 나서 통합작업을 지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통합은행장 자리를 두고 김 행장과 또다른 K씨 등이 경합을 벌일 때도 SK그룹측이 측면 지원을 했던 것으로 금융계에는 알려져 있다. SK가 하나은행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주거래 은행이었기 때문.
그러나 이런 밀월은 통합은행이 출범한 지 1년도 채 안돼 사단이 날 상황.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진 후 하나은행은 다른 경쟁은행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음에도 오히려 추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어쨌든 김 행장은 SK글로벌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내야 하는 키맨이다. 막상 청산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내심으론 청산을 강행할 경우 하나은행은 물론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이유다.
채권단 관계자는 “지난 3월까지만 해도 SK(주)가 출자전환을 통해 글로벌을 정상화시킨다는 것을 전제로 채권단이 적극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현재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SK글로벌이 해외에 숨겨뒀던 부실 등이 추가로 발표돼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면서 김 행장은 손발을 다 들게 됐다는 것.
게다가 채권단과 SK측이 글로벌을 살리기 위한 출자전환 가격을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한때 김 행장은 수감중인 최태원 회장을 엄중한 벌에 처해달라는 요청서를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노골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재 김 행장의 감정은 크게 누그러져 있는 듯하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SK측이 새로운 방안을 가져오는 대로 검토를 하고 있지만, 윈-윈 전략이란 없다”며 “법정관리 신청 작업은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