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이용경 KT 사장(오른쪽)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양사의 전략적 사업협력 협정에 조인한 후 악수 를 나누고 있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국세청에 의하면 매출액 5천억원 이상의 기업은 3~4년마다 정기적으로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것. KT의 경우 지난 98년 2월 세무조사를 받았고 부가가치세 소멸 시효가 5년이어서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98년 당시 KT는 세무조사에서 1천8백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때문에 이번 세무조사도 다른 정치적인 배경없이 단순히 장부상의 세금 추징액이 적당했는지, 누락된 세금은 없는지에 대해 집중 조사할 것이란 게 국세청과 KT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 직후 KT의 자회사인 KTF의 신임 사장을 뽑는 과정에서 현 여권 고위 인사와 불협화음을 빚으며 긴장관계를 형성했던 점, 대선 전 KT 전현직 고위 경영진의 특정 정파 줄서기설이 난무했던 점에 비추어 이번 KT 세무조사가 단순 세무조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민영화된 공기업의 지배구조를 지켜보겠다”고 한 발언도 새삼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내내 민영화된 공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내비치며 이같은 발언을 수차례 했다.
더욱이 지난 1월 KT의 자회사인 KTF는 KT아이콤과의 통합법인 최고경영자를 선정하면서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당초 KTF의 새 통합법인 사장은 1월 공모, 2월 선정, 3월1일 합병법인 출범과 함께 취임한다는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1월3일 KT는 전격적으로 1월9일까지 공모, 1월13일까지 선정한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애초 계획안대로라면 새 행정부 출범과 함께 심사가 진행되고 사장이 선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장 선임 일정이 당겨지면서 새 행정부 출범 이전에 서둘러 진행되는 듯한 모양새로 비쳐졌다. 이 과정에 뜻하지 않은 스캔들도 터져나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KT 사장 출신으로 당시 정통부 장관이던 이상철씨에게 전화를 걸어, KT 신임 사장 선임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어본 내용이 언론에 공개돼 파문이 빚어졌다.
결국 KTF 새 사장 자리에는 남중수 현 사장이 뽑혔다. 하지만 이 인사는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이상철-이용경-남중수라는 인물들이 경기고-서울대-KTF 사장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철 전 장관은 KTF 사장-KT 사장-정통부 장관이라는 자리를 밟아 나갔다. 그의 후임인 이용경 사장은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KTF 사장-KT 사장이라는 자리까지 이상철 장관의 코스를 그대로 밟고 있다. ‘막내’인 남중수 사장 역시 경기고-서울대를 나와 KTF 사장 자리까지 밟고 있는 상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공기업 사상 초유의 ‘학맥 세습’이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런 시각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 이상철 전 KT 사장(왼쪽)과 남중수 KTF 사장은 이용경 KT 사장과 더불어 ‘특정학맥’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 ||
이런 KT의 인사 뒷말은 곧장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연결지어지면서 KT의 CEO 경질설로 연결되곤 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 2월14일 대통령 당선자 신분 시절 전경련이 주최한 한 포럼에서 ‘참여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이라는 강연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민영화된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당초 목표대로 잘 되었는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 CEO가 전체 주주의 권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일부 지배주주나 최고 경영진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좇거나 심지어 노조의 눈치만 살피는 경우도 있다”고 한 것.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일부 지배 주주나 최고경영진들의 사사로운 이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노 대통령 주변의 경제 브레인들이 포스코나 KT, 한전 등 ‘민영화된 공기업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얘기는 지금도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게다가 유임을 강력히 원했던 포스코의 유상부 전 회장도 결국 지난 봄 정기 주총을 앞두고 물러났다. 물론 그의 ‘자진 사임’에 앞서서 유 전 회장의 도덕성에 해가 될 만한 사안들이 터져나왔다.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인지 최근 진행중인 KT의 70일간에 걸친 세무조사가 정보통신 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해 있다. 이런 와중에 KT 주변에서는 KTF의 사장 선임 갈등 이후 잠잠해졌던 ‘KT 주류 교체론’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게다가 국세청은 올초 “국내 경기 침체와 관련 올 상반기에는 세무조사를 유보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정기 세무조사라는 명목으로 KT에 대해 장기 조사에 나선 부분은 이런저런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는 지적.
이에 대해 국세청에선 “3월부터 정기 법인세무조사를 유보하고 있지만 조세 시효가 임박한 경우나 부동산투기 조세 채권 확보 등 불가피한 경우엔 유보방침과는 관계없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표적조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KT도 “KT가 지난해 세무조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예탁증서 발행과 민영화를 앞두고 국세청에 세무조사 연기요청을 했었다”며 이번 조사는 일반적인 성격의 세무조사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다른 공기업인 한전과 동양메이저도 지난 16일부터 정기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KT만큼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다. 이는 KT의 세무조사가 다분히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을 만큼 KT와 정치권과의 관계가 긴장관계라는 얘기다.
특히 KT의 경우 비록 민영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부(정통부)의 입김이 절대적인 데다가, 국가 기간 산업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외풍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만약 이번 조사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경영진 전면 물갈이가 단행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출범을 전후해 KT 내부에서는 DJ 정부 시절에 낙하산으로 경영진에 끼어들었던 일부 인사들이 자진 퇴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여전히 잠복해 있는 KT노조와 경영진, 그리고 정통부 사이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소지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