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 사건은 현재 재판에 계류돼 있기 때문에 참여연대가 언론에 이 사건을 흘리는 것은 저의가 있다.”(삼일회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가 정면 충돌할 태세다. 그동안 기업 경영투명성을 앞세워 재벌을 공박해온 참여연대가 이번에는 회계법인을 상대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현재 참여연대와 삼일회계가 충돌한 이유는 현재 한국 경제의 최대 ‘계륵’인 현대건설 때문. 참여연대는 지난 3일 “삼일회계법인이 지난 98~99년도에 실시한 현대건설에 대한 회계감사는 부실이었다”며 금융감독원에 특별감리를 요청했다.
참여연대가 제기한 부실감사 의혹의 핵심은 현대건설의 채무내용 미확인, 대손충당금 과소설정, 재고자산에 대한 부실실사 등. 이로 인해 현대건설의 2조5천억원대에 이르는 누적부실이 숨겨짐에 따라 결국 지난 2000년 5월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초래됐다는 게 참여연대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삼일회계측은 “터무니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삼일회계 김영식 전무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참여연대가 주장하는 현대건설에 대한 부실감사 의혹은 전혀 없다”며 “갑자기 시민단체가 회계법인을 상대로 이 같은 의문을 제기한 목적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삼일이 반발하는 것은 참여연대가 제기한 의혹과 관련된 사안이 현재 재판중이기 때문. 확인 결과 이번에 참여연대가 제기한 현대건설 부실회계 의혹은 지난 2001년 김성은 덕성여대 교수가 삼일회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현재 1심 재판이 진행중인것으로 밝혀졌다.
삼일회계측의 주장은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을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언론을 통해 여론몰이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공신력을 중시하는 회계법인의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삼일회계를 상대로 현대건설 부실회계 의혹 소송을 제기한 김성은 교수의 신상 부부. 김 교수는 DJ정부 시절 터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받았던 인물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2월 초까지 금감원 감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공직에 있다가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차정일 특별검사팀에 소환조사를 받은 뒤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김 교수는 덕성여대 회계학과 교수로만 활동해왔으며, 이미 지난 2001년 삼일회계를 상대로 이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현대건설에 대한 삼일회계의 부실 감사로 자신의 투자가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
삼일회계 김영식 전무는 “참여연대가 이번 사안을 자체 조사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한 개인의 소송사건 자료를 받아서 시민단체가 언론에 뿌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의 박근용 경제팀장은 “(김 교수는)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며 “단지 김 교수가 자신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데 한 번 봐달라며 자료를 전해줘서 확인해보니 삼일회계법인이 부실 감사를 한 것으로 보여 금감원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삼일회계측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김 교수로부터 자료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의 일들은 자체적으로 감사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회계법인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며 “만일 금감원에서 삼일회계의 감사에 문제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면 재판에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일회계법인과 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참여연대에 자료를 건넨 것으로 알려진 김성은 교수와는 현재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어쨌든 현대건설의 회계규모나 기업규모가 분식회계 사건으로 그룹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은 SK글로벌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내려질지 재계는 초긴장하고 있다.
특히 SK글로벌 분식 사건 이후, 상당수 종합상사와 벤처기업들에 대한 부실회계 의혹이 잇따르고 있어 이번 사건이 그동안 ‘치외법권격’이었던 회계법인과 시민단체의 충돌이 시작되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