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성산 장기려 박사 서거 24주기 추모예배 모습
[부산=일요신문] 김희준 기자 = 고신대복음병원(병원장 최영식)·성산 장기려기념사업회(이사장 손봉호)는 성산 장기려 박사 서거 24주기를 맞아 20일 오후 4시 1동 3층 예배실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신수인 총회장, 손봉호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 이사장, 학교법인 고려학원 옥수석 이사장, 고신대학교 안민 총장, 부산서구 공한수 구청장, 부산서구의회 이석희 의장, 장여구 교수(유가족 대표), 이건오 박사(후학 대표), 교직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오는 25일은 크리스마스이자 옥탑방 의사, 바보의사, 마음까지 치료한 의사, 선한사마리아인, 국내최초의 간 대량 절제술 성공,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보험조합 청십자조합 설립, 참의사, 참스승으로 알려진 장기려(1911~1995) 박사 타계 24주기다.
한국의 슈바이처로도 잘 알려진 장기려 박사는 1928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타계하기까지 가난한 자들의 주치의로 헌신하며 현대 대한민국 의료사의 대표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동화작가 정란희는 장기려 박사를 아름다운 의사, 프로의사, 우정을 소중히 여긴 참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춘원 이광수는 소설 ‘사랑’에서 장 박사를 모델로 주인공 안빈을 등장 시키고 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입학 전 그는 “이 학교에 들어가게 해준다면 의사를 한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서원기도를 했고 그는 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장기려 박사는 1942년 평양연합기독병원을 거쳐 1943년 평양도립병원장 겸 의과과장,1947년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과장으로 일했다. 1948년에는 북한 과학원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장 박사는 1951년 부산 제3영도교회 창고에서 무료의원을 열었는데, 이 천막진료소가 복음병원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25년 동안 일했으며 파독간호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복음간전(고신대 간호대학)을 세우고 오랜 기간 학장직을 수행했다.
1968년에는 ‘건강할 때 이웃 돕고, 병 났을 때 도움 받자’라는 취지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발족했으며, 1969년 간질환자 치료를 위한 장미회, 1976년 한국 청십자 사회복지회를 설립했다.
그의 청빈한 삶과 타인을 위한 인술은 부산시민상 대한의학회학술상 국민훈장 막사이사이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이름도 빛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기 위해 홀로 산다던 장기려 박사는 백년의 약속을 지키며 천 년 무게의 그리움을 안고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갔다. 그의 유언과 성남 모란공원의 비석 표지석 처럼 ‘주를 섬기다가 간 종 여기 잠들다’로 기억되길 원했다.
이날 행사에서 손봉호 이사장은 “아직도 고인의 정신을 기리는 분들과 그 뜻을 실천하는 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있음에 감사드리며, 계속해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아픈 이들을 섬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옥수석 이사장은 “장기려 박사를 닮아가는 삶”을 안민 총장은 “세상을 향한 사랑”을 강조했다.
고신대병원에서는 의료진이 참여한 자체 영상, 김해합성초등학교 학생들의 음악, 극단 증인의 연극 등 다채로운 행사로 고인의 뜻을 기렸다.
기념행사와 더불어 12월 한 달 동안 고신대복음병원과 성산장기려기념사업회에서는 장기려 박사의 생전 자료들을 모아 병원 중앙로비와 1동 3층 복도에 장기려 박사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병원 내원객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난 16일과 18일에는 각각 한국마사회 부산동구지회 및 한국거래소 임직원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진 음악회를 개최하고, 추모기념식을 포함한 여러 행사를 진행하며 연말 분위기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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