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구택 포스코회장(왼쪽), 정몽구 현대차 회장 | ||
이날의 핫이슈는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포스코의 올 상반기 영업실적이 창사 이래 최고였다는 점이었다. 포스코가 밝힌 올 상반기 실적은 매출 6조7천8백여억원, 순익 1조1백87억원.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액은 24%, 순익은 1백84%나 증가한 것이었다.
포스코가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라고 발표하자 이 자리에 모인 투자자들은 흥분했다. 이는 세계철강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그동안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 버리는 호재였기 때문.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포스코의 올 상반기 실적이 좋을 것이라는 예측은 여러 곳에서 감지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순익이 1백80% 가량 늘어 투자자들이 무척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와 함께 포스코는 이날 또 하나의 ‘깜짝 선언’을 발표했다. 기업 설명회가 대략 끝나고 투자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향후 현대차와 중국시장에서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
포스코 관계자는 “그동안 현대자동차와 불편한 관계였지만, 포스코가 중국 자동차 소재 부문에 대한 역량을 늘리고, 현대차는 중국 완성차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어 중국에 동반 진출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포스코의 이 발표가 시선을 끈 것은 그동안 포스코와 현대는 앙숙관계였기 때문. 두 회사는 ‘핫코일 공급’ 문제를 두고 2년반이 넘도록 분쟁을 빚고 있다.
이 분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1년. 분쟁은 현대차가 포스코로부터 공급받아오던 자동차 강판을 더이상 포스코에서 공급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막이 올랐다. 대신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에서 강판을 공급받기로 했던 것.
그러자 포스코는 현대하이스코에 공급하던 자동차 강판의 원재료인 핫코일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핫코일 공급을 중단하면 현대하이스코는 자동차용 강판생산이 불가능해 결국 현대차가 포스코로부터 직접 강판을 구입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핫코일 공급선을 일본으로 전환하는 등 정면 승부에 나섰고, 포스코는 국부유출이라며 현대차를 공격했다. 이렇게 되자 정몽구 회장과 당시 포스코 회장이던 유상부 회장이 비밀회동을 통해 막후교섭을 벌이는 등 관계개선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장기화됐던 이 분쟁은 지난 6월23일 포스코가 현대하이스코에 핫코일을 공급하고, 현대차는 미국 공장에서 포스코의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받는 부분에 합의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런 화해무드는 마침내 중국사업에서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한 것.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핫코일 분쟁 당시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차의 손을 들어준 데 대해 아직 행정소송이 대법원에 계류중이라는 점.
해묵은 감정의 앙금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그럼에도 포스코가 먼저 현대차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어 재계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 생산라인에 즐비하게 쌓여 있는 핫코일. | ||
또 이에 대한 현대차의 반응은 어떨까.
먼저 포스코가 제시한 현대차와의 협력계획을 살펴보자. 포스코는 이 제안의 배경으로 “포스코는 자동차용 강판을 팔아야 하고,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의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현대하이스코에 향후 핫코일을 공급하고, 현대차는 대신에 현대차 중국 공장에서 포스코의 강판을 받아 준다는 게 큰 골자.
포스코 관계자는 “이같은 계획이 진행될 경우 포스코는 수출을 늘릴 수 있고, 현대차는 중국 완성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스코의 이같은 발표에 대해 당초 현대차측은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는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다. 당시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달 일단 화해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중국시장에 동반진출하는 문제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며 이 사실을 부인했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기업설명회에서 포스코가 먼저 그렇게 얘기를 해 당황스러웠다”며 “일단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논의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물량, 시기, 계획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화해무드 조성에 현대차가 소극적으로 대응하자 재계에서는 포스코가 일방적으로 그같은 발표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포스코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서둘러 그같은 내용을 발표한 것 같다”며 배경을 추측했다.
포스코는 핫코일 분쟁과 관련, 지난해 서울고법이 현대차의 손을 들어주자 이에 불복해 지난해 9월 대법원에 항고를 했다. 조만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
이렇게 되자 포스코는 만일 대법원에서 또다시 현대차의 손을 들어줄 경우 회사의 이미지와 사업 전반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판단, 현대차와의 화해무드 조성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것.
이같은 해석에 대해 포스코는 내심 당황하는 분위기. 포스코의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에서 두 회사 모두 승자가 없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중국 사업 협력계획은 두 그룹의 감정이 더 악화되기 전에 합의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중국사업과 관련해 현재 포스코와 현대자동차는 물량, 가격 등 민감한 부분을 제외한 원칙적인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잠정적으로 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 4월 중순부터 시작된 만큼 방향은 이미 설정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는 “일정부분 합의된 내용은 있지만 합의문을 공식 발표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일단 두 거함의 화해무드를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경제침체 등으로 기업간 갈등의 폭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회사가 상호협력키로 한 점에 대해 환영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자사이익보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포스코와 현대차의 협력체제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