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포항지진 진상규명 및 피해구제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정치인과 관변단체들만 자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범대본은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특별법 제정을 위해 수고한 분들께는 우선 치하를 한다. 하지만 그 노고가 무색할 정도로 법률이 누더기로 변해버렸다”면서 “실제로 꼭 필요한 조문들이 빠져버려 실효성 없는 특별법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범대본은 특별법의 명칭부터 문제가 있다고 봤다. 법률명에 ‘배·보상’이란 용어는 없고 ‘구제’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는 세월호 특별법을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범대본은 세월호와 포항지진은 출발부터 다른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구조활동 잘못이 문제지만, 포항지진은 처음부터 정부가 기획한 지열발전소 때문에 발생한 것이 차이라는 것이다.
범대본은 “포항지진은 인재(人災)라고 밝혀졌고, 고의성과 과실성이 있다고 해서 검찰이 강제수사까지 펼치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포항지진이 ‘자연재난’, ‘사회구조적 재해’라고 하면서 ‘구제’를 한다고 하니, 할 말을 잃었다. 가해자인 정부가 어떻게 피해자에게 은혜적으로 구제할 수 있느냐?”도 말했다.
특히 포항지진 특별법 제34조 제1항에서는 ‘국가가 지열발전사업과 관련해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책임이 있을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미 민사소송을 통해 국가가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정받을 경우, 특별법에서 굳이 적시하지 않더라도 국가로부터 당연히 배상받을 수 있는 몫이다. 특별법에 동 조항을 적시해 포항지진에 대한 정부의 배상책임이 없음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것이다.
영업손실 등 손해 배·보상도 문제로 떠올랐다. 특별법 조문에서 ‘배·보상’이란 용어를 모두 삭제했기 때문에 포항지진 특별법으로는 배·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특별법으로 구제(지원)금을 주는 것인데, 그것도 피해시민 모두가 개별적으로 신청해야 하고 그것이 기각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사소송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비판이다.
구제금에 대한 액수도 문제다. 구제는 피해규모 만큼 갚아 주는 ‘배·보상’으로 계산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지진으로 영업 손실을 입은 점주, 부동산 가치 하락 등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액도 책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신적 피해 및 위자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나왔다. 지진 트라우마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범대본은 “세월호의 경우 몇십분 동안 침몰하는 선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수천만 원씩 정신적 위로금을 줬는데, 지열발전이 촉발시킨 포항지진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치료센터만 지어주면 되는 것인가?”라며 “온 가족이 집을 잃고 수년간 텐트생활을 하거나 떠돌이 생활한 시민들에게 위자료를 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 잃어버린 시간과 가정, 행복은 어디서 누구에게 보상받으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흥해 도시재건 내용이 빠진 것도 문제점으로 나왔다. 촉발지진으로 흥해지역 전체가 거의 무너졌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도시재생사업으로는 지역을 제대로 재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별법에는 ‘흥해지역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당초 상정된 법률안(제32조 내지 제35조)에 포함돼 있던 기념공원, 기념관, 기념사업 등의 조항도 모두 삭제됐다.
‘국가예산 확보’에 대한 내용도 빠져있다. 당초 상정된 특별법안 제3조 제2항에 ‘국가는 피해자 및 포항시의 지원을 위해 필요한 예산상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확정된 특별법에는 이 조항이 삭제됐다. 이에 반해 국가예산으로 설치해야 할 공동체 복합시설까지 포항시 예산으로 지출하라고 한다. 정부사업은 예산확보가 핵심이고 관건이다. 예산만 있다면 현존하는 재난관리기본법으로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 예산확보 조항과 재단설립, 기금조성 등에 대한 최소한의 구체적 조항은 넣어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멸시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해 및 피해액에 대한 배·보상을 위해서는 소멸시효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진피해에 대한 배·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소멸시효의 연장이 필요하며 국가배상법의 경우 소멸시효는 피해사실과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사건이 발생한 날부터 5년이다.
이밖에 진상조사의 필요성과 당위성, 특별법 소관 부처의 문제도 나왔다. 이번 특별법은 산자위에서 다뤄졌는데 법안소위에서 조문을 다듬는 작업은 산자부 차관이 주도했다. 차관은 2017년 지진발생 당시 에너지 자원실장으로서 신재생에너지 및 지열발전담당 간부였다고 한다. 지열발전으로 인한 촉발지진에 대해 직무상 귀책있는 사람이라는 지적이다.
모성은 범대본 공동대표는 “이러한 역학구조가 향후 시행령과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할 것이며 소관부처를 바꾸어 행안부 또는 국토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포항지진 특별법은 ‘앙꼬 없는 찐빵’같이 특별한 게 전혀 없는 특별법으로 실효성은 없고 시민 생색용 특별법은 하루 빨리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은 2017년 11월15일 포항지진 직후 결성된 순수 시민단체로 최근 지열발전 시추시설 매각처분 움직임에 대응해 시추시설 이전금지 가처분소송을 포항법원에 제기해 놓은 것은 물론, 서울중앙지검에도 시추장비 등 당해시설에 대해 형사사건 증거보전 및 압수수색 촉구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ilyo0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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