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근 회장(가운데)이 지난 2002년 3월 고 정주영 명예 회장의 1주기 추도식에 참가했다. 좌우로 지난 99년 ‘왕 자의 난’을 벌였던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이앉아 있 다. | ||
정주영 회장의 셋째 아들인 정몽근 회장은 지난 99년 손윗 형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바로밑 동생인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재산분쟁을 벌였던 ‘왕자의 난’ 당시에도 중립을 지켰다. 대북송금 문제로 현대가가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현 상황에서도 현대백화점가는 세인들의 관심 밖에 있다.
이는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백화점의 기업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유통부문은 정주영 회장이 살아있던 시절에 일찌감치 현대그룹과 분리를 선언했다.
정 회장이 어떤 이유에서 현대백화점을 미리부터 분리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이런 기업사로 인해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은 뒷날 현대가에 몰아친 태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정몽근 회장가는 보통의 재벌 총수들이 여러 명의 자식을 많이 두는 것과는 달리 슬하에 아들 둘만을 두고 있다. 정주영 회장 직계들 중 가장 단출한 가문인 셈.
장남 지선씨는 현재 현대백화점 부회장으로 재직중이고, 차남 교선씨는 아직까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들 중 지선씨만 결혼한 상태다.
정몽근 회장가는 장남 지선씨의 혼사를 통해 덕망 있는 정계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됐다. 지난해 초 현대가 3세로서는 가장 먼저 부회장 타이틀을 단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은 지난 2001년 9월 황산덕 전 법무부 장관의 손녀 서림씨와 결혼했다.
▲ 정지선 부회장 | ||
더욱이 지선씨가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시절에 동갑내기인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됐고, 재벌가 자제로서는 드물게 연애 결혼이었다는 점도 관심의 이유 중 하나였다.
현대백화점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지선씨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게이오대학을 거쳐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영대학원 코스를 밟고 있었다. 또 신부 서림씨는 서울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석사코스를 밟고 있었다는 것. 두 사람은 친구의 소개로 만나 뉴욕과 보스턴을 오가며 교제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지선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서림씨는 동갑으로 말이 통하고 밝은 성격을 갖고 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을 정도라는 것.
서림씨도 지선씨가 재벌가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검소해 마음을 열었다는 후문이다. 이들 동갑내기 커플은 미국에서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이 초고속으로 결혼을 하기까지에는 지선씨의 어머니인 우경숙씨(현대백화점 고문)의 전폭적인 지지가 한몫을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가 관계자에 따르면 우 고문은 서림씨의 조부인 황산덕 전 법무부 장관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같은 실향민 출신인 데다가, 서림씨가 사업을 하는 부친을 둔 덕에 이해심이 많다는 점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며 왕회장의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서둘렀다는 것.
정몽근가의 차남인 교선씨는 아직까지 미혼이다. 교선씨는 경복고-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곧장 미국 유학길에 오른 탓에 아직까지 백화점 사업에는 일체 참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교선씨의 한국나이가 올해로 서른인 데다가, 공부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조만간 혼사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몽근 회장의 처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처가 쪽 인사가 현대백화점 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정 회장의 부인 우경숙씨의 부친이 소규모 사업을 하는 사업가 정도로 알고 있다고만 전했다.
현대가 관계자에 따르면 우경숙 고문은 당시 잠시 동안 현대그룹에 근무를 하고 있었고, 왕회장이 우 고문을 눈여겨 봐 혼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 당시 왕회장은 우경숙씨의 집안이 명망 높은 가문은 아니지만, 며느리감으로는 손색이 없다며 흡족해했다고 전해진다.
직접 ‘찜’한 탓인지 왕회장은 생전에 정 회장의 부인 우경숙 고문을 여러 며느리들 중에서도 유달리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우 고문이 현대가 며느리로서는 처음으로 직접 현대가의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 고문은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직접 현대백화점의 경영에 참여해 그동안 상무라는 직함을 갖고 백화점 대소사를 직접 챙겼다. 우 고문은 장남 정지선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선 뒤부터는 고문으로 물러나 굵직굵직한 현안만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