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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장영석 기자zzang@ilyo.co.kr | ||
소버린은 마치 ‘먹이’를 앞에 두고 포획의 기회를 기다리는 야수처럼 쉽사리 덤벼들지 않고 있다. 소버린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장기 투자’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장기투자자는 야누스와 같은 존재다. 장기투자자의 먹이는 돈 그 자체가 될 수 있지만 돈과 함께 경영권까지 사냥의 전리품으로 취할 수도 있다. SK그룹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소버린의 실소유주인 챈들러 형제는 SK(주) 최대주주에 오른 이후 아직 공식적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적도 없다. 다만 소버린은 국내 투자자문사인 라자드아시아를 통해 입장을 밝혀오고 있다.
라자드아시아가 처음 언론과 접촉한 것은 지난 6월25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다. SK글로벌에 대한 SK(주)의 출자전환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하는 회견이었다.
그후 잠잠하던 소버린은 지난 11일 돌연 기자간담회를 자청, SK글로벌에 대한 출자전환 중단과 SK(주)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으나 알맹이가 없었다. 지난 3월 말에 시작된 SK(주) 지분매집 과정의 용의주도함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지만 소버린의 행보가 제자리에서 맴돌면서 시장에 주는 충격효과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시장에서는 한동안 국내 증시를 요동치게 하던 ‘소버린 효과’가 약발이 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소버린의 정체와 의도가 밝혀질 만큼 밝혀진 데다 소버린이 거듭 주장하고 있는 SK(주) 지배구조개선과 관련, 구체적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교과서적인 수사와 구호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SK그룹이 소버린과의 표대결 승부에 강한 자신감을 표현하면서 소버린이 주장하고 있는 SK(주) 이사진 교체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이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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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버린의 국내 투자자문 라자드아시아 오호근 회장 | ||
그렇지만 소버린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같다. 이 점은 소버린의 투자자문사인 라자드아시아의 행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라자드아시아가 두 번에 걸쳐 구체적인 대응을 삼간 채 SK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향후 적절한 시점에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기 위한 숨고르기로 볼 수 있다.
지난 11일 기자회견 내용은 소버린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 소버린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짐작케 한다. 소버린은 “SK(주)가 경쟁력 없는 계열사 지분을 처분하는 등 SK그룹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해야 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는 SK(주)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포기하라는 압력으로 풀이된다.
라자드아시아 오호근 회장은 먼저 유죄판결을 받은 최태원·손길승·김창근 등 SK(주) 최고경영진 3명은 즉각 이사에서 사임해야 하며 기업지배구조의 원칙에 해박한 새로운 사외이사들로 보강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임시주총 소집을 통한 이사진 교체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오 회장은 “SK(주)에 투자하고 있는 헤르메스펀드 등 다른 해외주주들과 공동대응을 위한 통상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또한 SK(주)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공동전선을 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사들로 교체할 수 있다는 압박으로 풀이된다. 즉 때가 무르익으면 SK(주)의 경영권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행위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오 회장은 “SK(주) 이사회가 출자전환안을 통과시키는 황당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면서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모든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버린은 이어 “SK(주)는 정유회사로 핵심영역인 유류·가스 등에 사업역량을 집중하는 경영전략을 펼 필요가 있다”면서 “SK(주)가 계열사 지원을 끊고 독립경영을 실행한다면 ‘SK 디스카운트’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SK(주)가 저평가되고 있는 원인은 잘못된 기업지배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SK글로벌 지원을 중단하는 한편 수익이 나지 않는 계열사 지분을 모두 처분해 차입금 감축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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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태원 회장 | ||
한마디로 말하면 최태원 회장이 SK(주)의 경영권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것과 SK(주)는 SK그룹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행보, 즉 독립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요구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소버린이 밝힌 대로 소버린은 지배구조가 낙후돼 저평가된 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기업지배구조펀드(CGF)로서 투자수익에 목적이 있다. SK(주)의 경우처럼 저평가된 주식의 경우 그 원인인 낙후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만 주식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고 소버린의 의도대로 막대한 차익을 챙길 수 있다.
소버린은 최태원 회장의 구속 등 위기에 몰린 SK그룹의 취약한 경영권을 이용해 기업지배구조라는 명분을 앞세우면서 현재까지 자신의 의도대로 SK(주)의 사냥 시나리오를 착실하게 진전시켜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소버린은 9월 말 이후에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SK(주) 이사회가 SK글로벌에 대한 출자전환 등을 의결할 경우 소버린이 구체적 대응에 나선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임시주총 소집을 통해 최태원 회장에 대한 공격(해임)에 나설 경우 SK그룹은 큰 위기에 빠질 개연성이 있다.
소버린의 러시아 투자사인 가즈프롬에 대한 경영진 교체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소버린의 챈들러 형제는 가즈프롬의 낙후된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최고경영자(CEO) 렘 비야키레프를 축출하고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CEO를 앉힌 바 있다.
장기투자자라는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소버린은 한국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그 자체보다 자신들의 최대 목표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따라서 소버린은 평균 투자기간이라고 밝힌 4년여 동안 SK그룹의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투자수익 극대화를 위해 SK흔들기(소버린의 표현대로라면 기업지배구조 개선)를 계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소버린은 장기투자자로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고 SK그룹은 기업지배구조를 개선시키는 기회로 활용하면서 주식가치를 올리고 경영권을 방어한다면 양측 모두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효찬 경향신문 기자 romachoi@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