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회장의 구속 이후 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의 최대주주가 소버린으로 바뀌긴 했으나 SK그룹 경영에 문제가 있지는 않다는 데 그룹 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손길승 회장이 최 회장의 공백을 메우고 있고 SK㈜, SK텔레콤 등 그룹의 양 축이 건재하다는 것.
실제 최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는 SK㈜는 SK글로벌로 인한 손실을 제외하면 상반기 5천9백9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렸다. 주가도 최 회장 구속 전 1만3천원대 안팎이었으나 지난달 30일 현재 1만6천7백원을 기록, 20%나 올랐다.
▲ 최태원 회장이 그룹 로고를 배경으로 회의석상에 앉은 과거 모습 (위)과 지난 2월 최 회장 구속 후 손길승 회장 주재로 열린 회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 ||
SK㈜ 등 SK의 계열사들은 ‘최태원’이라는 경영의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미래 성장엔진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다. 신규사업 추진이나 계열사간 시너지 창출 등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SK㈜의 한 관계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최고경영자의 구심력이 요즘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면서 “성장잠재력이 고갈되고 있어 최 회장의 부재가 한 달씩 지날 때마다 SK의 미래가 1년씩은 사라지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의 한 신규사업 추진팀장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최근 아주 훌륭한 사업모델을 찾았으나 이를 보고조차 못하고 있다”면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신규사업 추진은 최 회장이 복귀할 때까지 전면 보류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SK그룹은 속을 알 수 없는 외국인(소버린 자산운용)이 최 회장 공백을 틈타 대주주가 되면서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소버린이 주주총회를 통해 SK㈜의 기존 경영진을 몰아낼 수 있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치고 실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
이 경우 SK그룹은 해체가 불가피하고 50여 개 계열사 중 상당수는 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으며 SK그룹 임직원들의 고용 안정성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SK㈜ 노조 관계자는 “소버린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수익만을 노리는 투기꾼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소버린이 수익극대화를 위해 경영권 장악에 나서면 고용이 극도로 불안해질 수 있어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K㈜ 경영지원부문장인 유정준 전무는 “회사의 안정과 장기전략 실천을 위해 최 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 부재로 SK그룹의 신규사업 추진이 진공상태에 접어든 것은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전력 민영화는 참여정부 들어 자체적인 사정으로 표류하고 있지만 지난 3월 SK 등 민영화에 참여하려던 기업들이 손을 놓으면서 김빠진 것이 악재였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SK가 빠지려 하자 타 기업들도 갖은 이유를 대며 전력산업 민영화 입찰을 포기하더라”고 설명했다.
2001년 이후 급속하게 위축된 벤처업계도 최 회장의 구속 여파가 만만치 않다. 최 회장은 평소 벤처가 한국경제의 희망이자 신사업 창출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여겨 많은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SK글로벌 사태 후 수익성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는 SK계열사들은 벤처 투자를 중단했을 뿐 아니라 기존의 투자지분마저 거둬들이고 있다.
SK그룹 후원으로 매달 서린동 SK본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벤처포럼도 최근엔 참석자가 30여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포럼의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관심을 쏟아줘 한때는 2백여 명이 들어올 수 있는 회의장이 앉을 자리도 없었는데 요즘엔 텅텅 빈다”고 털어놨다.
포럼에 참석한 한 벤처업체 사장은 “올해부터 벤처업계가 바닥에서 벗어나 조금씩 성장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으나 대기업들이 더 많은 관심을 쏟아줘야 (회생이)가속화될 수 있다”면서 “최태원 회장처럼 IT, 바이오 등 벤처기업 육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K글로벌 정상화 역시 최 회장의 공백이 더욱 장기화될 경우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권과 SK측에 팽배하다.
SK글로벌은 채권단에 의해 회생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2007년까지 연간 평균 4천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해야 장기적인 생존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SK글로벌 영업이익이 1천억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난한 셈이다.
이런 사정으로 SK글로벌 전체 채권단은 일찌감치 ‘최 회장의 역할론’을 내세워 사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SK글로벌의 정상화 여부는 향후 우리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SK글로벌 정상화에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최 회장이 하루 빨리 자유의 몸이 돼 경영에 복귀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손철 서울경제신문 기자 runir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