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과 LG가 교통카드 사업권을 놓 고 자존심을 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위쪽은 지난 8월29일 삼성SDS 컨소시엄 출정식, 아래는 9월1일 LG-CNS 컨소 시엄 발대식. | ||
이들이 맞붙은 신 교통카드 사업은 서울시가 ‘교통지옥 탈출’을 꾀한다는 취지 아래 새로 개발하고 있는 교통카드 관련 사업. 이 카드는 한 개의 스마트카드로 서울 시내뿐 아니라 수도권 일대를 운행하고 있는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종합 카드다.
서울시에 따르면 향후 이 스마트 카드는 대중교통은 물론, 주차요금, 민원 수수료, 과태료 납부 등 민원처리를 할 때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두 재벌은 이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공개적으로 전면전을 선언하는 등 과거 어느 때보다 비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경쟁을 해온 삼성과 LG이지만, 공개적으로 ‘전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두 재벌은 국내 재계 순위 1, 2위를 다투는 라이벌 그룹인 데다가, 가전제품 휴대폰 등 전자를 비롯해 여러 사업들이 서로 겹친다는 점에서 늘 비교의 대상이 돼왔다. 때로는 이들의 ‘선의의 경쟁’이 상대 그룹에 대한 비하발언 등 자존심 대결로까지 사안이 확대되기도 했다.
그동안 이 같은 사업경쟁에서 두 그룹은 물밑에서 신경전을 벌여온 게 사실. 그러나 이번 사업만큼은 공개적으로 강도높은 발언을 쏟아내는 등 사활을 건 듯한 모습을 보여 재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성과 LG가 맞붙은 것은 이 카드를 운용하는 시스템 분야다. 기존의 교통카드 시스템을 완전히 신규로 교체할 경우 초기 사업규모만 1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는 민간 사업자를 선정해 이 사업의 시스템 구축비용을 부담토록 하고, 대신 이 시스템 운영을 통해 들어오는 일정 수수료 중 일부를 운영업자에게 주기로 했다. 초기 사업규모만 해도 1천억원 대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영업자로 선정될 경우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는 셈이다.
특히 이 사업은 운영업자로 선정될 경우 교통카드 사업 자체보다 부가적으로 뒤따르는 다른 이점이 많아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예를 들면 상당수 서울시민들이 이 카드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이 사업을 통해 향후 통신, IT 등과 연계하는 다른 사업분야까지 전개할 수 있다.
여기에 ‘마땅한 신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이 사업권을 따낼 경우 미래 첨단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에겐 큰 메리트.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사업권을 둘러싸고 국내 최대의 재벌인 삼성과 LG가 양보없는 수주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대적인 발대식을 갖는 등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위한 전의를 다지고 있다.
삼성은 삼성SDS를 주축으로 삼성그룹 계열사와 군인공제회관, 은행 등과 손을 잡고 매머드급 컨소시엄사단을 구성한 상태.
이에 맞서는 LG 역시 SI 전문 계열사인 LG-CNS를 주축으로 국민, BC 등 카드사와 3개 이동통신사, 교통카드 사업을 하고 있는 업체 등과 손을 잡고 수주전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 전쟁은 서울시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9월 내에 사업자를 선정(우선협상자 지정)할 예정이어서 막바지에 이른 상태. 때문에 사업자 선정일이 코 앞에 다가오면서 두 재벌의 수주전은 하루하루 피말리는 전투로 이어지고 있다.
두 재벌의 전쟁에서 한 발 먼저 앞서나간 곳은 삼성. 삼성은 지난달 29일 17개 컨소시엄 참여사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우선 협상자 지위 획득을 위한 출정식을 갖고 수주전에 나섰다.
이 컨소시엄의 대주주는 군인공제회관이 맡았으며, 대표주간사는 삼성SDS. 또 삼성전자는 교통카드 칩 공급을, 에스원은 카드 공급을, KEBT는 시스템개발을 맡기로 했으며, 스마트카드 연구소와 트래픽ITS 등 플라스틱 카드 전문제조업체 등이 합류했다. 또 금융거래를 전담하기 위해 우리은행을 비롯해 하나, 한미은행, 신한, 외환카드, 수협 등도 대거 이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이보다 이틀 늦은 지난 1일. LG측도 전격 발대식을 갖고 전면전을 선언했다. LG측의 컨소시엄은 LG-CNS를 주축으로 해 국민-BC-LG-현대카드 등 기존의 교통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카드사와 SKT, KTF, LGT의 3개 이동통신사가 모두 참여했다. 또 기존의 교통카드 업체인 인텟, 씨엔씨엔터프라이즈 등이 LG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삼성SDS 컨소시엄이 내세운 명분은 ‘공공성’과 ‘국산제품 활성화’. 삼성SDS 관계자는 “당장 돈을 벌 목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며 “삼성의 국산 제품을 이용해 외화 낭비를 막고, 기술력 확대 등 국가 공공차원에서 이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의 수주 논리는 스마트 카드에 들어가는 작은 칩의 경우 자체 국산 칩을 사용할 수 있지만, LG의 경우 외국에서 전량 수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외화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국가 사업을 하면서 외국에 로얄티를 지급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나올 수도 있다는 논리다.
또 삼성이 그동안 국내외에서 ‘콤비카드’라는 교통카드시스템을 실제로 구축해 운행한 경험이 있음을 앞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LG는 ‘컨소시엄 참여 업체의 다양성’과 ‘기존 교통사업과의 호환성’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삼성을 공격하고 있다. LG-CNS관계자는 “현재 우리 컨소시엄에는 기존에 서울시 교통사업을 맡았던 업체들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다”며 “기존의 카드와 신 교통카드의 연계가 용이하고, 사용자들로서도 최대한 혼돈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LG의 주장은 삼성이 이 사업의 주관사로 선정된다면 전혀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지만, LG의 경우는 그동안 교통사업을 해왔던 업체 등이 상호 정보 교환을 통해 별 무리없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삼성과 LG의 경쟁은 두 컨소시엄의 실무진은 물론, 컨소시엄의 수장까지 나서 상대방을 겨냥한 가시돋친 발언을 쏟아내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