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해 말 코스닥 등록기업이자 종합엔터테인먼트회사인 모션헤즈를 인수, 지난 90년대 말 쌍용증권 회장에서 물러난 뒤 3년 만에 경영인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그는 모션헤즈의 경영에 참여한 지 7개월 만에 온다간다 말도 없이 경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사라졌다. 확인 결과 그는 지난 7월9일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떠난 얼마 뒤 금감원은 김씨 등을 ‘주가조작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따라서 김씨의 미국행은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한 도피성 출국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한때 국내 10대 재벌의 하나였던 쌍용그룹 2세인 김석동씨. 국내 최대 증권사의 톱경영인을 지내기도 했던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일까.
김씨가 코스닥 상장기업인 모션헤즈의 회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해 12월11일. 당시 그는 국내 언론사 기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엔터테인먼트업의 미래는 밝다. 나는 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큰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호언은 결과적으로 허풍이었다. 그는 모션헤즈의 회장에 취임한 지 7개월 만에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치우고는 한국을 떠났다. 이 회사는 지난 7월11일 임시주총을 열어 새 대표이사로 정경석씨를 선임했다. 김석동씨는 이 회사가 임시주총을 열기 이틀 전인 지난 7월9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 뒤 김씨는 두 달이 넘은 시점인 지금까지 귀국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그가 출국한 이후 벌어진 일들. 지난 9월3일 금감원은 모션헤즈의 경영을 맡았던 김석동씨 등에 대한 불공정거래 조사결과 및 조치내용을 발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김씨 등은 지난해 말 섬유회사인 영화직물을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을 모션헤즈로 바꾼 뒤 허위사실 유포 및 과장공시 등의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 이에 따라 금감원은 김석동씨와 최정호씨 등 전직 임원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모션헤즈에 대해서는 최대주주 등에 대한 금전대여 사실 미공시 등을 이유로 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엔터테인먼트사업에서의 성공’을 장담하며 모션헤즈 최고 경영인으로 등장했던 김석동씨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실제 김씨가 영화직물을 인수한 뒤인 지난해 10월 말 무렵부터 영화직물의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당시 6천원대를 맴돌던 이 회사 주가는 두 달 만인 12월 중순 3만원대로 치솟았다. 그후 영화직물 M&A설이 퍼졌고, 얼마 뒤 김씨가 이 회사를 인수한다고 공식발표하면서 추가 상승세를 탄 것. 전형적인 기업 A&D(기업인수 및 사업구조변화)기법이었던 것이다.
이런 형태의 A&D기법은 이전에도 이따금씩 주식시장에 등장했던 인수방법. 신안화섬(현 스타맥스)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신안화섬도 A&D가 이뤄진 후 주가작전설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영화직물 역시 A&D설이 퍼지면서 주가조작설이 나돈 끝에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했다. 이 같은 얘기가 확산되자 지난 2월 모션헤즈측은 ‘금감원 조사설’은 사실 무근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초 금감원이 김씨 등에 대한 주가조작 혐의 조사내용을 발표함에 따라 그동안 나돌던 소문이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 김석동씨는 모션헤즈의 주가조작에 어느 정도 연관돼 있는 것일까.
애초 영화직물을 인수한 주역은 최정호라는 인물이었다. 최씨는 경기지역 소재 골프장인 ㅂCC 오너의 아들. 최씨가 인수한 영화직물의 지분은 34.7%였다. 최씨는 영화직물을 인수한 뒤 이 회사의 간판 경영인으로 김석동씨를 내세웠다. 김씨의 개인 지분은 8%대에 불과했지만 김씨가 쌍용가의 막내 아들로 쌍용증권 회장을 지내는 등 지명도가 있어 최씨측이 그에게 회장직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모션헤즈 주가조작과정에 김씨는 주범이 아닌 종범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어쨌든 김-최씨의 밀월은 회사를 인수한 지 4개월 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션헤즈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회사경영에서 이견이 없던 김-최씨는 지난 3월 무렵 최씨가 모션헤즈의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주가조작의혹이 불거져 김씨와 최씨 등이 금감원에 불려다니면서 서로의 관계가 서먹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두 사람은 금감원 조사가 본격화된 지난 6월 무렵에는 회사를 매각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 매각문제를 놓고도 김-최씨는 서로 입장이 달랐다. 최씨는 자신의 지분을 매각했지만, 김씨는 자신의 지분을 팔지 않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김씨가 자신의 지분을 팔지 않은 이유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주변에서는 주가조작혐의를 받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지분을 매각할 경우 더 큰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