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지난 99년 소보원이 풀무원에서 제조, 판매하는 두부가 유전자변형(GM) 콩을 섞어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 법정 소송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특히 이 사건은 소보원의 소송에 풀무원이 ‘무고’로 맞고소를 제기하면서 치열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나 3년6개월 동안 벌어졌던 이들의 소송전은 1심 판결을 앞둔 지난 5월 말 갑자기 양측이 모두 소송 자체를 취하하는 바람에 슬그머니 덮여버렸다. 이렇게 되자 일부에선 소송 취하 과정에 정치권 인사가 개입했다는 등 각종 소문이 나돌고 있다. ‘법정 공방’은 흐지부지됐으나, ‘장외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소보원과 풀무원의 법정공방은 지난 99년 11월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소보원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두부 22개 제품을 수거해 실험한 결과 풀무원 등에서 생산하고 있는 18개 제품(81.8%)에서 유전자변형 콩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풀무원은 서울지법에 소보원을 상대로 1백6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양측의 지리한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풀무원은 “자체적으로 검사한 결과 풀무원의 두부에서 GM 콩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는데도 소보원의 잘못된 분석법에 의해 나온 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해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고 매출이 급감하는 등 큰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풀무원과 함께 영세 두부업체 14개사도 소보원을 상대로 9천8백만원의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손배소송이 진행되던 와중인 지난 2000년 8월 풀무원은 두부와 콩나물 등 자사 제품에는 유전자 변형 식품원료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이 선언이 나온 뒤 항간에는 풀무원이 GM 콩 사용을 간접 시인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풀무원의 GM 콩 사용 여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지자, 정부에서는 그때서야 허겁지겁 관계 법령의 제정에 들어가 2001년 7월부터 ‘유전자변형 농산물(GMO) 표시제’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난 5월30일 풀무원은 소보원을 상대로 제기했던 손배소송을 갑자기 취하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소보원 발표 당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매출이 감소했지만, 현재는 상당 부분 회복됐고, 소보원의 공익목적 활동을 존중하며 장기간 전개될 소송에 따른 부담을 덜어내 침체돼 있는 경기에 대비하고 세계적 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소송을 취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소보원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고 해서 우리가 만든 두부 등 식품에 GM 콩을 사용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소보원도 “풀무원이 재판과정에서 소보원의 실험방법이나 내용에서 아무런 잘못을 발견할 수 없었고, 소보원의 공신력을 깊이 존중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며 “대의적 차원에서 (풀무원의) 소송 취하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3년6개월 동안 계속됐던 법정공방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싱겁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풀무원이 소송을 취하한 지 석 달 뒤인 지난 8월에는 소보원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제기했던 영세 두부업체들도 모두 소송을 취하했다.
영세 두부업체의 한 관계자는 “영세 업체들은 소송 진행 비용을 부담할 능력이 없어 그동안 소장만 제출하고 소보원과 풀무원의 소송 과정을 지켜봤다”며 “그런데 풀무원이 소송을 취하했기 때문에 우리도 더 이상 소송을 진행할 수 없어 취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보원과 풀무원이 소송을 취하한 이후 업계 안팎에서는 소송 취하의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나돌고 있다. 더욱이 소송 취하시점이 법원의 1심 판결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이 더욱 의문을 증폭시켰다.
이렇게 소송 취하 배경이 불투명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소비자단체에서는 소보원-풀무원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소비자연맹 정광모 회장은 월간지 <소비자>에서 “1심 판결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난 5월 풀무원은 뜬금없이 소송을 취하했으며, 소보원은 풀무원이 소를 취하하자 이에 동의해줌으로써 일을 마무리지었다”며 “이런 과정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가 완전히 무시됐다”고 비판했다.
지난 9월1일에는 YMCA, 녹색소비자연대 등 소비자 관련 10개 시민단체가 속해있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두부 소송 취하 관련 실상을 알아본다’라는 주제로 공청회까지 열었다. 2백여 명이 참석한 이날 공청회에서 소비자협의회는 “풀무원이 소송을 취하한 것은 GM 콩을 사용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소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이 같은 요구에 대해 풀무원은 “공개 사과할 이유가 없다”라고 맞섰다.
그런데 최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소보원이 풀무원의 소송 취하에 동의해준 것을 놓고 정치권 인사가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마저 나돌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풀무원 사장을 지낸 원혜영 부천시장이 권력층과 가깝다는 게 이런 소문의 핵심 내용이다.
이에 대해 소보원과 풀무원측은 한결같이 “원 시장이 소송 취하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풀무원 관계자는 “그런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은 알지만, 이번 소송과 원 시장은 아무 상관이 없는 사안이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혹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원 시장의 답변을 듣고자 부천시측에 연락을 취했으나 원 시장은 현재 해외 출장중이라고 비서실 관계자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