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주식회사 회장이 지난달 23일 7개월 만에 서린동 본사에 비밀리에 출근해 경영 복귀 와 관련, 궁금증을 자아냈다. 사진은 지난 2월 검찰출두 모습. | ||
물론 그의 출근은 세간의 눈을 의식해 극비리에 이뤄졌다.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최 회장은 보석으로 풀려난 하루 뒤인 지난 23일과 24일 두 차례에 걸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SK 서린동 본사건물에 들렀다고 한다.
이 관계자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최 회장은 당초 건강검진 등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바꿔 아침 일찍 본사에 들러 그동안 자신을 면회왔던 그룹 안팎의 지인들에게 두루 인사를 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는 것. SK 사옥에 들른 최 회장은 손길승 회장과 황두열 SK주식회사 부회장,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등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이들을 만나기 위해 본사에 머문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들과 만나 그룹의 경영현안을 챙기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해 SK그룹은 ‘정식 출근’은 아니라는 입장. 기업문화실 관계자는 “최 회장의 ‘경영복귀’나 ‘정식출근’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그룹 경영을 맡아온 회장단과 신세진 사람들에게 인사차 온 것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SK그룹으로서는 아직까지 최 회장의 경영복귀를 선언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최 회장이 전날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당분간 회사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던 점을 감안하면 그룹의 입장에서는 최 회장의 출근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어쨌든 최 회장의 보석 소식이 전해진 후 재계의 관심은 과연 그가 경영복귀를 통해 한때 공중분해 위기에까지 몰렸던 재계 3위의 SK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 놓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그의 ‘부재’가 길어질 때마다 거론됐던 것이다. 지난 22일 최 회장의 보석 소식이 전해진 뒤 증권시장에서는 SK주식회사의 주가가 전날보다 3백50원가량이 오른 1만5천5백원으로 마감하는 등 일단 최 회장의 경영복귀에 대해 시장은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최 회장의 경영복귀 찬성, 반대 의견은 아직도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 회장의 복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다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그의 복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그의 복귀 반대론의 중심에 서있는 곳은 SK주식회사의 최대주주인 소버린 자산운용. 소버린은 지난 3월 SK그룹의 대주주로 떠오른 이후 줄곧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이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SK그룹의 투명한 경영’을 위해서라는 것. 최근에는 대주주인 소버린 외에 SK주식회사의 소액주주들도 소버린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국. SK(주)의 소액 주주모임인 소액주주연합회는 최 회장의 출감과 관련해 “최 회장의 경영복귀는 SK의 지배구조 개선과 회사 정상화를 위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소버린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SK주식회사 소액주주연합회는 지난 22일 “소버린의 국내 투자자문사인 라자드측과도 수차례 접촉을 통해 최 회장의 경영복귀 반대의사를 확인했다”며 “향후 소버린 및 여러 주주와 연대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또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에 이어 SK해운의 비자금 사건 등에 관한 조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최 회장의 경영 복귀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
SK 내부에서도 얘기가 엇갈리기는 마찬가지. SK주식회사 노조는 최 회장의 복귀 반대는 물론 그룹 회장실 자체를 해체시켜야 한다며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노조는 최 회장의 보석 소식과 관련해 ‘SK그룹 회장실 확대개편에 대한 노조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SK그룹은 그룹 해체를 막기 위해 채권은행단과 야합하는 등 기존의 재벌체제의 경영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최태원 회장은 그룹의 모든 지위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SK의 채권단인 하나은행 등은 최 회장의 빠른 경영 복귀를 바라고 있다. 주채권 은행인 하나은행은 SK그룹과 계열사 매각 일정 등을 담은 구조조정계획 약정을 체결할 계획. 이에 앞서 하나은행의 김승유 행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SK네트웍스와 SK그룹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SK주식회사,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의 경영권이 안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행장은 “최태원 회장은 그룹의 구조조정을 철저히 한다는 전제 아래 회장 자리에 복귀하도록 해줘야 한다”며 최 회장의 조속한 경영복귀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최 회장 부재 동안 많은 시급한 현안들이 쌓여 있는 SK그룹은 막상 이 문제와 관련해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지난 7개월간 오너의 공백이라는 치명타를 입은 SK그룹으로서는 최 회장의 복귀가 시급한 상황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소버린 등 주주들의 반대가 심해지면서 그룹 내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직원들이 보유한 SK그룹의 소액주식을 모아서라도 최 회장 경영복귀에 힘을 실어주자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는 그의 경영복귀가 얼마나 시급한 현안인지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더욱이 여전히 최 회장의 경영복귀를 반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히고 있다. 최고 결정권자인 오너의 경영 일선 복귀가 늦어질 경우 채권단이 요구한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의 길이 앞으로도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경영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오너의 부재는 위기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의 현실상 경영을 책임지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오너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