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로의 제3자 매각작업에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서울고법 민사30부는 지난 9월22일 (주)진로 장진호 전 회장 등 전직 경영진이 법원의 진로에 대한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 개시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항고를 기각했다.
이는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진로에 대한 법원의 법정관리 절차가 이상이 없음을 재확인한 것으로 채권단의 진로 채권 신고와 맞물려 앞으로 기존 진로 경영진들에 대한 사법절차와 진로의 제3자 매각작업을 한층 가속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장 전 회장의 경우 진로의 법정관리를 반대하며 어떻게 하든 자신이 외자유치를 포함한 진로 회생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무산될 전망이 커진 것. 게다가 장 전 회장이 자신의 주식을 위임한 진로살리기국민운동본부의 진로 회생 방안에 대해서도 법원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이제 진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벌써부터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나 롯데그룹 등이 진로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단 진로의 향방은 채권단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현재 진로의 최대채권자는 대한전선이고, 그 다음이 골드만삭스. 대한전선이나 골드만삭스에서 제3자 매각방안 실현시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가장 좋은 자리에 있다는 얘기다.
지난 8월 중순 진로의 법정관리부에서 실시한 진로의 채권 신고 때 신고된 채권액은 모두 5조9천여억원. 진로쪽에선 이중 2조1천여억원만을 채무로 시인했다. 결과적으로 진로의 최대채권자는 대한전선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대한전선은 진로로부터 정리담보권 1천7백75억원, 정리채권 2천6백64억원을 채권으로 인정받았다. 이에 비해 골드만삭스측은 정리담보권 3백60억원, 정리채권 4천2백41억원을 시인받았을 따름이다. 진로의 향후 진로를 결정할 담보부채권 확보액이 대한전선이 월등히 많은 것.
향후 진로의 처리는 최대채권자인 대한전선이나 골드만삭스쪽에서 기존 채권을 출자전환하거나, 매각하는 쪽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자신의 지분이 휴지조각이 돼버린 장 전 회장의 경우 법정관리 절차가 진행되면서 완전히 진로로부터 격리되고 그간의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으로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진로의 새 주인은 누가 될까. 현재로선 대한전선과 골드만삭스가 진로 처리의 주도권을 놓고 한바탕 격전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기에는 변수가 있다. 최근 빠르게 진로 채권을 확대한 대한전선의 경우 장 전 회장이 간접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채권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뤄진 대규모의 자금이동과 장 전 회장이 연고를 갖고 있던 지분의 인수배경에 대해 사법당국에서 관심을 갖고 뒤를 캐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 사법처리될 상황에 처한 장진호 전 회장. | ||
하지만 주력사인 (주)두산의 경우 식품사업과 주류사업, 전자 부품, 유리용기 등 사업분야가 많지만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는 상황. 게다가 최근 다시 부채비율이 3백%가 넘는 등 경영상 고전하고 있다. 이미 소주사업에 발을 깊숙이 담고 있는 두산으로선 부채만 없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진로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되자 벌써부터 진로 인수를 둘러싸고 국내 주류업체들의 동향에 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롯데그룹과 두산그룹, 또는 하이트맥주를 유력한 인수 후보로 보고 있다. 두산그룹의 경우 인수의사를 감추지 않고 있다. 두산의 경우 몇 년 전 진로의 대주주였던 임춘원 전 의원에게 지분을 넘기라는 제의를 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두산이 경월소주를 인수한 것도 진로를 인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두산은 진로 인수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인수작업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두산의 경우 일치감치 구조조정을 단행, 그룹의 부채비율이 2백% 이하로 떨어뜨리고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는 등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 있다.
▲ 진로살리기국민운동의 기자회견 장면. | ||
롯데의 자금력이면 별도의 컨소시엄 구성없이 진로의 단독 인수도 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재계의 평가다. 지난 몇 년 동안 홈쇼핑이나 카드회사 인수설 등 각종 기업 인수 및 합병 전망에서 롯데의 이름이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로 롯데의 자금력은 풍부하다.
또 하나의 다크호스로는 하이트맥주를 꼽을 수 있다. '하이트' 브랜드로 맥주시장을 평정하면서 두산을 궁지로 몰아넣은 하이트는 여세를 몰아 지방 소주 회사 두 곳을 인수하는 등 주류업계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 진출한 소주회사에선 큰 성과가 없었다. 때문에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이트쪽에선 이에 대해 “그럴 여력이 없다”고 일단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트의 재무구조는 두산 보다는 탄탄하다. 하이트의 부채는 1조원 가량으로 부채비율은 1백38%에 불과하다. 때문에 외자유치를 통한 국제컨소시엄 결성 등 마음만 먹는다면 두산보다 훨씬 우월한 위치다. 국내 재계에선 두산, 롯데, 하이트 등 세 업체 중에서 진로 인수자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의외의 변수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진로의 법정관리 폐지신청이 법원에서 거듭 거부당한 뒤 힘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던 진로살리기국민운동본부쪽에서 대한전선과 힘을 모아 향후 진로살리기 운동에 나설 것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전선의 진로 채권 매집과정에서 법적 하자가 없다는 게 증명된다면 진로살리기국민운동본부쪽에서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인정하고 있는 대한전선의 카드가 급부상할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