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동부그룹의 2세 경영권 이양작업은 상당수 재벌들이 2, 3세로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편법 시비 등이 잇따르고 있는 데 반해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어 주목된다. 더욱이 동부그룹의 경우 2세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확보를 위해 필요한 지분을 증여한 것으로 알려져 다른 재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주주 지분정보 제공업체인 에퀴터블도 보고서를 통해 “동부그룹의 경우 김준기 회장의 장남 남호씨(29)가 그룹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 지위를 획득, 사실상 경영권 이전 작업을 끝냈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그룹, SK그룹 등 다른 재벌그룹들의 경우 현재 2세들이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음에도 지분이양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준기 회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차세대 경영주자로 지목되고 있는 장남 남호씨는 현재 미국에서 공부중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룹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 지위를 획득, 경영권 이양을 위한 사전준비작업을 거의 마친 상태다.
[동부화재,금융 계열사 장악]
지난 2000년 이후 물밑에서 진행된 이 작업은 지난해 11월 그룹 핵심 계열사인 동부화재의 1인 최대주주를 김준기 회장에서 남호씨로 바꾸면서 사실상 마무리됐다.
당시 동부화재의 최대주주였던 김준기 회장은 15.41%였던 자신의 지분 중 3.31%를 동부문화재단으로 넘겼다. 이에 따라 동부문화재단의 동부화재 지분은 0.69%에서 5%로 늘었다.
이 같은 지분 이동으로 동부화재의 대주주 서열은 김준기 회장(15.41%)-남호씨(14.06 %)-동부문화재단(0.69%) 순에서 남호씨(14.06%)-김준기 회장(12.10%)-동부문화재단(5%)으로 바뀌었다. 남호씨가 자연스럽게 동부화재의 최대주주로 떠오른 것.
동부화재의 대주주 서열이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동부증권, 동부생명 등 그룹의 금융 계열사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 동부화재의 대주주는 곧 다른 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 동부화재는 그룹의 또 다른 축인 동부건설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동부건설의 대주주 서열은 최대주주가 김준기 회장(32.8%)이고, 다음이 동부화재로 13.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남호씨는 그룹의 중심 계열사인 동부화재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도 확보한 셈이다.
특이한 점은 이 같은 지분이양에도 불구하고 그룹 전체에 대한 김준기 회장의 지분 지배력이 여전히 높다는 것. 김 회장은 지주회사격인 동부화재에서는 남호씨에 이어 2대주주이지만, 동부건설에서는 최대주주(32.8%)로 남아 있다.
▲ 아들 남호씨가 최대주주인 동부화재 건물 | ||
결국 김 회장은 동부건설의 지분을 바탕으로 지주회사인 (주)동부의 소유권을 장악,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아들인 남호씨는 동부화재의 지분을 발판으로 향후 자연스럽게 부친의 뒤를 이을 수 있다.
이 같은 작업은 지난 2000년부터 윤곽을 드러냈다. 당시 김 회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김 회장의 지분은 지난 2000년 초 2.77%였던 동부건설의 지분을 단기간에 37.8%로 끌어올렸다.
김 회장은 동부건설의 지분을 견인하면서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동부정밀화학을 앞세워 동부건설과 함께 또다른 핵심 계열사인 동부제강에 대규모 자본을 출자하고, 이어 동부제강은 우량 계열사인 동부한농화학에 대규모 출자를 강행해 소유권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그룹 계열사 전반의 지배구조를 사슬처럼 연결했다.
이처럼 김 회장이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확실하게 장악한 부분은 향후 아들인 남호씨가 그룹 경영에 진입할 때 안전판이 될 전망이다. 특히 김 회장은 지분 외에도 계열사의 CEO 겸직을 통해서도 그룹지배권을 확실하게 해 두고 있다.
[김회장, 4개사 대표이사 맡아]
지난 8월 한국상장사협의회가 6백76개 상장사 대표이사의 인적사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김 회장은 동부건설, 동부제강, 동부정밀화학, 동부한농화학 등 4개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는 국내 CEO 가운데 최다 겸직.
이에 대해 재계에선 동부그룹의 2세 경영이양 플랜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이뤄졌다’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이 동부건설의 최대주주로 등장한 지난 2000년 12월에 이 회사의 주가는 2천4백원대로 바닥권이었다. 현재 이 회사의 주가가 4천∼5천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김 회장의 지분 매입시기가 절묘했다.
남호씨의 동부 계열사 지분이 대폭 늘어난 시기도 최근 2~3년 사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계열사의 주가가 낮은 시기를 틈타 2세 이양작업이 이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