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 건강정책과장
[부산=일요신문] 김희준 기자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차례차례 마주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받쳐 온 존재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의 모습도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만해도 그렇다. 정치인도 아닌 공무원이, 게다가 화려한 외모나 말발을 갖춘 것도 아닌 평범한 여성 공무원이 외신보도에서 연일 ‘한국의 영웅’으로 칭송받을 줄 누가 알았겠나.
부산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부산시 안병선 건강정책과장이다. 중앙에 정은경 본부장이 있다면 부산에는 안병선 과장이 있다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은 똑 닮았다. 의사 출신 여성 공무원, 어떤 질문에도 정확한 데이터를 곁들여 즉답을 내놓는 전문성, 전장 한복판에 선 사람답지 않게 차분한 말투. 무한 신뢰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다. 나이도 1965년생으로 같다.
다음은 지난 2월 21일 부산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현장을 총괄 지휘하며 매일 코로나19 일일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는 안 과장과의 인터뷰다.
▲부산은 20일 넘게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피크를 넘긴 건가?
“그렇지 않다. 더 큰 피크는 언제든 올 수 있다. 부산에서는 3월 22일 이후 해외유입에 의한 신규 확진자만 나오고 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 우리의 목표는 부산에 새로운 피크가 오지 않도록 차단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만약 오더라도 최대한 늦춰야 한다. 늦추면 늦출수록 지역사회가 받는 타격은 줄어들 것이다. 가능하면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버티자는 것이 우리 작전이다. 제대로 먹힌다면 부산은 새로운 피크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부산이 잘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부산만의 대응방식이 있나?
“초기 집단감염에 잘 대응한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 연제구 아시아드요양병원에서 감염자가 생겼을 때다. 처음엔 사회복지사가, 그다음은 간병인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병원 내 감염이 일어난 거다. 잘못하면 청도 대남병원 시나리오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상황을 새벽 1시에 연락받았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코호트 격리였다. 그 새벽에 보건소 직원 전부 비상 걸어서 바로 움직였다. 그 이후 해운대구 나눔과행복병원에서 또 감염자가 생겼지만 거기 역시 코호트 격리를 진행했다. 우리는 추가 환자를 1명도 만들지 않았다. 만약 추가감염자가 나왔다면 부산도 청도처럼 갈 수 있었다.”
▲코호트 격리 당시 병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좀 더 상세히 말해달라.
“요양병원은 식사와 대소변 수발을 때문에 편의상 보통 6인 1실이다. 환자간 간격을 2m로 유지하려니 일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최중증 환자를 우선으로 옮기고 4인 1실을 만들었다. 비말도 튀면 안 되기 때문에 긴급 예산을 편성해서 칸막이를 제작해 병실 안에 설치했다. 나중에 그 칸막이를 대구 요양병원에서 빌려갔다.”
▲간호인력의 고생이 제일 심했겠다.
“정말 그랬다. 1명을 간호하고 나면 보호복 전체를 갈아입고 다른 분을 돌봐야 했다. 당연히 집에는 못갔다. 병원 바로 옆 호텔을 통째로 빌려 3교대도 아니고 2교대를 시켰다. 12시간 근무하고, 가서 자고 또 와서 근무하고, 그걸 14일간 했다. 간호 인력이 모자라 보건소 간호사들도 투입했다. 코호트 격리를 결정한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실제로 해운대구 나눔과행복병원의 한 간호사는 시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그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부산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하셨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있었나?
“아시아드요양병원 환자 24명을 옮겨야 했는데 그 의논을 위해 부산의 감염병 전문가들을 다 불렀다. 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인제대백병원, 고신대병원, 해운대백병원 분들까지. 어느 병원으로 이송하는지가 문제였고 쉽게 결론 나지 않았다. 그날 밤 제가 부산의료원 원장께 따로 부탁드렸는데 다음날 일찍 수용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때 우리 전부 너무 좋아했다. 대학병원 간에 역할분담도 이뤄졌다. 아시아드요양병원 환자들은 부산의료원으로 옮기고 부산의료원 중증 환자들은 대학병원들로 분산 수용하자고 역할 분담을 했던 거다.”
▲대학병원이 감염병 환자를 받기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
“당연하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부산의 응급실 세 군데가 폐쇄되지 않았나. 그렇게 되면 지역 의료시스템이 마비된다. 정말 중증환자가 병원에 못 가는 상황이 된다. 우리는 코로나에도 대비해야 되지만 지역 의료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유지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경영상의 문제도 생기지만 응급실 중증환자들이 모두 위험에 노출된다. 감염환자를 안 받을 이유가 너무 많은 거다. 그럼에도 안 받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기니까 선별진료소를 빠르게 만들어 내고 지역 내에서 진료거부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초기에 무척 어려운 문제였다.”
▲코로나19가 빨리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2주 전 전문가 회의를 했는데 대부분 의견이 코로나19는 장기전이라는 것이었다. 한두 달이 아니라 길게 갈 수 밖에 없다. 그럼 뭘 준비해야 하는지 의견을 나눴다. 첫 번째는 시민들에게 이 질환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보건소 역시 지난 한두 달은 비상체계로 운영했지만 장기적인 체계로 가야한다. 민간 의료기관도 더 준비돼야 한다. 지금 수준이면 감당할 수 있지만 만약 어느 순간 둑 무너지듯 무너지면 부산이 지금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환자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지 못한다. 인프라도, 인력도, 장비도 빨리 보완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자는 움직임이 있다. 지역 공공의료도 같이 강화될 걸로 보나?
“감염병이 생길 때마다 중앙조직은 계속 커져왔다. 그러나 그동안 지방조직은 안 커졌다. 그래서 병목현상이 왔다. 감염병에 대처하는 손발은 결국 지방조직이다. 질본이 갖고 있는 그 많은 데이터도 사실은 지방에서 나온 거다. 지방의 공공의료 조직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독립된 조직보다 시·도 안의 공공의료 조직과 보건소 조직이 탄탄해져야 한다. 부산시에 감염병관리지원단이 있지만 민간위탁이다. 그 분들은 공무원처럼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어서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민간이든 공무원이든 어차피 인건비는 들어가는데 인력 보충을 시·도가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으니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는 거다. 민간 의료기관에 만날 부탁하고 요청하는 것도 어렵다. 요청한만큼 제대로 보상을 해줘야 협조가 이뤄지는데 메르스 때도 제대로 보상이 안 이뤄졌다. 어떻게 편하게 요청하겠나. 인력과 예산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지방정부가 더 많이 가져와야한다. 질본이 청으로 승격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부산의료원 하나로 인구 350만을 감당하기에도 역부족 아닌가?
“많이 모자란다. 저런 공공의료기관이 인구 1백만 명에 1개는 있어야 한다. 적어도 2개는 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시의 계획은 서부산에 의료원을 만들고 금정구 침례병원을 공공병원화해서 동부산쪽 수요를 감당하자는 건데 빨리 진행이 안 돼서 안타깝다.”
▲요즘 24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그래도 지금은 좀 낫다. 2월엔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지금은 밤11시쯤 퇴근할 수 있다. 2월에 해외여행 가려고 예약해놨었는데 이거 터지자마자 바로 해약해서 위약금 물었다.”
▲의사 출신이다. 돈도 많이 못 벌고 일도 많은데 왜 공직사회에 뛰어들었나?
“글쎄... 누군가는 해야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은?
“시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빨리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생활방역을 하시고 좀 더 조심하시는 수 밖에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안 갈 수 있게 다같이 노력하자.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헌신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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