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신원 SKC 회장(오른쪽)이 지난 10일 저녁 부친 최종건 SK 창업주의 평전 출판기념회에 온 최태원 SK(주) 회장(왼쪽)을 맞고 있다. 최신원 회장의 이날 행보는 최태원 회장 체제가 흔들리는 현 시점과 맞물려 그룹 종주권 다툼이 벌어질 것이란 섣부른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 ||
최신원 회장은 지난 98년 최종현 회장이 작고한 이후 사촌동생인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 회장으로 등장한 이후 계열사인 SKC 회장을 맡으면서 장막의 뒤편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재계 전면에 얼굴을 내밀자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이 SK글로벌 분식회계로 구속되는 등 그룹경영권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점과 맞물려 그가 SK그룹의 새로운 맹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시선을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최신원 회장은 최근 부친 최종건 창업주의 자서전(엄격히 말하면 평전)을 들고 나타났다. <공격경영으로 정면 승부하라>라는 제목의 이 책은 부제로 ‘SK의 뿌리를 찾아서’라고 돼 있다.
이 같은 점은 해석 여하에 따라 그의 그룹 내 입지를 재확인하는 것이어서 향후 최신원 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 최종건 창업주의 미망인 노순애씨(사진)는 그룹의 지분을 상당 부분 소유하고 있다. | ||
가족으로는 최태원 회장, 최신원 회장, 최창원 부사장, 그리고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부사장 등이 행사장의 헤드 테이블을 차지했다. 최태원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씨도 참석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날 행사의 가장 큰 의미는 SK그룹의 성장사에서 한 켠으로 밀려나 있던 최종건 전 회장의 역할이 어떻게 재조명될 것인가하는 부분.
사실 최종건 회장은 SK그룹의 창업주였지만 지난 73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했으며, 그후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그룹 경영을 맡아 유공(현 SK주식회사)과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인수, SK그룹을 국내 4대 재벌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때문에 SK그룹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이냐’는 논란은 그동안 재계 내부에서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 98년 8월 최종건 회장이 타계한 뒤 최종건가-최종현가 2세들이 그룹의 경영권을 어떻게 역할분담할 것인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됐었다. 하지만 그룹 경영은 전문경영인인 손길승 회장의 주도로 최태원 회장이 오너 2세를 대표하는 선에서 매듭됐다.
물론 당시 최신원 회장 등 최종건가 2세들도 이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를 하는 등 집안간 화합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표면적인 평온함과는 달리 최태원 회장이 등장한 이후 양쪽 진영에서 미묘한 의견차이가 표출되곤 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최종건가에서 최종건 회장이 일군 사업군을 따로 떼어내 독립할 것이란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하지만 이런 논란의 한쪽 당사자인 최종건가의 대표 최신원 회장은 최태원 회장 취임 이래 일체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부친인 최종건 회장의 평전을 들고 얼굴을 내밀었다.
실제로 이번 평전작업에 최신원 회장은 심혈을 기울였다. 유공과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SK그룹의 창업주로 대접받고 있는 최종현 회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부친의 업적을 재평가받도록 하기 위해 평전 출판에 지대한 공을 들였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이번 평전의 부제가 ‘최종건-SK의 뿌리를 찾아서’라고 내세운 것도 시사적이다. 특히 이 책에 헌사를 쓴 4명의 경영인도 눈길을 끈다. 최신원 회장과 SK네트웍스(옛 주식회사 선경) 정만원 사장, SK케미컬 홍지호 사장, 워커힐 한종무 사장이 헌사를 썼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최종건 회장 유족측에서 그동안 연고권을 주장했던 SK 계열사의 경영인들이라는 점이다. SK의 대표적인 계열사로는 당연히 SK텔레콤이나 SK주식회사의 대표이사가 헌사를 해야함에도 최종건 전 회장의 ‘유업’이라는 점 때문에 전통기업인 이들 4개사 대표이사의 헌사만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신원 회장쪽의 이런 연고권에 대한 의식이 향후 그룹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되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구속 이후 워커힐호텔의 지분을 모두 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위임한 상태이다. 그러나 워커힐호텔이 매각대상에 오른다면 연고권을 가진 최종건가의 동의가 필요할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최종건 전 회장의 평전내용 중 눈에 띄는 또다른 부분은 최종건 회장이 유공 인수까지 염두에 두었다는 부분이다. 최 회장이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정유사업 진출을 위해 계열사를 새로 만들고, 작업을 했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워커힐호텔 인수비화를 소개하면서 최종건 회장의 박정희 정권시대의 핵심 실세들과의 교류비화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 이병희 전 장관 등 최종건 회장이 끈끈한 관계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최종건 회장의 유언 자리에 있었다고 공개한 부분은 여러가지 추측을 낳고 있다. 최신원 회장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최종건 회장은 군복무중이던 최신원 회장을, 작고하기 이틀 전에 만났고, 그 자리에 이씨와 최종현 회장도 있었다는 것.
최종건 회장이 사업자금을 쪼개 최종현 회장의 유학자금을 마련한 부분과, 유학간 최종현 회장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서 팔릴만한 그림을 소포로 부친 일, SK의 사업기틀을 다지던 초창기 경영비화, 석유사업 진출을 다지기 위해 계열사를 설립하다 막판에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의 일화를 두루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SK의 기틀을 다질 당시 최종건 회장과 손발을 맞추던 전문경영인이 현재 SK그룹의 주류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최종건-최종현 회장에 이어 SK그룹 3대 회장에 오른 손길승 회장의 경우 책 말미에 ‘신입사원 손길승’으로 이름이 한 번 등장하는 정도다. 이는 최종건 시대와 최종현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얘기임과 동시에 SK가 정유와 이동통신업에 진출하면서 전문경영인들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얘기도 된다.
재계에선 최종건 회장의 사후 30년 만의 평전 출판은 단순히 책 출판 이상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서는 최종건 회장의 미망인 노순애씨가 남편의 영전에 책을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 재계에선 노 여사를 최종건가의 중심인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노씨는 SK그룹의 지분을 상당부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SK그룹의 오너십과 관련해 노씨의 역할이 매우 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