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칼끝이 어느 그룹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만방에 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재계에서는 검찰의 수사강도 못지않게 관련 기업이 어떻게 이 파고를 헤쳐나갈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방대하고 정교한 정보망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삼성이 이번 파문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주목된다. 물론 삼성에 앞서 회계 장부를 압수수색당한 LG그룹도 법조팀을 내세워 방어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검찰 대 기업의 대결구도에서 중심은 삼성그룹 법무팀이다. 재계에서 삼성만한 법조인맥과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번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방어전 맨 앞에는 삼성그룹 법무팀이 있다. 그만큼 삼성의 법조인맥은 화려하다.
삼성그룹에 몸담고 있으면서 변호사 자격증(외국 변호사 자격증 포함)을 갖고 있는 직원은 40여 명. 이는 다른 그룹보다 수에서도 압도적이고, 이들의 면면을 보면 질에 있어서도 웬만한 법무법인을 능가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해 삼성구조조정본부(사장 이학수)에서 법무팀을 지난해 신설하면서 대폭 인력을 보강한 점. 삼성구조본의 총인원은 7개팀 1백40명이다. 이중 법무팀은 임원 7명을 포함해 12명 선. 지난해 초 조직이 새로 꾸려졌다.
과거 비서실 시절에도 법무팀이 있긴 했지만 본격적인 모양새를 갖춰 출범한 것은 지난해 초였다. 현재 법무팀장은 김용철 전무(사시 25회). 김 전무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지검 특수 1, 2부 검사 출신이다.
삼성그룹 소속 변호사들의 분포를 눈여겨보면 특색이 눈에 띈다. 기업 관련 특허나 국제 상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무 분야를 담당하는 판사 출신이나 변호사들은 대개 계열사 법무팀 소속이다.
[지난해 구조본 법무팀 출범]
하지만 검찰 출신 변호사들은 거의 모두 삼성 구조본에 적을 두고 있다. 구조본 법무팀장인 김 전무가 검사 출신인 것은 물론, 이현동 상무(사시 29회), 엄대현 상무(사시 31회), 김영호 상무(사시 33회), 이기옥 상무(사시 34회) 등이 바로 검사 출신 구조본 멤버들이다.
여타그룹에선 변호사 출신 법무팀 직원이 통틀어도 5명이면 많다는 소리를 듣지만 삼성은 구조본의 검찰 출신 변호사만 5명인 것. 이들은 주로 2000년 이후 집중적으로 영입됐다. 이 시점은 삼성그룹 상속 문제를 놓고 오너 2세인 이재용 상무에 대한 시민단체 등의 소송이 본격화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검사 출신 외에 구조본 법무팀이 입주해 있는 삼성그룹 본관 11층에서 근무중인 법조인은 판사 출신인 김윤근 삼성전자 상무(사시 33회), 신명훈 삼성전자 상무(사시 33회), 여남구 구조본 상무(사시 30회) 등이다. 이중 김 상무와 여 상무는 지난 2~3월에 입사한 케이스.
검찰 출신인 이기옥 상무보가 지난해 11월에 합류한 것을 감안하면 삼성이 지난해 초 법무팀을 재출범 시키면서 판검사 출신 법조인맥 영입에 박차를 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구조본 소속 변호사들은 삼성 본관 11층에서 일을 한다. 같은 삼성전자 소속이라도 일반 법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는 21층에서 일하고 있다.
재계에선 삼성의 이런 검찰 출신 영입에 대해 혀를 내두르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검찰의 발언권이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도 더 커졌지만, 삼성은 새 정부 출범에 앞서 검찰 출신 법조인 영입에 박차를 가하며 ‘대비’를 한 셈이다. 새삼 삼성의 ‘정세 판단력’에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국내에선 아직도 법조계에서 전관예우라는 정서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통하고 있다. 검찰 인맥을 최근에 대폭 강화한 삼성은 검찰의 상황이나 의도에 대해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더 민감한 레이더를 갖춘 것이다. 실제로 김용철 법무팀장은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기춘 중수 1과장과 사시 동기. 물론 단순히 동기라는 점 때문에 특혜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삼성 입장에선 검찰의 내부정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동기가 있다는 것은 무시하지 못할 자산이다.
특히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에 사시 31~37기들이 중추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삼성 구조본 법무팀에 사시 29~33기의 전직 검사들이 빼곡이 포진해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대검 중수부 출신들이 검찰 요직에 포진하는 전례를 감안하면 적어도 삼성은 10년 앞을 내다본 법조 농사를 지은 셈.
물론 이런 풍부한 자체인력을 갖고 있는 삼성그룹도 외부 전문 법조인맥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삼성은 이번 대선자금 수사건을 법무법인 세종에 의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은 지난해부터 검찰 인맥을 집중 영입해 국내 최강의 검찰 인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고검장을 지낸 김경한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합류했고, 올해는 대검중수부장과 서울지검장을 거친 유창종 변호사가 합류했다. 지난 99년까지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를 지내다가 감사원장으로 입각했던 이종남 변호사(검찰총장, 법무장관 역임)도 최근 감사원장직을 끝으로 옷을 벗고 세종법무법인에 컴백했다.
여기에 삼성은 사외이사 제도를 통해 법조인맥 상층부와 한층 더 두텁게 인연을 맺고 있다. 또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를 지낸 김석수 전 대법관은 삼성전자의 사외이사로 지난 99년부터 입각할 때까지 3년여 간 활동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삼성전자는 김석수 전 대법관이 입각한 이후 그의 후임으로 역시 대법관을 지낸 정귀호 법무법인 바른법률 변호사를 선임했다.
또 송정호 전 법무장관은 삼성전기 사외이사로 현재도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 이종욱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제일모직의 사외이사, 김종건 전 법제처장관이 제일기획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검찰에 계열사 회계장부를 압수당해 허를 찔린 LG그룹의 법조인맥은 삼성에 비해 단출하기만 하다. LG그룹의 경우 그룹 차원에서 법률고문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판사 출신인 김상헌 상무가 팀장을 맡고 있다. 사시 28회 출신인 김 상무는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지난 98년 4월 LG그룹 법률 고문실에 변호사로 입사했다. 지난 5월 구조본이 해체되기 전에는 구조본 법률고문실 상무로, 이후에는 LG법률고문실 상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권오준 LG전자 상무(사시 31회)는 지난 97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뒤 97년 9월 LG그룹 법률고문실 상임변호사(이사)로 입사했다. 이후 계속 구조본 법률고문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LG전자 법무팀 소속으로 재직하고 있다.
LG는 이외에 사법연수원 졸업생인 김준호 변호사(사시 41회)와 정광일 변호사(사시 41회)를 뽑아 LG증권에 투입시켰다. 또 계열사인 LG생활건강 법무팀에 사시 40회 출신의 정인호 변호사가 과장급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서 보듯 LG의 법무인맥은 삼성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작다. 당연히 LG그룹은 이번 대선자금 수사를 외부에 맡겼다. LG건을 수주한 법무법인은 김&장.
[LG 그룹 법률고문실 운영]
김&장은 대선자금 수사 사령탑인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의 사시동기(17회)이자 대검 수사기획관 출신으로 수사실무와 검찰 인맥에 정통한 이종왕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현대 비자금 사건에서 현대상선의 변호를 맡기도 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덕분인지 최근 김&장도 대선자금 수사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법무법인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LG의 법조인맥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진영 변호사. 진 변호사는 이종왕 변호사, 안 중수부장과 사시 동기(17회)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81년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한 뒤 87년부터 94년까지 LG그룹 상임법률 고문을 맡았다.
이후 정치권에 입문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97년부터 LG상남문화재단 감사를 맡고 있는 등 LG그룹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