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는 한나라당에 건넨 불법 대선자금이 고 정주영 회장의 돈이라고 주장했다. 삼성, LG도 오너일가가 총대를 메는 형국. | ||
지난해 대선 당시 국내 4대 재벌그룹이 한나라당에 불법으로 지원한 돈이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삼성은 현금 40억원과 무기명 채권 1백12억원, LG와 현대차는 각각 현금을 건넸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 롯데, 금호 등 재계 순위 20위권 그룹들에 대해서도 조사중이어서 향후 재벌기업들이 정치권에 낸 정치자금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면 재벌기업들은 이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삼성- “대주주들이 맡긴 사재”]
삼성은 이 돈이 이건희 회장을 비롯, 그룹 오너 일가의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에 전달된 돈은 대주주들이 구조본에 맡긴 사재 중 일부”라고 말했다.
삼성이 한나라당에 넘긴 비자금은 현찰 40억원과 국민주택채권 1백12억원. 제2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종종 대기업 오너들은 이 같은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다고 한다.
특히 국민주택채권의 경우 규모가 수십조원인 데다가, 무기명 채권이기 때문에 채권을 사들이고 팔 때 신원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그룹 오너가 대리인을 앞세워 비자금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
만일 삼성이 한나라당에 건넨 돈이 계열사의 부당지원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건희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채권을 매입한 자금의 출처가 사재였는지, 아니면 편법 증여 등이었는지에 관한 확인이 필요하다.
특히 검찰은 당초 삼성전기를 압수수색한 상황이어서 자금의 출처 역시 이와 무관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차 - ”고 정주영 명예회장 돈”]
현대차그룹은 이 돈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는 무관하며, ‘고 정주영 회장의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비자금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돈”이라며 “정확히 어떤 형태로 그룹 내에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우선 고 정 명예회장의 유산 등이 모두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자식들에게 분배된 상황에서 고 정 회장이 별도의 비자금을 조성해 정몽구 회장에게 남겼거나, 아니면 증여세를 물지 않고 편법적으로 넘긴 것이 아니라면 1백억원의 돈이 회계장부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에 대해 “만약 이 돈이 대주주의 비자금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오너의 소환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고 정 명예회장의 돈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서는 현대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대캐피탈 등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현대캐피탈이 현대·기아차 등 전 계열사와 자금거래를 트고 있고, 최근에 역할이 부쩍 커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회계법인으로부터 현대차의 계열사인 현대우주항공에 대한 회계자료를 넘겨받은 부분을 면밀히 조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우주항공이 새삼스레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지난 99년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현대우주항공은 지난 99년 미국 보잉사의 중형 항공기 날개 독점공급계약 위반을 문제삼아 9천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이듬해 양측이 합의를 이뤘다며 슬쩍 소송을 취하했다. 그러나 당시 업계에서는 합의 내용이 터무니없었던 데다가, 현대가 이면 합의금을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LG - '대주주 각출’ 밀어붙여]
LG그룹 역시 자금의 출처와 관련해서는 앵무새나 다름이 없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몇몇이 내놓은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나라당에 전달된 돈은 대주주들이 갹출한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검찰발표에서도 우리측의 자금은 대주주들의 사재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확인결과 검찰측은 현재 LG를 포함해 다른 그룹들의 자금 조성경로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나, LG그룹에 대해서는 ‘대주주의 돈’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LG그룹이 자신있게 ‘대주주 갹출’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구본무 그룹 회장의 검찰 출두라는 최악의 상황을 이미 감수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만약 LG그룹이 한나라당측으로부터 대선자금을 지원해달라는 언질을 받고 대주주들이 갹출을 했다면 사실상 구 회장 등이 이를 몰랐을 가능성이 낮고, 구 회장이 사전에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면 검찰의 직접적 조사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
특히 구 회장의 경우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 상황이어서 LG그룹으로서는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보다는 오너 일가의 ‘갹출’을 통한 자금 지원이 이득이라는 판단.
그러나 LG 역시 검찰이 지난달 초 LG그룹의 계열사인 LG홈쇼핑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또다른 계열사인 LGCI에 대한 수색 계획이 잡혀있었다는 점에서 계열사를 통한 불법 비자금 조성이라는 의혹을 홀가분하게 떨칠 수는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