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채널A ‘서민갑부’
17세부터 양봉을 시작한 김형호 씨(51)는 5월이 되면 아카시아 꿀을 채취하기 위해 꽃피는 곳을 찾아 전국을 다닌다. 그는 이날만을 위해 5000만 마리의 꿀벌을 키웠다.
이때 수확하는 아카시아 꿀이 1년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형호 씨는 1000통의 벌통 중 최정예 부대를 선별해 전라남도 강진을 출발해 경북을 거쳐 경기도까지 900km가 넘는 대장정을 펼친다.
한밤중에 진행되는 벌통 수송을 위해서는 신속, 정확함이 중요하다. 예민한 벌들은 시간이 조금만 지체돼도 쉽게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벌통을 트럭에 싣는 순간부터 양봉 장소에 도착해 벌통을 내리기까지 형호 씨가 정한 골든타임은 6시간. 또한 꿀을 뜰 때까지 꽃의 상태와 벌통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벌통 옆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24시간 대기하는 게 그의 일상이 됐다.
그 덕분일까. 그는 한해 평균 100드럼의 아카시아 꿀을 수확해 약 5억 원을 벌고 있다.
형호 씨 역시 4년 전까지만 해도 양봉으로는 생활하기 빠듯한 형편이었다. 그런 그가 불과 4년 만에 집 두 채와 건물까지 35억 원의 자산을 일구게 된 것. 비법은 효율을 높인 변화에 있다.
먼저 그는 일벌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었다. 벌통 내 이동통로를 대나무에서 스테인리스로 바꾸면서 일벌이 이동하는 것을 수월하게 해 꿀 따는 속도와 시간을 늘렸다. 덕분에 똑같은 벌로 꿀 생산량이 2배가량 증가했다.
또 꿀벌이 로열젤리를 모으는 틀도 개선해 벌들이 일하는 수고를 덜어주며 생산량을 현저히 높였고 거기에 판로의 변화도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전까지는 도매로 판매했다면 소매 위주로 판매를 시작했고 특히 꿀을 테마로 한 카페를 차려 사람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그 결과 연매출을 12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물론 이런 변화를 이루기까지 열일곱 살부터 갈고 닦은 기술이 있어 가능했다. 1년에 30만 원을 받으며 산속 양봉장에 천막을 치고 벌과 함께 생활했던 형호 씨. 최고가 되기 위해 무작정 중국의 기술자들을 찾아 기술을 배워왔을 정도였다.
포기를 몰랐던 그의 노력이 오늘날의 갑부 형호 씨를 만든 셈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