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박용만 사장 윤영석 부회장 그래픽=장영석기자 zzang@ilyo.co.kr | ||
이들은 지난 2000년 실시된 한국중공업 민영화 과정에 주무 과장을 역임했던 홍기두 자본재산업국장에게 9억원대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홍기두 국장도 같은 날 구속기소됐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표적 ‘공기업 민영화’로 꼽히는 한국중공업의 매각 과정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자산 3조6천여억원의 거대 공기업 한국중공업은 지난 2000년 당시 DJ정부 공기업 민영화 일정에 따라 매각됐다.
당시 정부는 산업은행과 한국전력 보유 지분 가운데, 직접 공모를 통해 지분 24%를 매각했고, 산업은행 소유분 36%와 이에 부가된 외환은행 보유분 15.7%를 두산과 두산건설로 이뤄진 두산컨소시엄에 입찰을 통해 3천57억원에 매각했다.
이후 두산이 2001년 2월 대금을 완납하고, 같은 해 3월 주주총회를 통해 두산중공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함으로써 한국중공업의 민영화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당시 두산 컨소시엄이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뒤, 재계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삼켰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실제 한중 인수를 놓고 당시 삼성, 롯데 등 쟁쟁한 재벌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으로 알려져 뒷말은 더욱 무성했다.
다윗-골리앗 논란이 있었던 것은 2000년 상반기 기준으로 (주)두산의 자산이 2조3천9백35억원에 불과한 반면, 한국중공업의 자산은 3조6천억원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매각 당시 한국중공업 사장을 맡고 있던 윤영석 사장은 두산컨소시엄에 매각된 이후 두산중공업(주) 사장으로 유임됐고, 지난해 3월부터 두산중공업(주)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중공업의 민영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던 99년부터 2001년까지 구속된 홍기두 국장은 주무 부서였던 산업자원부에 재직했다. 그는 99년 6월부터 2000년 1월까지는 산업기계과장을, 같은해 1월부터 2001년 1월까지는 같은 국 총괄과장으로 있었다.
당시 홍 국장은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수행하고, 한국중공업의 민영화 관련 주무과장으로 99년 12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약 1년간 한국중공업의 매각방법, 입찰 참가 자격, 입찰 시기 및 절차 등과 관련된 각종 직무를 수행했다.
당시 홍 국장은 입찰 참여 가능 기업의 업종을 (주)두산 등 두산그룹의 업종과 일치하는 ‘건설·기계·플랜트사업’으로 기안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말하자면 ‘짜고 친 고스톱’이었다는 것.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두산의 한국중공업 인수가 사실상 결정된 이후, 홍기두 국장은 고교 동문 친구 모임에 참석, (주)두산 박용만 사장에게 “동생이 요즘 일거리를 찾고 있는 중인데, 연락이 가거든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 사장은 “(홍기두 국장의) 동생이 해외 운송 대상 물량에 대한 운송 대행업인 속칭 포워딩(Forwarding) 사업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두산중공업의 운송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했던 것으로 공소장에 나와 있다.
이에 따라 두산중공업(주) 윤영석 당시 사장을 통해 홍기두 국장의 동생을 관계사 조선해운(주)에 입사시켜 포워딩 사업권을 줌으로써 2001년 4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약 9억원의 수익을 취득하게 했다는 게 검찰의 조사결과.
검찰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주)두산 박용만 사장과 두산중공업(주) 윤영석 부회장이 홍기두 국장에게 9억여원의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보고, 각각 2천만원씩의 벌금형으로 기소했다.
검찰의 홍기두 국장에 대한 구속기소와 (주)두산 박용만 사장과 두산중공업(주) 윤영석 부회장을 기소한 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자산 3조6천억원짜리 대형 공기업 매각 과정에 일개 주무과장이 9억여 원의 ‘떡고물’을 챙겼다면, 그 윗선에서는 더 큰 ‘대가’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은 대검 중수부의 ‘대기업 대선자금과 비자금’ 수사에 묻혀 조용히 기소하는 선에서 일단락됐지만, ‘골리앗을 삼킨 다윗’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두산의 한국중공업 인수과정은 여전히 제2, 제3의 홍기두 국장이 불거질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또다른 공무원이 될지, 아니면 DJ정권 고위 정치인이 될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