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무 LG그룹 회장(왼쪽)과 구자홍 LG전선그룹 회장. 오랜 동반자였던 허씨 일가까지 독립행보에 나서 LG그룹은 이제 세 갈래로 분리된다. 배경은 LG그룹 상징인 쌍둥이 빌딩. | ||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이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을 설립한 지 57년 만의 일이다. 설립 반세기 만에 50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2강으로 우뚝섰던 LG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직전인 것이다.
LG그룹이 계열사별로 핵분열돼 독자경영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오래전부터 재계에 나돌았다. 하지만 이것이 가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달 말부터였다.
지난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맞물려 한창 바쁘던 시기에 LG전선그룹은 구자홍 전 LG전자 회장(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을 그룹 회장에 추대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 그룹은 또 LG전선의 구자열 사장을 그룹 CEO 겸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동안 LG그룹에서 독립운영됐던 LG전선이 ‘그룹체제’로 공식 출범하는 것이었다. 이번 그룹분리는 여러 측면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LG그룹 차원에서 보면 반세기 동안 원톱체제로 꾸려왔던 그룹이 분열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재계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과거 현대그룹의 분리 때와 마찬가지로 LG그룹의 계열분리는 재계 순위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LG그룹의 또 다른 축인 허씨 일가의 계열분리가 만약 올해 안에 완전 매듭될 경우 재계순위가 뒤바뀔 것으로 예측된다. 업계에서는 그래서 2004년을 LG그룹의 ‘경영분리 원년’으로 보고 있다.
핵분열을 시작한 LG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분열작업에 들어간 LG는 현재 크게 세 그룹으로 쪼개지고 있다.
첫째 그룹은 ‘장자 계승’ 원칙을 그대로 계승해 LG전자 등 기존 주요 계열사들은 모두 장자 일가(구본무 회장)가 맡을 예정이다. 구인회-구자경-구본무로 이어지는 ‘장자 가문’은 향후에도 LG전자, LG화학, LG텔레콤을 맡는다.
또 다른 줄기는 우성그룹으로 독립한 LG전선그룹. 이 그룹은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평회-두회 형제들의 2, 3세들이 맡게 된다. LG전선, LG니꼬동제련,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 등 4개사가 LG전선그룹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구씨 일가의 동반자였던 허씨 일가는 LG칼텍스정유, LG건설, LG유통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총괄할 예정이다.
LG그룹이 세 갈래로 쪼개지고는 있지만, 요즘의 상황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각양각색이다. 특히 구본무 회장의 표정은 쓸쓸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전자, 화학, 통신을 맡게 된 구 회장의 몫이 가장 알짜배기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동안 그룹 회장으로서 LG의 모든 계열사를 관장했던 구 회장으로서는 그 몫이 적다는 심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
게다가 구 회장이 ‘금융’ 계열사를 포기해야하는 부분도 그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고 있다. 당초 LG그룹은 계열분리는 어쩔 수 없지만 ‘전자-화학-통신-금융’에 이르는 황금분할을 고수해 LG의 위상을 지켜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LG카드의 부도위기로 말미암아 그룹은 금융 계열사를 포기할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LG그룹의 계획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됐다.
구 회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하는 금융도 금융이지만, 통신회사도 골칫덩어리다. LG텔레콤 등 그룹의 통신회사는 출범 이래 만년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 더구나 이번 대선 비자금 수사가 그룹의 주력사인 LG전자, LG화학 등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이와는 반대로 구자홍 신임 LG전선그룹 회장은 새로운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는 과거에도 LG전자라는 큰 회사의 CEO를 맡아 활약해왔지만, 그룹 회장으로서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LG전선 관계자에 따르면 구자홍 회장이 선임된 데에도 ‘장자계승’의 원칙이 적용됐다고 한다. 선대 회장인 구태회-평회-두회 회장 일가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구태회씨는 4남2녀를 뒀고, 구평회씨는 3남을, 구두회씨는 2녀를 뒀다.
이 중에서 이번에 취임한 구자홍 회장은 구태회씨의 장남이고, CEO를 맡은 구자열 부회장은 구평회씨의 장남이다.
LG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이들은 전선 그룹 출범을 앞두고 누가 대표이사 회장을 맡을 것이냐에 관해 논의를 했었지만, 결국 연장자인 구자홍 회장을 선임했다는 것. 구 회장이 이끄는 전선그룹의 경우 출범과 동시에 단숨에 재계 20위권으로 진입할 전망이다.
특히 전선과 가스사업의 특징상 매출의 변동이 적은 데다, 사업이 안정적이고 위험요인이 적어 소그룹으로 운영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
마지막으로 남은 변수는 ‘허씨’의 계열 분리. 업계에서는 오랫동안 이슈가 돼왔던 허씨 계열 분리가 올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LG그룹의 지주회사 체제가 완성 단계에 오르는 해인데다가, 구본무 그룹 회장이 최근 “1년 안에 구-허씨 개별 경영체제로 간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동업자이면서도 구씨에 다소 밀려있던 허씨 일가로서는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닌 셈.
특히 허씨가 갖고 독립할 LG칼텍스정유, LG건설, LG홈쇼핑, LG유통 등은 순자산 규모만 해도 5조원대로 평가돼 ‘새 그룹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LG그룹의 현재 모습은 10년 전 삼성그룹이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새한그룹 등 4개 소그룹으로 분열될 당시와 매우 흡사한 모습이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 삼성은 창업주 형제들의 분가인데 반해, 현재 LG의 분열은 방계 인척간의 분가라는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