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작가 사진 에세이 아날로그를 그리다 표지
[일요신문] 행복우물은 유림 작가의 사진 에세이 ‘아날로그를 그리다’를 출판했다.
이 책은 사진들과 펼쳐지는 추억에 대한 소고를 그리고 있다. 공중전화와 필름카메라, 라디오, 음악감상실, LP판, 손편지, 첫사랑, 그리고 종이 위로 번지는 빛과 시간들, 아날로그 감성으로 그려나간, 잊혀진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재현과 더불어 올해 ‘여성조선’에 인기리에 연재 된 글과 사진들도 수록됐다.
이병일 시인은 “이 시대에 다시 위로를 주는 아날로그 감성, 우리 안에 숨어있던 따뜻한 추억들과 잊혀질 뻔한 삶의 결들을 아름다운 빛과 글로 담아냈다”고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저자 유림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작가다. 세계 곳곳에 한발씩 내딛다 보니 무겁고 귀찮게 느껴지던 카메라와의 동행이 행복해지기 시작했다며 책 출간의 소감을 전했다.
계원예술제 사진부문 최우수상과 사진비평상(2006)을 수상했고 동아국제사진공모전(2009)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전 작품으로는 사진집 ‘동화’, 여행에세이 ‘멀어질 때 빛나는 인도에서’가 있다.
행복우물은 이 책에 대해 “사라진 것들을 추억하는 일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어딘지 닮아있다. 이미 쓸모없어진 것들 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소환시켜주는 사물들은 왠지 모를 위로를 전해준다.
여기, 사라져서 이제는 만나 보기 힘든 사물과 공간들-공중전화, 필름카메라, 라디오, 손편지, 음악감상실, LP판, 폐역-을 홀로 찾아다니는 한 작가가 있다. 그녀의 눈은 예리하며 따뜻하다.
잊혀진 사물들과 공간들을 찾아 아름다운 빛으로 재현해낸다. 잔잔히 스며드는, 추억으로 여행과 위로가 필요하다면, 당신의 기억 속에서 잠들어 있던 ‘아날로그를 그려’볼 것”을 조용히 권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살짝 들여다 보면 “몇 십 분마다 판을 갈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면서도 LP 음악을 즐겨 듣는 이유는 아날로그 음원만의 매력 때문이다. 지글거리는 먼지 소리도 이따금 같은 자리를 맴돌며 투닥거리는 바늘 소리도 음악이 된다.
어떤 이의 기억은 찌든 얼룩처럼 지우려 할수록 자꾸만 번져버린다. 어떤 이의 기억은 숨처럼 평생을 함께 드나든다. 누군가를 떠나며 남긴 나의 기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90년대 후반, 동인천역 부근에는 ‘심지’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었다. 좁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 4층에 들어서면 쿵쾅거리는 사운드와 함께 심장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둑한 공간에 들어서면 정면에 대형 스크린이 놓여있었고 극장형 좌석이 배치돼 있었다. 우측 코너에는 VJ 부스가 있었는데 그 앞에 하얀색 메모지와 연필을 비치해두고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할 수 있게끔 했다.
흑백사진은 인생과도 닮았다. 늘 노력 한만큼의 대가가 따라온다는 것, 우연한 순간으로 인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맞닥뜨리는 것, 그리고 문명의 이기에 기대어 잃어버리는 것 또한 그러하다.
봉숭아물은 마르고 거친 손을 예쁘게 보일 수 있는 천연의 미용 재료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에도 여름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봉숭아 꽃잎을 따러 다녔다. 사랑의 열병에 빠진 사람들의 손은 모두 붉었다.
어쩌면 그때부터인 것 같다. 풍경이고 사람이고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지금도 종종 우물 안을 들여다보듯 내 안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나 역시 그 시절 우물처럼 빠져 있는 것들에 따라 매번 다른 냄새 다른 모습이다.
소설가 박상륭 선생의 표기를 따르면 ‘아름다움’이란 ‘앓음다움’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즉, ‘앓은 사람답다’라는 뜻으로 고통을 앓거나 아픔을 겪은 사람, 번민하고 갈등하고 아파한 사람다운 흔적이 느껴지는 것이라 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운 것은 첫사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유 없이 볼이 발그레해지던 그 시절 나를 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희준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