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춘원 전 의원이 “신격호 회장은 절대로 진로 인수를 할 수 없다”고 선언해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일고 있다. | ||
지난 12월22일 <중앙일보>는 ‘롯데, 진로 인수 나섰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대한전선과 함께 진로의 최대 채권자로 떠오른 골드만삭스가 롯데를 매매 파트너로 택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였다.
현재 법정관리중인 진로는 대한전선, 골드만삭스, 법원에 의해 임명된 이원 진로 법정관리인 등 세 곳에서 정리계획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골드만삭스가 롯데를 파트너로 택할 경우 롯데와 골드만삭스는 공동으로 진로 인수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롯데는 골드만삭스와 일본 아사히맥주와 컨소시엄을 결성, 진로를 인수해 소주시장을 평정하고, 아사히맥주로부터 맥주 제조 및 마케팅 기술을 도입해 국내 맥주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대신 롯데는 일본 소주시장의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진로재팬을 공개 인수한 뒤 아사히맥주에 매각한다는 것.
만약 이런 계획이 성공하면 골드만삭스는 진로 채권 매각 수익을 극대화하고, 아사히맥주는 일본 소주시장을 잡고, 롯데는 청량음료에 이어 국내 주류시장도 평정하는 등 컨소시엄 참가자 모두에게 이득이다.
▲ 신격호 롯데 회장 | ||
어쨌든 이전부터 롯데가 ‘진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재계에선 오래된 얘기다. 지난해 초 진로 재판부의 골프회동 파문이 일어났을 당시에도 롯데 관련 인사도 연루됐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롯데는 진로와 관련해 끊임없이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던 와중에 롯데의 인수설이 구체적인 컨소시엄 구성원 명단에까지 등장한 것.
그러나 이 사실을 접한 임춘원 전 의원은 공개적으로 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임 전 의원은 이번 롯데의 진로 인수작전의 지휘부로 신동빈 롯데 부회장을 지목했다. 신 부회장이 회사 내 측근과 일본의 골드만삭스나 아사히를 동원해 인수컨소시엄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일요신문>과 만나 “신 부회장이 골드만삭스와 연계해 진로 인수를 지휘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고 단언했다.
사실 임 전 의원도 법정관리중인 진로의 이해당사자 중의 한 명. 때문에 그의 발언도 정확한 검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가 신격호 회장과 오래 교분을 나누어왔기 때문에 그 이면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그냥 넘길 수만은 없는 부분이다.
그는 롯데가 진로 인수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신동빈 부회장이 인수를 추진한다고 해도 부친인 신 회장이 승인을 안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신 회장은 남의 기업에 대해 절대로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하지 않을 뿐더러 신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너무 잘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가 진로와 관련이 있고,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신 회장이 듣고도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시도한다면 롯데는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라는 공격적인 발언도 했다.
그는 ‘신 회장이 안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냐, 아니면 실제로 그럴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신 회장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임 전 의원은 자신이 80년대 말 한 방송국의 사옥 신축을 위한 모금위원장을 할 때 롯데가 8백60억원짜리 20층 건물 시공자로 나선 비화를 들려줬다.
당시 롯데는 건설 공사비를 공사 완공 뒤 받는 이례적인 조건으로 공사를 해줬다. 사실상 그가 개인적으로 보증을 서주고, 건설대금은 완공 뒤 납부한다는 조건을 신 회장에게 부탁해 받아들여졌다는 것. 임 전 의원은 이를 “나와 신 회장만이 아는 비밀이 있기 때문에, 그런 신뢰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롯데가 골드만삭스와 연계해 진로를 인수할 경우 롯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등 “롯데가 국내에서 엄청나게 큰 국민적 저항에 시달릴 것이며 롯데의 실체가 드러나면 국내에서 사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시련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 전 의원의 이런 발언은 듣기에 따라선 엄청난 수준의 발언이랄 수 있다. 그는 “신 회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내가 있다는 것을 알면 진로 인수를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돈 계산이 확실한 그가 8백60억원짜리 공사를 하면서 건물 완공 뒤 대금을 받겠다며 뒤를 봐줬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신 회장과 그만 아는 비밀’에 대해서는 “아직은 더 이상 공개할 수는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그가 13대 국회의원으로 재직할 당시의 일을 들려줬다.
89~90년 무렵 국회에서 30대 재벌 국정감사를 할 때 롯데의 오너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당시 신 회장의 두 아들 신동주씨와 신동빈씨가 모두 일본 국적이라 문제가 됐던 것. 이런 문제제기가 있은 지 얼마 뒤 신 회장이 임 전 의원을 만나 “아들 중에 하나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는 것. 일본에서 자본을 들여와 국내 롯데왕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한편 롯데쪽에서도 진로 인수설이 보도된 뒤 “지나치게 앞서가는 이야기”라고 해명했지만 ‘진로 인수설’에 대해 전면 부인은 하지 않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롯데쪽 관계자들은 “우리가 진로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인수설이 나올 때마다 신동빈 부회장이 앞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틀렸다. 롯데그룹의 모든 결재권은 신격호 회장이 쥐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임 전 의원은 “신 회장이 최종 결재권을 쥐고 있는 게 맞다. 하지만 진로 인수권은 신 부회장이 전문경영인 수준에서 기획한 것이다. 그러나 신 회장은 절대 결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임 전 의원의 발언이 ‘엄포’인지, 아니면 일본 롯데 시게미츠 다케오 회장(한국명 신격호)의 한국 진출과 관련해 정·재계의 밝힐 수 없는 비밀 커넥션이 있는 것인지, 진로의 최종 인수자로 롯데가 낙점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