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부지는 충남 천안시 안서동에 위치하고 있다. 총규모 5천4백여 평인 이 땅은 원래 쓰레기매립장이었으나, 현재는 아파트 신축부지가 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부지와 관련해 중견 재벌인 N사의 총수가 구속되고, 굴지의 재벌회사인 S그룹의 계열사 임원들이 공사 관련 리베이트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는 등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 이처럼 각종 구설수에 시달려온 이 부지를 둘러싸고 최근 재벌 건설사인 D산업이 또다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현지에선 ‘비리의 땅’이라는 말까지 오가고 있다. 평범한 쓰레기매립장이었던 이 땅이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91년부터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되던 이 땅이 아파트 부지로 용도가 변경된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요지였던 이곳의 용도가 바뀌자 주택건설업체들이 부지개발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쓰레기매립장에서 하루아침에 아파트부지로 바뀌면서 노른자위로 떠오른 이 부지는 곧바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지난해 초의 일이었다.
이 땅이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당시 현지 언론과 환경단체 등이 안서동 아파트 신축현장에 쓰레기 침출수가 무단 방출되고 있다는 민원을 제기한 때문이었다. 침출수 파문이 커지자 대전지검 천안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김대호)는 “아파트부지 조성과정에 폐기물 처리업체가 침출수를 무단 방류하고 있다”는 환경단체의 제보를 근거로 이 부지의 쓰레기 처리를 맡고 있던 D건설(현지 환경업체) 관계자들에 대해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 수사과정에 전혀 엉뚱한 사실이 드러났다. D건설 L사장이 안서동 쓰레기매립지 복토공사를 하면서 하청업자로부터 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 이 혐의로 D건설 L사장은 구속됐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 사건은 급속히 확대됐다. 검찰은 D건설 L사장을 조사하는 과정에 8억원을 S그룹 계열 S엔지니어링 임원들에게 준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S사는 안서동 쓰레기매립지 부지개발에 대한 시공감리권을 갖고 있었다.
검찰의 수사는 다시 S사로 확대됐다. 여기서 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S엔지니어링 임원들이 받은 돈이 중견 재벌 N사의 홍아무개 회장에게 넘어간 사실이 드러난 것. S엔지니어링 임원들은 D건설 L사장에게서 받은 8억원에 5억원을 보태 총 13억원을 N사 홍 회장에게 건넸다.
홍 회장이 S엔지니어링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N사의 천안공장 신축과 관련해 시공감리권을 S엔지니어링에 준 데 따른 리베이트였다. 안서동 쓰레기매립장 부지개발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엉뚱하게 N사 홍 회장이 걸려든 셈이었다.
이 문제로 N사 홍 회장과 B사장, 안서동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의 시공사인 S사 임원, D건설 L사장은 한 묶음으로 지난해 11월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전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안서동 쓰레기매립장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올 초부터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당초 문제가 됐던 안서동 쓰레기 매립장의 용도변경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과 아파트 신축현장을 둘러싼 민원이 계속 제기되면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최근 “안서동 아파트 신축 승인과정에 시행사인 C건설사로부터 천안시청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다”며 공무원 유아무개씨를 구속했다.
유씨의 혐의는 세대별 평수 확장과 관련해 사업변경을 허가해 준 대가로 모두 1천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 안서동 아파트 시공권을 가진 D산업이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 업계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용도변경 과정에 시행사인 C사와 함께 로비에 가담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
사실 이 땅이 아파트 부지로 용도변경됐을 당시부터 현지에서는 로비의혹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쓰레기매립장의 경우 침출수 처리에만 5년 이상 걸리는 등 환경오염이 문제가 제기될 수 있어 갑작스런 지목변경이나 아파트 신축 등은 문제가 있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지적이었다.
실제로 C사에 앞서 이 부지에 아파트 신축을 추진했던 H사는 쓰레기 침출수 처리에 따른 민원발생, 막대한 쓰레기 처리비용 등으로 채산성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 개발계획 자체를 포기했다.
그러자 중소 건설업체인 C사가 사업권을 따냈다. 그런데 C사가 사업권을 따내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C사가 사업에 착수한 뒤 6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환경영향평가와 신축허가까지 매듭지어진 것. 이에 대해 당시 현지 업계에서는 “마술”이라는 표현까지 썼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초고속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중간중간에 거액의 ‘윤활유(뇌물)’가 뿌려졌음이 검찰 수사에 의해 1년도 안돼 드러나고 만 것. 문제는 이 같은 로비가 단순히 중소 건설업체인 C사의 단독 범행일까 하는 부분.
이 같은 지적에 대해 D산업은 “우리는 단순 시공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D산업측은 “시행사(C건설)에서 로비자금을 건넨 것이지, 우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시행사와 시공의 역할분담이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상 시공사도 뇌물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인 것.
실제로 지난해 이 부지와 관련해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은 또다른 재벌사인 S사도 당초 뇌물 사실이 밝혀지자 “하청업체가 저지른 비리일 뿐”이라고 강력하게 발뺌했으나 결국 검찰 수사로 뇌물비리의 꼬리가 잡혔다.
한편 이와 관련해 천안지청 관계자는 “D산업이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직접 개입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공무원 구속사태로 다시 불거진 천안 안서동 쓰레기매립지 사건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신년벽두부터 건설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