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합장 해임과 시공사 해지 논란으로 이런 바람은 실현이 힘들게 됐다. 이대로라면 언제까지 지연될지도 가늠조차 힘든 상황이다.
흑석9구역 재개발은 △2008년 9월에 정비구역 지정 △2013년 2월 조합설립인가 △2017년 11월 사업시행인가를 거쳐 이듬해 롯데건설(2018년 5월)이 시공사로 선정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현재 전체 조합원 689명 가운데 40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동안 가속도가 붙어 활발히 진행되는가 싶더니, 이내 조합원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다. 임원진 해임으로 진통을 겪은 데 이어 시공사마저 해지하는 강수를 두는 등 상황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어 주민들의 근심이 커져만 간다.
흑석9구역바로서기카페에 오른 임원모집 내용
#설계변경으로 시공사 해지, 타협안은 어디에?
앞서 지난 5월 14일(조합장 해임)과 5월 30일(시공사 해지) 총회를 열고 상정안건들을 조합절차에 따라 의결했다. 집행부 해임에는 서면결의서 제출자 345명, 현장투표자 21명 등 총 366명(기권 10명, 무효 1)이 투표에 참여했다. 특히 5월 30일은 전체 조합원 수의 절반도 안 되는 314명만이 찬성표를 던져 시공사 해지가 타당한지를 두고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문제는 이번에 상정한 안건들이 통과됐지만 사태가 매듭지어진 게 아니라는데 있다. 전 집행부 측은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소송이 진행된다면 대략 1년 남짓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공사 도급계약 해지는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을 낼 수 있을 복잡한 사안이라는 풀이도 있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루한 법정 다툼이 예고돼 있다.
당초 롯데건설은 28층 아파트 11개 동을 짓기로 했다가 25층 16개 동으로 설계를 변경하면서 조합 측과 갈등을 빚었다, 이는 서울시가 인허가 과정에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조합 측도 일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대신 조합 측은 이를 상쇄시키는 복안으로 종전에 세대 당 1.3 대이던 주차대수를 무상으로 추가로 상향하고, 프리미엄 브랜드 ‘르엘’ 사용 등을 요구했다. 만일 이를 수용하지 않을 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라도 소송으로 가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롯데건설은 “주차대수 증가에 따른 공사비는 서로 협의하면 된다. 브랜드 교체는 설계변경 과정을 거쳐 분양시점에 다시 검토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외부와의 소송? 내부 봉합부터 절실...정부 정책까지 발목
이에 앞서 흑석9구역이 멈춰선 배경으로 조합원 간의 분열을 꼽는 시각도 주목된다. 법원에 가처분 신청 중인 상태라 조합의 전 임원들의 잘잘못을 판단할 근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독단적인 집행부의 일 처리를 이유로 들어 해임안이 의결됐다면 해당 사업 관계자들은 매우 투명하고 공정한 논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터에 가칭 흑석9구역바로서기(비대위)가 지난 5월 총회에 동참한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사전에 임원후보자 모집을 실시하고 있는 점은 일부 조합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임원이 될 자격을 묻기 위해 비대위가 카톡방에 올린 내용에는 △해임총회 참여(서면,현장) 조합원 358명 대상으로 제한 △해임총회 발의서 제출 조합원 약 100명 대상으로 참여자 제한 △바로서기 카페, 카톡에 포함된 조합원 약 250명으로 참여자 제한 △바로서기 모임 회비 납입한 조합원 약 110명으로 참여 제한 등이 명시돼있다. 비대위는 여론조사를 통해 이 중에 1가지를 채택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당부사항으로 ‘여론조사를 통해 발탁된 후보에 대해서는 본인이 지지하지 않은 후보라 할지라도 비대위가 추천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해 단합된 힘을 모을 수 있도록 지지를 부탁드린다. 모집공고 내용을 조합원들 메일로 발송한다’고 적었다.
흑석9구역 조합원 수는 689명이고, 비대위에 회비를 납입한 조합원은 6분의 1가량인 11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분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새 집행부가 탄생한들 흩어진 조합원들의 마음을 과연 끌어모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조합 관계자는 “나머지 300명은 필요 없다는 분위기다. 총회를 열어 자기들 사람들로 임원을 채워 장악하겠다는 상황”이라면서 “현 상태면 사업이 언제까지 지연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는 단순히 롯데와의 갈등과 타협이 필요한 현 상황 앞에서 내부적 분열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지적 이상의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연이어 발동한 부동산안정화 대책으로 근래 강남3구 아파트 실거래가가 뚜렷이 하향세를 보이는 가운데 인접한 동작구에까지 그 여파가 미칠 거라는 전망이 속속 나온다. 각종 사업 추진에도 적신호 아니냐는 지적이 떠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광수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18일자 리포트에서 “지금은 냉철히 한국 부동산 시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서 “토지거래 허가제, 재건축 규제 강화로 강남을 중심으로 한 매매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재건축 정비사업의 속도 둔화를 예상했다. 채 연구원은 한 언론을 통해 “시도 차원에서 재건축 안전진단 기관을 관리한다면 현행보다 더욱 까다로워지고 나아가 재건축 속도 둔화 등이 예상된다”고 꼬집었다.
일부 조합원들은 이번 대책 자체의 파장은 물론, 천정부지 치솟은 서울의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의 초강력 후속대책이 앞으로도 꼬리를 물고 나올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도 상당한 타격이 계속 더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일단 사업이 항로를 어느 정도 그리며 나가던 중에 암초를 만났기 때문에 이를 피해 다시 항로를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지금 전혀 슬기로운 대책 추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송기평 경인본부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