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왼쪽)과 LG전자 김쌍수 부회장 | ||
2004년 벽두부터 국내 가전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국내 가전업계에서 ‘샐러리맨의 전설’로 불리는 전문경영인 두 명이 일생일대의 자존심을 건 혈전을 벌일 태세이기 때문. 그 주인공은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이다.
윤 부회장과 김 부회장은 모두 국내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스타 경영인이다. 그러나 그동안 두 사람이 정면으로 맞붙어 승부를 벌일 기회는 드물었다.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 중 반도체, LCD부문을 주로 챙겨왔고, 김 부회장은 LG전자의 생활가전부문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삼성그룹의 정기 임원 인사에서 윤 부회장이 생활가전부문 총괄 부회장을 총겸임키로 함에 따라 두 사람은 백색가전시장에서 숙명의 승부를 벌여야 할 상황에 처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 부문은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전자렌지 등 대다수의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LG전자가 삼성을 앞선다.
LG전자의 지난해 전체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지난해 1분기 1조2천억원, 2분기 1조6천억원 등 분기별로 1조원대가 넘는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의 가전 사업부문은 지난 4분기에는 총 8천6백억원을 기록해 LG보다 뒤진다.
더욱이 지난 4분기 삼성전자의 다른 부문 매출이 반도체 5조8천억원, 정보통신 3조9천억원, 디지털미디어 2조1천억원 등 모두 수조원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삼성으로서는 가전부문이 골칫덩어리인 셈.
이런 상황에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 가전부문을 직접 진두지휘할 계획이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윤 부회장이 1차로 도전장을 던질 LG전자 김쌍수 부회장과의 진검승부도 또다른 흥미거리 중 하나다.
더욱이 이 두 사람은 그동안 몸담아온 회사만 다를 뿐 지난 30여 년 인생을 걸어온 길이나 심지어는 사생활에 있어서까지 닮은꼴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 지난해 4월21일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과학기술훈장을 받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 ||
반면 김 부회장은 170cm의 키에 조금은 넉넉한 체형으로, 그의 웃음을 보면 꼭 옆집 할아버지같은 넉넉한 인상을 받는다. 이런 첫 인상은 이들이 사내에서 갖고 있는 별명을 들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윤 부회장의 사내 별명은 ‘돌격대장’. 다소 샤프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직원들에게 무척 너그럽고 포용력이 있는 경영인으로 불리지만, 일단 목표를 잡고 나면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만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저돌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생활가전부문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윤 부회장이 긴급 투입된 것도 그의 이런 저돌성 때문이라는 것이 삼성전자 관계자의 설명.
반면 김 부회장의 별명은 ‘오야붕’, 또는 ‘쌍칼’. 푸근한 첫 인상과는 조금 다르게 사내에서는 강력한 추진력과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수장으로 불린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LG전자 생활가전은 의외로 삼성전자의 도전에 대해 사뭇 여유로운 모습이다.
윤 부회장과 김 부회장은 모두 양력 1월에 태어나 학교를 또래보다 한 해 일찍 들어갔다. 나이는 윤 부회장이 한 살 많다. 윤 부회장은 1944년생으로 지난해 12월21일 환갑을 맞았다. 1945년생으로 해방둥이인 김 부회장은 올해 예순이다.
두 사람은 모두 공과대학을 나왔지만, 학연에서는 인연이 깊지 않다. 윤 부회장은 지난 66년 서울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고, 김 부회장은 대학시절 군대를 다녀와 윤 부회장보다 3년 늦은 지난 69년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 지난해 8월1일 국정토론회에서 대통령과 장차관을 상대로 특강을 하는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 ||
윤 부회장은 지난 66년 서울 공대를 졸업하자마자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이후 지난 77년 삼성전자 동경지점장을 거쳐 79년 기획조정실 실장, 80년 TV사업부장, 81년 비디오사업부장, 85년 연구소 소장 등 삼성전자의 곳곳에서 근무했다.
그의 40대는 ‘삼성전자 가전’으로 시작해 끝이 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당시 삼성전자의 가전부문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밤낮없이 가전제품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그가 삼성의 생활가전에 푹 빠져있을 당시 라이벌인 김쌍수 부회장의 행보도 같았다. 김 부회장 역시 지난 69년 한양 공대를 졸업한 직후 LG그룹 공채로 입사해 지금의 LG전자 전신인 금성사 가전분야에서 일했다. 이후 92년 금성사의 키친웨어 상무, 95년 리빙웨어 상무, 같은 해 전략사업단장 등 가전업계 요직을 두루 거치며 ‘평사원에서 CEO’가 되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쌓아왔다.
그러나 지난 2000년대를 전후해 두 사람의 행보에 변화가 생겼다.
윤 부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한국정보산업연합회 회장, 게임올림픽 조직위원장, 삼성구조조정위원장 등을 맡으며 가전업계와의 거리가 조금 멀어졌다.
반면 김 부회장은 지난 2001년 LG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 사장을 시작으로 부회장,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를 잇따라 꿰차며 LG전자 가전사업부문의 신화로 떠올랐다. LG전자 안팎에서는 LG의 생활가전분야가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1위 업체로 우뚝 성장한 것을 두고 김 부회장의 외길 인생과 종종 비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30여 년 한 길로 매진해온 두 사람은 ‘이순’의 나이에 다시 한번 시험대에 나란히 올라서게 됐다. 업계에서는 올해 벌어질 삼성과 LG의 가전 승부를 두고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생활에서는 종교, 취미 등이 모두 같아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이 영원한 가전시장의 맞수 대결에서 어떤 결말을 맺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