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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돼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 9일 정세균 대표, 지지자들과 함께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여권 상층부에서 한 전 총리 사건에서 그냥 물러날 경우 당장 서울시장 선거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하반기 국정운영의 동력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 수사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여권이 ‘강공 모드’로 나가게 된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지난 4월 9일 한 전 총리 무죄가 선고된 직후 김준규 검찰총장은 비공개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이 자리에서는 한 전 총리 사건을 담당했던 재판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고 일부 참석자들은 수사팀에 대한 문책론을 제기했다고 한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3심 중 이제 겨우 1심이 끝났을 뿐이라며 냉정해지자는 의견에 모두들 공감대를 나타냈다.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다음 재판에 임할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우리보고 ‘한명숙 선대위’라며 비아냥거리고 있는데, 결국 우리에게 고맙다고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혐의들을 중앙지검 특수1부가 확인 중에 있다. 별건 수사가 아니라 불거진 의혹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묵묵히 수사를 진행해 확실한 증거를 수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한 전 총리 수사는 앞으로 두 갈래로 나뉘어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그동안 한 전 총리 사건을 맡아왔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확보에 전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검찰 내 ‘에이스’들로 구성됐다는 특수2부가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또 다른 수사는 대검 중수부로부터 ‘한 전 총리 파일’을 건네받은 특수1부가 맡는다. 특히 여기엔 한 전 총리의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자금과 친·인척 자료들이 담긴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의 비상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 전 총리와 관련된 소문들이 국회에서 넘쳐나고 있다. 검찰의 ‘흠집 내기’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만에 하나 사실로 드러날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한 전 총리를 타깃으로 삼아 모든 것을 파헤치려 하는 것 같은데 노골적인 표적 수사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리 1심 선고공판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4월 8일 특수1부는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 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한 아무개 씨가 운영하는 건설회사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를 놓고 한 전 총리 측과 야권에서는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검찰 측은 “한 씨가 세 차례에 걸쳐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한 전 총리 최측근인 김 아무개 씨를 소환해 확인할 것이다. 특수2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에 대해 한 전 총리 측은 “곽영욱 전 사장과 마찬가지로 이미 구속 수감 중인 한 씨를 불러다 조사했다. 어떤 거래가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야권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인 한 전 총리를 죽이려는 전형적인 정치검찰의 행태”라고 성토했다.
특수1부가 대검 중수부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엔 한 전 총리 남편인 박성준 교수와 관련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곽 전 사장 건과는 별개로 지난해 말부터 한 전 총리와 관련된 첩보들을 모으고 나름대로 확인을 했다. 그중 신빙성이 제법 있는 것들만 추려 특수1부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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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 박성준 교수. | ||
그러나 검찰 수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전 총리 무죄 이후 ‘표적 수사’라는 야권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현실에서 남편까지 수사 리스트에 올릴 경우 엄청난 비난 여론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 이미 민주당은 한 전 총리 수사와 관련해 이 대통령 사과와 이귀남 법무부 장관·김준규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한 친노 인사는 “수세에 몰린 검찰이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박 교수 수사는) 치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만약 실체가 없을 경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고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제 곧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주년이 돌아오는데 보복수사를 받고 있는 한 전 총리와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노 전 대통령이 ‘오버랩’되면서 한 전 총리 지지율이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 내에서는 오히려 검찰 수사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미묘한 기류도 감지된다.
검찰의 ‘우군’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나라당에서조차 한 전 총리 수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인 서울시장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 때문이다. 나경원 원희룡 등 서울시장 후보들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고 일부 의원들은 ‘수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 선거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정두언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하려면 조용히 하든지, 제대로 못할 거면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검찰의 최근 움직임과 관련해 “한 전 총리 남편까지 수사하는 것은 ‘과잉 충성’이다. 야권의 ‘별건 수사’ 주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방선거에 전혀 득 될 것이 없다.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한명숙의 X맨’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며 “수사가 중단되지 않으면 서울시장 선거는 물론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전 지역에서 고전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하고 한 전 총리 수사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검찰은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귀남 장관 역시 지난 4월 1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현재 한 전 총리에 대한 것은 별건 수사가 아니다. 수사를 미루지 않겠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정치권에선 검찰의 강성 기류를 여권 핵심부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한 전 총리 무죄 파장이 예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유권자들은 천안함 사태, 무상급식 문제들을 더욱 우선순위에 놓고 있었다”면서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처럼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진위가 서서히 밝혀지면) 한 전 총리의 최우선 덕목인 도덕성이 조금씩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대선 공신’인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 역시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다고 여기서 한 전 총리 수사를 중단하면 우리가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 아니냐. 그럴 경우 지방선거 패배보다 더 큰 후유증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 전 총리 수사는 미루거나 멈출 수 없는 사안이다. 선거가 끝나면 수사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최대한 선거 전에 끝내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친박 계열의 한나라당 한 의원은 “검찰이 야권의 유력 정치인인 한 전 총리를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한 전 총리 수사에 관여한) 현 정권 인사들은 그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