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사장 | ||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재기의 발판으로 삼았던 아이빌소프트가 김태정 전 법무장관이 대주주로 있는 로시콤이란 회사에 적대적 M&A를 당하면서 기반을 잃을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가 경영복귀를 선언한 지 꼭 1년 만의 일이다. 그가 최근 경영 퇴진설에 휘말린 배경에 전직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태정씨가 깊숙이 연관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더욱 세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일까.
김진호 비젼텔레콤 사장의 경영 포기설이 흘러나온 것은 지난 1월26일 아이빌소프트라는 회사의 주총장에서였다. 이 회사의 지분은 김진호 사장이 대주주인 비젼텔레콤이 14.2%, 김태정 전 장관이 대주주인 로시맨이 13.8%, 김태정 전 장관 개인이 0.3%를 갖고 있다.
최대주주인 비젼텔레콤은 김진호 사장이 경영하고 있는 회사고, 로시맨은 김 전 법무장관이 대표이사인 로시콤의 자회사다. 이 회사의 지분은 김진호 사장측이 14.2%, 김태정 전 장관측이 14.1%를 각각 갖고 있는 셈이다.
김 전 장관측은 지난해 중반 아이빌소프트의 경영권을 장악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런 이유로 인해 이 회사의 주총장은 당초 ‘김진호 대 김태정’ 양측의 팽팽한 표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주총 당일인 지난달 26일 김 사장은 물론 비젼텔레콤의 직원 단 한 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았고, 이에 따라 주총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김태정 전 장관측의 일방적 승리로 주총이 끝난 것.
예상과 달리 싱겁게 끝난 이날 주총 이후 김 전 장관이 이끄는 로시맨은 우호지분 등 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아이빌소프트의 경영권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 주총 직후 로시맨측은 아이빌소프트의 경영 이사진을 대거 교체해버렸다.
이렇게 되자 업계에는 김 사장측이 이날 이 회사의 주총에서 주권을 행사하지 않은 배경을 두고 갖가지 추측이 오가고 있다.
물론 적대적 M&A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패했다고 해서 경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김 전 장관측이 아이빌소프트에 이어 김 사장이 이끌고 있는 비젼텔레콤의 경영 및 소유권까지 넘보고 있다는 점이다.
로시맨의 김지태 이사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아이빌소프트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은 우리의 1차 목표였으며 빠른 시일 내에 비젼텔레콤의 경영권까지 확보해 두 회사에 대한 M&A 작업을 깔끔하게 매듭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 최근 김진호 사장이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회사가 김태정 전 법무장관측에 M&A당해 화제다. | ||
물론 김 전 장관측이 이 회사에 대한 M&A를 성공시켜 경영권을 장악한다고 해도 김 사장의 유임을 허락하면 아직까지 이들 회사의 대주주인 김 사장의 거취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김 전 장관측이 비젼텔레콤까지 합병할 경우 김진호 사장의 재기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김지태 이사는 “김진호 사장이 경영인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다른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못박았다.
아이빌소프트와 비젼텔레콤에 대한 M&A를 매듭지은 후 현재 대표이사로 돼있는 김진호 사장을 현직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는 것이 김 전 장관측의 구상이다. 따라서 김 전 장관측이 M&A를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을 경우 김진호 사장의 퇴진을 둘러싸고 양측이 다시 한번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번 경영권 인수작전은 누가 주도하고 있을까.
로시맨의 김 이사는 “김 전 장관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회사 합병, 이사회 등에 관한 얘기들이 일일이 보고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김태정 전 장관이 이번 경영권 및 소유권 인수작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이사는 “하지만 코스닥 업체의 M&A를 주도하다보니 우연히 김진호 사장과 연관이 있는 기업이 대상이 된 것일 뿐이며 특정인을 겨냥해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이사의 이 같은 발언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최근 항간에 나돌고 있는 김태정 전 법무장관과 김진호 사장 간의 해묵은 감정싸움이라는 추측에 대한 경계성 발언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벤처업계에선 이번 아이빌소프트의 경영권 이동과 관련해 “김진호 사장에 대한 김 전 장관의 배신감 때문”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두 사람 간에 어떤 해묵은 감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금전적 거래에서 빚어진 마찰이 아니냐는 소문도 오가고 있다.
한편 이번 아이빌소프트의 정기주총과 관련해 김진호 사장측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비젼텔레콤의 IR담당자는 “대주주가 회사(아이빌소프트) 주총장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총 전에 미리 결정된 사안이 많았기 때문에 불참한 것뿐인데 김 사장의 경영 포기설 등이 나와 난감할 뿐이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김 사장은 비젼텔레콤과 관련된 사업 때문에 지난 12월부터 한 달이 넘도록 일본에 체류하고 있다”며 “(로시맨에 대응해) 딱히 입장을 밝힐 처지도 아니고, 경영진에서도 전혀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로시맨측은 아직까지 할 말이 많다는 표정이다. 로시맨의 한 관계자는 “아이빌소프트 경영권 장악으로 계획의 50% 정도가 달성됐다”며 “모든 일이 매듭지어지고 나면 뭔가 더 할 얘기가 있을 것”이라며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