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인사 오찬. 왼쪽부터 손길승 SK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노 대통령,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 ||
특히 그동안 선두 삼성을 따라잡기 위해 부지런히 뒤를 추격했던 LG와 현대차, SK 등 재계랭킹 2~4위권 재벌들 사이에 2위다툼이 치열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은 자산 1백74조3천3백43억원으로 재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어 LG가 75조9천8백24억원으로 2위, 현대차그룹 46조1천2백57억원으로 3위, SK 41조3천6백85억원으로 4위에 각각 랭크돼 있다.
그러나 올해 안에 LG 등 주요 그룹들의 내부에서는 그룹분리와 계열사 매각 등이 잇따를 것으로 보여 그룹순위에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불거진 재계 비자금 처리 문제가 총수 소환과 사법처리로 이어질 경우 일부 계열사들의 경영은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보여 또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삼성
자산 규모에서 2위권에 비해 2배 이상의 볼륨으로 성장한 삼성은 이제 더이상 국내 재계 순위 경쟁은 무의미해졌다. 삼성은 국내 기업과의 경쟁보다는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의 경쟁에 더욱 치중할 계획이다.
올 매출액 목표치를 정부 1년 예산보다도 많은 1백20조원으로 잡고 있는 삼성은 국내외 시설투자에만도 웬만한 재벌그룹의 연간 매출에 해당하는 11조원 이상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연구개발 투자비만 해도 4조원 이상을 책정해 놓고 있다. 삼성의 이 같은 투자액은 지난해 13조3천억원보다 17% 늘어난 수치다.
삼성은 이달중으로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을 합병할 예정이어서 전체적인 자산규모는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반도체 호황과 PDP, TFT-LCD 등 주력 상품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2위권과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아 온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편법상속 문제 등이 변수라면 변수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가 지난 96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시가보다 9백69억원 이상 싸게 인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또 에버랜드의 CB를 이재용씨에게 시가보다 싸게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당시 에버랜드 사장인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과 당시 상무인 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치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건 노무현 정부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부패 정치인들’에 대한 단죄를 진행하고 있지만, 4월 총선 이후에는 대기업 등의 편법 상속과 비자금 문제 등 ‘재벌개혁’이 또다른 이슈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대기업들의 자금 흐름을 꿰뚫게 되는 부수입을 올렸다.
검찰의 수사가 확대될 경우 아무래도 재계 1위 삼성이 ‘재벌개혁’의 타깃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 LG
현재까지 자산규모면에서 재계 2위를 고수하고 있는 LG는 지난해 말 LG전선 등 4개사를 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데 이어 최근 LG카드와 LG증권 등 일부 금융계열사를 포기하기로 했다.
LG가 포기한 카드와 증권 두 회사의 경우 자산이 24조7천여억원에 달해 LG는 이들 금융사를 포기하면 자산총액이 재계 3위와 4위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과 SK와 비슷해지는 셈이다.
이에 앞서 LG그룹은 지난해 구자홍 회장이 이끄는 LG전선그룹이 LG칼텍스가스, 극동도시가스 등 기존 LG그룹 4개 계열사를 갖고 사실상 독립해 그룹규모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올해는 허씨 일가가 경영권을 쥐고 있는 LG건설 LG유통 LG홈쇼핑 LG칼텍스정유 등이 별도 소그룹으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아 LG그룹의 재계 2위 수성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와 함께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 ‘출금’ 조치를 당한 바 있는 구본무 회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와 사법처리 가능성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 2위’를 방어해야 할 LG에게는 안팎으로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 외적요인에도 불구, LG는 올 한해 9조4천억원을 투자,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해 5조1천억원 대비, 33% 증가한 6조8천억원을 PDP 및 TFT-LCD, 차세대 단말기, 정보전자소재 등 향후 지속적인 고성장이 예상되는 고부가제품의 시장선점을 위한 설비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 2001년부터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재계 3위에 랭크돼 있는 현대차그룹은 세계적인 경기호전에 힘입어 재계 2위 진입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 한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합쳐 매출액 목표를 45조원 이상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이 같은 매출액 목표치는 재계 1위 삼성의 주력 기업 삼성전자에 맞먹는 것이다.
또한 현대차그룹이 거느리고 있는 철강 부문 계열사들의 매출 목표치도 만만치 않아 현대차그룹이 삼성에 이어 재계 2위로 도약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유력시되고 있다.
물론 현대차그룹 계열사 가운데 현대카드가 카드사 부실문제로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카드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충분히 커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차는 자산, 매출 등 재무상의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것과 관련, 내부조직도 옛 현대그룹 시절의 통할조직 형태로 기본틀을 바꾼다는 방침을 정했다. 즉 현대모비스를 축으로 현대차-기아차-INI스틸로 묶는 그룹경영형태를 만들어낼 생각이다.
현대모비스를 그룹의 지주회사격으로 만드는 이유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정몽구 회장일가의 지배권이 매우 낮기 때문. 정 회장 일가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현대자동차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그룹소유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아직 그룹경영 일선에 등장하진 않았지만 2세 경영인인 정의선 현대기아자동차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도 나름대로 나서고 있다. 구체적인 방향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특정 계열사를 분리한 뒤 이를 통해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의 지분을 인수하는 스리쿠션식 지분확보방식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SK
대우-현대그룹의 잇단 몰락으로 재계 2위권에 성큼 다가섰던 SK는 지난해 ‘분식회계’ 등으로 치명타를 입으면서 한발짝 물러났다.
분식회계의 홍역을 치른 바 있는 SK는 SK글로벌(SK네트웍스)의 몰락에 따른 그룹규모 위축을 SK가치 재무장 등의 전략을 통해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실추된 기업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경영투명성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을 올해 주요 경영목표로 삼고 있다. SK는 지난해 대비 6% 증가한 매출 53조원을 목표로 수립했다.
그러나 SK는 지난해 10월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맺은 경영구조개선약정에 따라 현재 59개인 계열사를 10여 개로 대폭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 가까운 시일 안에 재계 2위 탈환은 여의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SK네트웍스와 호시탐탐 경영권을 노리고 있는 대주주 소버린을 상대로 경영권 방어에도 적지 않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SK는 다른 경쟁재벌들에 비해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고, 확실한 캐시카우(현금확보형 루트)도 가지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몸집불리기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순익만 2조원을 남긴 SK텔레콤을 바탕으로 SK는 그룹재도약에 나서기 위한 내공을 쌓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