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이강환, 정명석, 주수도. |
이 와중에 이 씨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 과거 ‘조폭잡는 검사’ ‘저승사자’로 이름을 떨쳤던 전 대검 형사부장 출신인 조승식 변호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사시작 전부터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검찰이 벌써부터 이 씨의 호화 변호인단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조 변호사는 1991년 ‘범죄와의 전쟁’ 때 범죄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이 씨를 기소, 8년간 옥살이를 시켰던 인물이다. 과거 ‘적군’이나 다름없었던 이 씨를 ‘손님’으로 받아들인 조 변호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불법은 아니지만 사건 수임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씨의 변호인 중에는 1991년 이 씨의 1심 재판을 담당했던 황익 변호사도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정·관·재계 거물급 인사의 변호인단에는 항상 거물급 변호사들이 있었다. 수사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은 줄곧 있어왔지만 큰 사건에 휘말린 유력인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매머드급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맞섰고, 선임된 변호인들은 구속집행정지나 보석을 끌어내는 ‘실력’을 과시해왔다.
하지만 ‘한자리’ 차지했던 전관 출신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한솥밥’ 먹었던 검찰과 법조계 선후배 간, 혹은 담당 재판부와 변호인 간의 어색한 조우 및 껄끄러운 대결을 연출했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격적으로 지탄받을 행위로 기소된 유명인들을 변호한 스타급 인사들 역시 “돈독 올랐다”는 노골적인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일부 인사들은 “법이론상 변호사는 살인마나 매국노도 변호할 수 있다. 그들도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며 직접 해명을 하기도 했지만 “변호사로서 사람을 가릴 이유는 없지만 일정 지위에 있었던 이들은 사건을 가려 맡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순 없었다.
삼성특검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조준웅 변호사는 2008년 10월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JMS 정명석 총재의 항소심 공판 변호사로 합류했다. 조 변호사가 성직자 신분으로 여신도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성행각을 저지른 파렴치한을 변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에서는 그의 처신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해 당시 조 변호사는 “특검법상 다른 사건의 변호를 맡아도 문제될 게 없다”며 “정 총재가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라고는 하나 의뢰가 들어오면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 변호사 외에도 정명석 총재 변호로 구설에 오른 이는 또 있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신기남 전 의원은 2009년 4월 정 총재의 대법원 상고심 변호인단에 명단을 올려 집중 포화를 맞았다. 당시 신 변호사 측은 “법무법인의 대표로서 다른 변호사가 맡은 사건에 자동으로 이름이 올라갔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생계형 변호인가” “다시 정치할 생각을 접었냐”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2007년 10월 물러난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프라임그룹 백종헌 대표 변호를 맡았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 1년도 되지 않아 기업비리 사건 변호를 맡은 것에 대해 법조윤리에 위배되는 처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정 전 총장은 “전관예우 논란이 끊이지 않는 판에 드러내놓고 사건을 수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무실을 차려놓고 파리만 날릴 수도 없는 묘한 처지”라고 하소연 한 바 있다. 또 세간의 비난에 대해서는 “거대 비리사건은 비중 있는 법조인이 맡아 변호활동을 해야 하는 분야다. 선임 자체를 악덕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2006년 국내 최대 다단계 업체인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의 변호인으로 활동해 원성을 샀다. 2005년 6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후 사건수임에 신중하기로 소문나 있던 송 전 총장이 주 회장 사건을 수임한 것과 관련해 역시 ‘적절치 못한 처사’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주 회장은 송 전 총장 외에도 김영진 전 대구지검장과 동부지검 차장검사 출신인 박태석 변호사, 대검 형사부장 출신의 제갈융우 변호사 등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준웅 변호사나 정 전 총장, 송 전 총장 같은 스타급 인사들이 여론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변호하는 것과 관련, 법조계 일각에서는 지저분한 루머들이 적잖이 나돌았다. 특히 억대의 착수금을 포함해 수십 억에 달하는 엄청난 수임료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지만 정확한 금액은 확인할 순 없었다.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여파로 수사 책임을 지고 검찰을 떠났던 수뇌부들도 꺼림칙한 행보로 입방아에 올랐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문성우 전 대검 차장, 그리고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은 퇴임 반년 후부터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특수 사건의 변호사로 등장했다. 임 전 총장은 퇴임 직전까지 직속 부하였던 이창세 검사장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SLS조선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임했고, 문 전 차장과 이 전 부장은 1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된 스테이트월셔 컨트리클럽 대표 공 아무개 씨의 변호를 맡았다.
재계 쪽이 ‘회장님 구하기’ 일념하에 심혈을 다해 구성한 ‘황금방패’는 더욱 눈부셨다. 특히 재벌 총수나 회장님이 연루된 대형사건에는 내로라하는 실력파 인물들이 대거 합류했는데 변호인단에 오른 인물들의 이름값으로만 따져봐도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연상케 했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그야말로 ‘돈잔치’가 따로 없다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았다.
797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변호인단에는 최경원 전 법무부 장관과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이명재 전 검찰총장, 이병석 전 중수부 검사, 이승섭 전 서울중앙지검 첨단수사부장 등 쟁쟁한 인물들이 대거 합류했다.
두산그룹 총수일가의 326억 원 횡령사건에도 어김없이 법무법인 3개사에 포진된 30여 명에 육박하는 초호화 변호인단이 등장했다.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김동윤 변호사를 비롯해 서울지검장 출신의 박태종 변호사,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출신의 장용석 변호사, 인천지검 부장검사를 지낸 한명섭 변호사 등 전직 검사장 및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대거 포진됐다. 또 윤동민, 김회선, 조응천 변호사 등은 모두 전직 검사장 출신이었다. 특히 1심 재판과정에는 퇴임한 지 얼마 안된 윤재식 전 대법관이 변론에 나서기도 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