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이 7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하다 난관에 부딪힌 경복궁 옆 송현동 49-1 부지.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대한항공은 지난해 9월 서울 송현동 49-1 일대 약 3만 6000㎡(약 1만 900평) 부지를 복합문화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곳은 원래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활용되다 지난 1997년 삼성생명에 매각됐고 11년 후인 2008년 대한항공이 삼성 측으로부터 사들였다. 이 부지는 서울 한복판인 경복궁 옆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엔 덕성여중·고, 풍문여고 등 학교들이 있고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등이 인접해 있다.
대한항공은 이 부지에 지상 4층·지하 4층 규모(연면적 13만 7400㎡· 약 4만 1600평)의 7성급 호텔과 문화·집회시설을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객실 수는 많지 않지만 화려하게 꾸며진 부티크 호텔을 축으로 주변의 갤러리 등 문화시설과 조화를 이루는 대규모 문화 공간 조성을 계획해 온 것이다. 현재까지 국내 최고급 호텔은 6성급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파트하얏트호텔과 광진구 광장동 W호텔이다. 이들을 뛰어넘는 7성급 호텔이 서울 한복판에 생긴다는 점과 더불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가 그룹의 호텔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까닭에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개발은 재계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이 지역 관할 교육청인 서울 중부교육청이 ‘서울 한복판에 외국인들이 들르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명소’를 만들겠다는 대한항공의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대한항공이 개발하려는 부지는 학교 인근 지역이라 학교보건법에 따라 관할 교육청의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30일 중부교육청은 심의를 통해 대한항공이 제출한 복합문화단지 조성안을 허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학교보건법상 호텔은 교육환경에 지장을 주는 유해시설로 지정돼 있다. 학교로부터 50m 이내 지역은 절대정화구역으로 호텔 같은 시설을 절대 건립할 수 없으며 학교에서 50~200m 이내 지역엔 관할 교육청의 허가에 따라 건립 여부가 결정된다.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는 덕성여중·고 풍문여고와 200m 이내 거리에 있다. 중부교육청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 계획안은 인근 교육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돼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호텔만을 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공연장 전시장을 망라한 복합문화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중부교육청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부교육청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호텔과 문화시설을 따로 짓는 것이 아니라 큰 호텔을 짓고 그 안에 부대시설로 전시장과 공연장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라며 심의 결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소송 여부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송현동 부지에 거액을 투자한 대한항공이 법적공방을 감수하고서라도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8년 6월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 원에 이 땅을 사들인 것으로 부동산 등기부에 기재돼 있다. 그런데 이 땅 매입 당시 대한항공의 재정 상태가 그다지 넉넉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시된 내역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2008년 1조 9424억 원의 당기순손실(적자)을 기록했다. 지난해 역시 988억 원의 적자를 냈다.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등기부엔 대한항공을 채무자로, 농협중앙회를 근저당권자로 하는 근저당권 설정 계약이 나와 있다. 대한항공 부지 매입 7개월 후인 2009년 1월에 맺어진 계약으로 채권최고액은 1920억 원이다.
이와 더불어 농협중앙회는 이 땅에 대해 지상권 설정까지 해둔 상태다. 지상권은 ‘타인 소유의 토지 위에 있는 건물이나 수목 등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물권’을 뜻한다. 농협중앙회의 지상권 존속기간은 ‘2009년 1월 13일부터 만 30년’이라고 등기부에 기재돼 있다. 결국 대한항공은 적자 상태임에도 큰돈을 들여 이 부지를 매입한 데다 토지 사용 일부 제한까지 감수하면서 금융권으로부터 거액을 끌어온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 대한항공이 법정 공방을 거쳐서라도 개발 이익을 거둬들여야 하는 입장이라고 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1997년 삼성생명이 이 땅을 사들이면서 “삼성 측이 이곳에 미술관을 지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결국 삼성은 지난 2004년 한남동에 리움 미술관을 건립했다. 이후 삼성은 송현동 부지에 대한 별다른 개발에 나서지 않다가 지난 2008년 대한항공에 팔아 넘겼다. 이 과정에서 ‘삼성과 해당 관청 간의 신경전 때문에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미확인 소문도 나돌았다. 이런 까닭에 “삼성도 못한 옛 미 대사관 (직원숙소) 부지 개발에 대한항공이 나섰다”는 평이 따르기도 한다.
삼성생명은 미국대사관 측으로부터 송현동 부지를 1400억 원에 사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2008년 대한항공은 그 두 배 이상 가격을 치르고 부지를 매입해 7성급 호텔 건립의 꿈을 키워왔다. 미국 대사관에서 삼성으로, 다시 대한항공으로 주인이 바뀌는 동안 10년 넘게 방치돼온 이 땅에서 대한항공이 최고급 호텔 건립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을지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