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탈레스 전시 홍보관(위)과 LIG넥스원 전시 홍보관. |
TICN사업은 육·해·공군을 대상으로 기존 디지털 방식의 군 통신망 대신 와이브로 기술을 도입해 고속 원거리 무선중계 시스템으로 통신체계를 바꾸는 차세대 통신망 구축사업이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총 6개 분야로 구성된 TICN 사업에 각각 민간 방위산업체를 선정, 2020년까지 사업 완공을 계획하고 있다. 투자 예정 금액은 4조 8000억 원으로 역대 방위사업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지난해 8월 TICN 사업 입찰 제안요청서를 공고하면서 민간 방위사업체 참여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이중에서도 1조 3000억 원가량 투자가 계획돼 있는 전술용 다대역 다기능 무전기(TMMR) 사업 부문에서 업체 간의 공방은 가장 치열한 양상을 보였다. 특히 이 부문에 삼성탈레스와 LIG넥스원이라는 두 대기업이 맞닥뜨리자 업계의 이목이 쏠렸다.
두 달여간 평가 기간을 거친 방사청은 지난해 10월 말경 TMMR 사업 분야에서 입찰 우선협상대상자로 삼성탈레스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제안서를 토대로 평가를 거친 결과 LIG넥스원보다 3000억 원이나 낮은 입찰가와 1년 정도 짧은 공사기간을 제시한 삼성탈레스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LIG넥스원이 입찰 과정에서 삼성탈레스의 서류상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이런 평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입찰에 참여했던 LIG넥스원을 포함, 3개 기업은 삼성탈레스가 체계공학적용능력(CMMI) 인증서 유효기간이 지났음에도 제안서에 이를 허위로 기재했다는 이유로 방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를 받아들인 방사청은 재평가에 돌입했고 상대적으로 LIG넥스원이 사업자 선정에 유리한 입지로 돌아섰다.
이에 삼성탈레스는 법원의 손을 빌려 반격에 나섰다. ‘TICN 무기체계사업의 입찰 절차를 중단해 달라’며 법원에 국가와 국방과학연구소를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초강수를 던진 것이다. 지난 4월 6일 서울중앙지법은 ‘삼성탈레스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만약 방사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TICN 사업은 잠정적으로 중단될 위기를 맞은 상태다.
그런데 삼성탈레스가 법원에 제시한 가처분 신청의 사유가 방사청 일부 직원의 비리 의혹으로까지 확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삼성탈레스에서는 이번 사태 이후 공공연히 방사청과 LIG넥스원 간의 비리 커넥션 의혹을 제기해 왔다. “역대 유례없는 재평가 과정이 실시된 것은 그 이면에 LIG넥스원 직원이 방사청 내부 일부 직원들과 유착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삼성탈레스 측의 주장이다.
삼성탈레스에서는 법원 가처분 신청 사유의 증빙 자료로 한 통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재평가가 실시되던 와중에 삼성탈레스의 한 간부 휴대폰으로 전송된 ‘우리 업체가 이긴 것 같다. 방사청 관계자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라는 내용의 문자다. 삼성탈레스의 관계자는 “문자를 전송한 발신인이 LIG넥스원의 팀장급 인사로 밝혀졌으며 자사 임원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이름이 비슷한 삼성탈레스 직원에게 잘못 전송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된 이후 방사청은 지난 1월 초 자체 감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 결과 삼성탈레스의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지만 문자를 전송한 LIG넥스원 측 팀장과 접촉한 내부 직원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고 한다. 이에 방사청에서는 통신기록 확보를 위해 검찰에 정보유출의혹 수사를 의뢰할지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 정보유출 및 비리커넥션 의혹에 휘말린 이상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방사청 주변의 분석이다.
이처럼 민감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검찰의 LIG넥스원 수사 착수 사실이 전해지면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4월 7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부남)는 서울 역삼동 LIG넥스원 본사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회계장부 및 해외 구매내역,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번 LIG넥스원 수사에 대해 “LIG넥스원이 협력업체에서 사들인 무기와 각종 군사 장비를 정상 가격보다 비싸게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혐의 때문”이라며 “TICN 사업과는 관련 없는 수사”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방위산업계에서는 당일 벌어진 검찰 수사를 두고 TICN 사업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TICN 사업 입찰에 참여했던 한 방위산업체의 관계자는 “과거 문제 때문에 지금 수사를 시작했다는 검찰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다”며 “검찰 수사 이후 삼성탈레스의 사업 수주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업계에 돌고 있는 얘기들을 그냥 흘려듣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갖가지 의혹에 발목 잡힌 TICN 사업은 과연 언제쯤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앞서의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이제는 워낙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삼성탈레스·LIG넥스원 어떤 회사?
국내 방위산업계 ‘쌍두마차’
삼성탈레스와 LIG넥스원은 국내 방위산업계의 쌍두마차로 통한다. 두 업체는 국내 정보·통신·지휘통제 방위산업 부문에서 60%대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재무구조 면에서는 삼성탈레스가 우위를 점하고 있고 매출액과 수주잔량에서는 LIG넥스원이 우세하다는 평가다.
삼성탈레스는 2000년 1월 11일 삼성전자와 프랑스 ‘탈레스 인터네셔널’의 지분합작으로 설립된 회사다. 2010년 4월 현재 각 사가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2월 삼성방위산업부문을 인수한 삼성탈레스는 합작방산업체로 정부승인을 획득했고 구축함 전투지휘체계, 열영상 감시장비, 탐지추적장치 등 각종 군사장비 제조 및 판매를 주요 사업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구주총괄 부사장을 지낸 김인수 사장이 대표이사다.
LIG넥스원의 전신은 2002년 11월 설립된 넥스원퓨처다. 2004년 7월 LG이노텍으로부터 방위산업 부문을 인수했다. 2005년 12월 LIG손해보험의 계열회사인 LIG홀딩스와 주식교환을 통해 100% 자회사가 된 후 지금의 상호로 변경됐다. 2008년 국내 방위산업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LIG넥스원은 유도무기분야에서만큼은 독보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LIG보험 최대주주인 구본상 사장과 LG이노텍 최고재무관리자(CFO) 출신인 이효구 사장이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