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결정된 삼성생명 공모가는 당초 예상보다 높은 11만 원이었다. 이로써 삼성의 세 가지 고민 중 하나인 삼성차 부채 문제가 해결됐다. 공모가 산정 작업에 참가했던 주간사의 고위 관계자는 “삼성차 부채처리를 위해서 공모가가 10만 5000원은 넘어야 했다. 만약 이보다 아래로 공모가가 결정되면 삼성그룹으로서는 삼성차 채권단에 주머닛돈을 털어줘야 할지도 몰랐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삼성생명 상장으로 지주회사체제로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한 발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후계구도와 관련해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가 삼성에버랜드의 가치산정이었다. 이건희 회장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에버랜드로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가 삼성에버랜드 가치산정에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에버랜드 기업가치 가운데 상당부분은 삼성생명에서 비롯된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가진 대주주다. 그리고 ‘4·22 삼성 쇄신안’에 따라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인 삼성카드는 2012년 4월까지 25%에 달하는 삼성에버랜드 보유 지분율을 5% 이내로 줄여야 한다. 이미 10년 넘게 끌어온 삼성생명 지분 매각을 통한 삼성차 부채 해결과정을 볼 때 비상장사 지분을 파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싸다 비싸다’의 논란을 피하려면 에버랜드를 상장시키는 게 가장 깔끔하다.
삼성의 한 자금담당 임원은 “아직 에버랜드 상장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결론 난 게 없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삼성생명 상장도 전격적으로 결정됐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증시 전문가들 가운데서도 삼성카드가 가진 에버랜드 지분을 무리 없이 팔려면 에버랜드를 상장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삼성카드가 가진 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수조 원의 현금이 삼성카드를 통해 그룹으로 들어온다.
삼성에버랜드의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은 2조 3159억 원. 이 가운데 삼성생명 지분가치는 1조 6833억 원이다. 주당 가치를 6만 3000원 정도만 인식한 결과다. 하지만 공모가로 계산하고, 신탁 해지로 늘어난 지분까지 감안한 삼성생명 지분가치는 4조 2557억 원으로, 2조 5724억 원이 늘어난다. 삼성에버랜드의 순자산이 5조 원대가 되는 셈이다.
삼성카드가 가진 에버랜드 지분 25%의 순자산가치도 1조 2500억 원에 달하게 된다. 삼성 측은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20조 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각대금으로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삼성생명에 이어 삼성에버랜드까지 상장이 모두 이뤄지면 그동안 비상장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는 외부의 비판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
증시를 이용한 삼성의 ‘마지막 승부’는 전자부문의 쏠림을 해결할 수 있는 금융부문의 강화다. 삼성생명 상장은 그동안 유배당 계약자에 대한 이익배분 문제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제 ‘마음껏 이익을 내도 된다’는 뜻이다. 실제 삼성생명 상장이 결정된 2009회계연도 3분기 말 현재 경상이익은 8613억 원으로, 이때까지 실적으로 보면 거의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생명과 관계는 다소 없는 듯 보이지만,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는 삼성증권의 행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성 금융부문의 한 임원은 “그룹 내에서 금융부분의 위상 강화에 대한 고민이 많다. 신용카드 사태 이후 ‘사고만 치지 말자’는 분위기에서 그룹의 중요한 성장엔진이 돼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삼성카드 역시 부회장급 최고경영자(CEO)가 임명되면서 최근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삼성의 움직임은 일반 투자자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삼성차 부채문제 해결은 우발채무 발생 리스크 해소이며, 지주사 전환 가능성은 삼성생명으로 삼성그룹 기업가치가 모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울러 금융부문 강화 역시 금융부문 지주사 격인 삼성생명의 기업가치 제고와 연결된다.
삼성 금융부문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삼성생명을 삼성그룹 지주사 개념으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생명 기업가치의 핵심인 자본총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삼성전자 지분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외에도 삼성증권 삼성화재의 최대주주며,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호텔신라 에스원 등의 주요주주다. 삼성의 핵심 기업가치 상당부분이 삼성생명에 녹아 있다”고 풀이했다. 삼성 계열사 주가가 많이 오르면 삼성생명 주가도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또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이건희·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계열사들’로 이뤄져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비상장인 상황에서는 삼성생명이 투자 가능한 지주사다. 지주사 펀드를 운용 중인 한 매니저는 “재계 상위그룹의 지주사는 안전하면서도 꽤 괜찮은 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처”라고 평가했다. 대형 기관자금을 운용 중인 한 펀드매니저도 “세계적으로 투자은행(IB) 역할을 하지 않는 대형보험사가 내재가치(EV) 대비 1.5배 이상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받는 곳은 없다는 점에서 삼성생명의 공모가는 다소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룹 지배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생각한다면 꼭 비싸다고만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주펀드도 삼성의 증시 움직임과 관련, 삼성생명의 대체 투자처가 된다. 삼성그룹주펀드 대부분은 이번 공모에 참가하지 못했다. 계열 증권사가 주간사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삼성 상장사 시가총액 내 비중은 10%에 달한다. 삼성생명 주가가 상장 후 부진하다면 삼성그룹주펀드 수익은 삼성그룹 상장사 주가 움직임보다 좋을 수 있다.
삼성그룹주펀드 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다른 보험주를 담거나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방법도 고민 중이지만, 어찌 됐건 삼성생명 지분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가져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결국 삼성그룹주펀드로서는 시장 내에서 삼성생명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데, 주가가 부진할수록 매수단가도 낮아지게 마련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삼성그룹주펀드에 가입하려 하거나, 이미 가입한 이들 중 비중조절이 필요할 때는 삼성생명의 움직임을 살필 필요도 있다.
삼성생명에 투자하지 못하는 펀드들이 대신 담을 보험주에 대해서도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향후 시장에서 삼성생명 지분을 늘려갈수록 대체재에 대한 투자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손해보험주의 경우 주가수익비율(PBR) 기준으로 저평가된 상황인 만큼 당분간 강세를 보일 가능성은 크다는 관측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