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악몽의 엘리베이터>의 한 장면. |
식품유통회사에 근무하는 C 씨(31)는 웃음조차 안 나오는 창피한 상황을 겪고 한동안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올 초였는데 급하게 은행에 갈 일이 있어 오전에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혼자였죠. 근데 제가 겨울이면 몸이 굉장히 건조해지거든요. 수분이 없다보니까 콧속에 이물감이 생겨서 자다가도 청소할 때가 많죠. 그날도 엘리베이터에서 코가 답답해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5층에 섰다가 문이 닫히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확 들어오는 겁니다. 놀라서 손가락을 코에 넣은 채로 고개를 무심코 들었는데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여직원이었어요. 너무 당황해서 손가락을 빼지도 못하고 또 갑자기 확 빼는 게 더 웃길 거 같아 한 2초 정도를 더 있다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뺐죠.”
보험관련 업무를 하는 D 씨(여·26)도 엘리베이터에서 창피한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조금은 씁쓸했다는 D 씨의 경험담이다.
“제가 체격이 좀 큰 편인데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괜히 조심스러워져요. 회사 건물이 21층인데요, 엘리베이터가 고층용이 2개고 화물용이 1개예요. 저희 사무실은 17층인데 점심 때만 되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엘리베이터는 늘 만원이죠. 기본으로 10~15분 정도는 기다려야 해요. 그래서 눈치껏 점심시간 5분 전에 미리 나가서 먼저 타기도 하는데 꽉 차 있을 때가 더 많죠. 날씬한 여직원들은 그럴 때도 눈치 안보고 일단 타고 보는데 저는 괜히 ‘삐익~’ 하고 인원 초과 경고음이라도 날까봐 아예 시도도 안 해요. 전에 창피 당한 적이 많거든요.”
D 씨는 날씬한 사람이 나중에 타서 경고음이 나도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본다며 속상해 했다. 그는 “점심시간이면 아예 21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서 꼭대기에서 먼저 타고 내려오는 방법을 택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얼마 전 사무실을 옮긴 C 씨(36)의 회사는 새 사무실을 선정할 때 엘리베이터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전 사무실 엘리베이터가 제작한 지 수십 년 된 ‘명물’이었기 때문에 자주 고장나 불편했기 때문이다. 새 건물은 아니지만 이전한 사무실 엘리베이터는 썩 괜찮아보였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건물이 크긴 하지만 그 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엘리베이터는 거의 늘 만원이에요. 이전 후 첫 출근할 때 사람들이 로비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걸 타더라구요. 왜 그런가 했더니 로비에서 올라가는 걸 기다리면 지하주차장에서 이미 만원이 돼 올라오니 탈 수가 없는 거죠. 1분 1초가 아쉬운 출근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그러기 일쑤죠. 퇴근시간엔 위에서 이미 만원이 돼서 내려옵니다. 차라리 옛 사무실 그 고물 엘리베이터가 그립더라니까요.”
다른 사람이 있건 말건 엘리베이터를 타도 ‘볼륨’을 줄이지 않은 ‘수다족’도 C 씨에게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좁고 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때론 꼴사나운 모습을 목격할 때도 있다. 시각디자이너 G 씨(여·27)는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무개념족’과 마주쳤단다.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딱 탔는데 담배 냄새가 역하게 나더라고요. 누가 개념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담배를 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면서 계속 투덜댔죠. 내려오는 내내 어이없어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언니가 나중에 내린 후 말하길 뒤에 서있던 아저씨가 제 이야기를 듣고 담배꽁초를 든 손을 슬쩍 뒤로 숨기더라는 거예요. 이 건물은 금연건물인 데다 어린아이들도 많이 출입하는데 어떻게 그럴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제대로 환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엘리베이터에서 역한 냄새를 남기면 안 된다는 건 기본 상식이죠.”
달리는 버스 안에서 화장을 하는 것만큼 꼴불견인 모습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포착된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L 씨(29)도 얼마 전 희한한 직원을 봤다.
“건물에서 저희 사무실은 3층인데 점심 먹고 나면 화장실에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요. 그래서 종종 1층 로비에 있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거나 볼일을 보곤 하죠. 며칠 전에도 화장실이 만원이라 1층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한 남자를 보고 혀를 찼어요. 글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를 닦고 있는 겁니다. 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만 보기 흉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엘리베이터가 막힌 공간이고 혼자라 사적인 공간이라고 여기는 건지 태연하게 계속 이를 닦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어요.”
이렇게 엘리베이터 덕분에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직접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K 씨(여·25)는 반대로 남한테 황당함을 줬던 기억이 있단다.
“제지회사에서 일하는데 종종 야근을 할 때가 있어요. 하루는 야근을 하면서 치킨을 시켜먹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근데 하필 그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거예요. 저희 사무실은 19층이거든요. 누구는 당연히 안 될 거라고 하고 누구는 된다고 하고 의견이 분분한데 장난삼아 그냥 시켜보자고 하고 한 마리를 배달했거든요? 그런데 얼마 뒤에 진짜 배달을 온 거죠. 그것도 계단으로 걸어서요. 그 프로정신에 놀랍기도 하면서 미안함 마음도 컸어요.”
K 씨는 자신이라면 차라리 한 마리 가격을 포기했을 것이라며 배달 온 분에게 두 마리 가격을 지불하고 싶었단다. 그는 “사무실이 워낙 높은 데 있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며 “엘리베이터를 통해 겪는 재미난 일화들이 참 많다”고 전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