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일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가 열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1분기에 7.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1분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 기저효과에 따른 것이다. 이상저온과 소비 부진이 겹쳐 2분기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부진할 수 있다”면서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이 나오기 전까지 현재의 정책기조를 유지하겠다”며 출구전략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멘토’인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도 “출구전략을 장담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역시 “금리인상은 여러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올해 2분기가 지나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출구전략 실시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모두 본격적인 출구전략 시행에 부정적인 입장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발 재정위기가 커진 이후에 더욱 강화됐다. 윤종원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유럽발 재정위기 직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출구전략 시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두고 보는 전략이 최상”이라면서 출구전략 주장에 고개를 내저었다. 실제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연 2.0%인 기준 금리를 동결했다. 이는 15개월 연속 동결로 역대 최장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 같은 ‘발언’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9일 이명박 대통령과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재정전략회의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확대해온 재정을 다시 정상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유럽발 재정위기 확산이 심상치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어서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러한 모습 자체가 지난해와 다르다.
지난해만 해도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위기 극복이 우선”이라고 반박하며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선진국들과 비교해 큰 문제가 없고, 별다른 조치 없이도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자랑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 얼마 전만 해도 정부는 그리스 등 유럽과 우리나라는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자랑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가채무나 재정적자 규모를 일정 수준으로 정하는 재정준칙을 조만간 도입하고, 향후 5년간 지출 증가율을 세입증가율보다 2∼3%포인트 낮게 유지해 5년 안에 국가재정을 흑자로 전환키로 한 것이다.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목표도 2014년 33%대로 조기에 낮추는 것으로 변경했다. 정부는 당초 2010∼2013년 국가채무비율을 GDP대비 35∼36%로 유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재정전략회의를 기점으로 향후 3년간(2010∼2012년) 35%대 과도기를 거쳐, 2013년에는 33%대로 관리하기로 했다. 매달 내놓는 최근 경제동향에서도 어느 틈엔가 ‘확장적 재정정책’이라는 단어가 빠졌다.
윤 장관은 지난 4월 말 하얏트호텔에서 아태지역 관세청장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질문을 받자 거의 10초간 침묵하다가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는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출구전략과 관련해 정부 스탠스가 바뀐 것은 없다”고 답변했다. 이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윤 장관이 생각과 말에 불일치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처럼 정부 여당이 말로는 유럽 재정위기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달리 몸은 이미 경제위기 이후를 생각한 추스르기에 들어간 셈이다.
한 경제분석가는 “정부의 재정정책 변화를 보면 이미 사실상 출구전략에 돌입한 것과 다름이 없다. 실제 위기가 남아 있다고 하면 재정을 줄여나가는 정책을 펼 수는 없다. 겉으로는 위기가 여전하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위기는 끝났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밖으로는 위기를 이야기하면서 얼마 안 남은 지방선거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속으로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해 다음 대선 때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