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신입사원>의 스틸컷. |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이나 그나마 좀 나았던 수십 년 전이나 첫 월급이 주는 각별함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첫 월급의 액수는 특별한 의미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게 대부분 직장인들의 생각이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J 씨(여·30)도 첫 월급을 생각하면 아직도 씁쓸하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다가 급한 마음에 외국계 회사에 파견직으로 들어갔는데 첫 월급을 받고는 참 속상했습니다. 나름 큰 기업인데도 액수가 상당히 적었거든요. 잡무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한 대가치고는 참 너무한다 싶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100만 원 가까운 금액을 파견업체에서 가져갔더라고요. 잘 모르기도 하고 그저 이름난 회사에 취업이 된다고 해서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 저한테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었죠. 그걸 그때는 몰랐어요.”
J 씨는 너무 적은 액수에 얼마 못 가 다른 회사로 옮겼고 두세 번의 이직 끝에 현재의 회사에 자리 잡았다. 그는 “지금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첫 월급의 속상했던 기억은 추억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미디어계열 회사에 다니는 C 씨(31)는 첫 월급을 떠올리기도 싫다.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먼지 절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취업 전에 이쪽 초봉이 박하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어요. 입사해서 거의 매일 밤새 기획회의를 하고 멍한 상태로 다시 출근해 일하고 주말도 고스란히 반납했습니다. 사회생활이 이렇게 힘들다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겨우겨우 한 달을 버텼어요. 그러다 받은 첫 월급이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하지만 월급 통장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어요. 하루 12시간을 훌쩍 넘겨 일하고 변변한 휴일 없이 한 달을 보냈는데 80만 원 정도가 들어와 있더군요. 뭐 수습이라 더 적은 거라는데 그때는 너무 속상하고 창피해 집에 오는 길에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C 씨는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지출도 더 많았다. 그는 “방세 내고 교통비 식비에 부모님 내복 좀 샀더니 남는 것도 없었다”며 “몇 년이 지난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그때는 누구한테 월급 액수를 말하기도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액수를 떠나서 첫 월급은 손에 쥔 모래처럼 자신도 모르게 금세 없어지기 일쑤다. 특히 남성들은 그 정도가 더하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L 씨(28)도 첫 월급을 받고 현재는 빈털터리가 됐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첫 월급 타기가 무섭게 돈 쓸 일 수십 가지가 한꺼번에 생기는 거예요. 나름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학교 선후배들이 귀신같이 알고 한턱 쏘라고 하는데 체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게다가 회사에서도 사수가 처음 월급 타면 쏘는 거라고 하도 압박을 해서 쐈는데 인원이 생각보다 불어서 꽤 큰돈이 나갔습니다. 마땅한 정장이 없어서 한 벌 마련하고 부모님 포함해서 가족들 선물 사니까 그것만 해도 휘청하더군요. 게다가 5월에는 왜 이리 결혼식이 많은지 취업 전에는 대충 안 가고 버티던 경조사도 꼬박꼬박 참석하니까 남는 게 없네요.”
L 씨는 무섭게 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고 아차 싶었다고. 그는 “다음 달부터는 여우 짓을 해서라도 돈 좀 아껴 써야지, 이러다 카드빚에 치일 것 같다”고 털어놨다. 물론 첫 월급을 받기 전부터 꼼꼼한 재테크 구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K 씨(여·25)는 첫 월급을 받기 전부터 재무 포트폴리오를 다 짜놓았단다.
“보너스 나오는 달도 있지만 처음에 월급을 받고나니 채 100만 원이 안 되더라고요. 적은 액수라고 해서 한숨만 쉬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적금 들고 제 보험료에 학원비, 통신비, 부모님 용돈을 빼니까 그래도 제 용돈 할 정도는 남더군요. 지금 직장생활 3년차인데 나름 잘 모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겠죠. 월급도 처음보다는 많이 좋아졌고요. 첫 월급 타면 자신한테 보상해 준다고 명품 가방이나 화장품 사는 친구들도 많은데요, 저는 다행히 그쪽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첫 월급은 거의 고스란히 재테크에 썼던 것 같아요.
”
이렇게 알뜰하게 첫 월급을 간수할 수 있는 건 다행스럽다. 자신도 모르게 한순간에 첫 월급이 날아가기도 한다. 전자기기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H 씨(29)는 첫 월급에 대한 기억이 딱히 없단다. 거의 한 번에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와의 500일 기념일이 첫 월급 타고 얼마 뒤에 있었어요. 보통 첫 월급 타면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많이 한다더군요. 전 2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서 명품 가방을 선물했습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했죠. 여자친구가 된장녀 아니냐면서 질타하기도 했고요. 저도 좀 갈등했던 건 사실인데요, 취업 전에 여자친구한테 틈틈이 받은 것도 있고 이왕 해줄 거 큰 거 하나 해주면 두고두고 큰소리 칠 수 있을 거 같아서 질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하는 선물이라 그런지 오히려 주는 기쁨이 더 크던데요? 그 다음 달에 엄청 쪼들렸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외식기업에 근무하는 S 씨(여·33)는 솔직한 마음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첫 월급을 다 날렸다고 털어놓는다.
“대학 졸업하고 한 1년 놀았나 봐요. 정말 마음이 다급해져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가 취업만 되면 첫 월급을 몽땅 바치겠다고 기도했어요.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님도 함께했죠. 그러다 얼마 뒤에 기적처럼 취업이 됐어요. 한 달을 열심히 일해서 손에 넣은 첫 월급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했습니다. 사고 싶은 것도 많았고요. 그런데 부모님께 월급 탔다고 말하는 순간 100% 헌금을 하라는 겁니다. 십일조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몽땅 다는 좀 그렇지 않느냐고 말씀드렸다가 꾸지람만 들었습니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난 첫 월급은 교회 헌금함으로 직행했죠.”
제철회사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W 씨(50)는 첫 월급 하면 기억이 아련하다. 당시에는 액수도 채 50만 원이 되지 않았고, 월급명세서와 함께 직접 봉투에 담겨져 나왔다고. W 씨는 “이제 사회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첫 월급이 갖는 의미는 굉장히 소중할 것”이라며 “얼마 전 서재에서 오래된 첫 월급명세서를 발견하고 한참을 추억에 잠겼었다”고 전했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