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 3일
다사다난한 시간을 견뎌내는 와중에 여름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우리를 감싸는 갑갑함이 여름을 맞아 최고치로 달하는 사이,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해수욕장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제작진은 대천해수욕장에서 코로나19 발병 이후 대한민국의 첫 휴가철을 기록했다.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의 대천해수욕장, 폭 100m에 길이 3.5km로 서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명실상부 국내 3대 여름 휴양지로 꼽힌다. 백사장과 갯벌을 넘나드는 넓은 해변 덕분에 여름철이면 매년 각종 행사가 열려 고요할 틈이 없다.
게다가 패각분인 부드러운 모래와 얕은 수심, 거칠지 않은 파도 등은 남녀노소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충분한 이유다. 하지만 이런 해수욕장도 코로나19 앞에서 그 모습을 달리해야 했다.
여름내 꽉 채우던 행사들은 온라인 행사로 변경되거나 취소되었고 백사장 곳곳에는 ‘2m 거리 두기’ 푯말이 세워졌다. 그렇다고 잠시라도 시원하기 위해 찾아온 귀한 손님들을 되돌려보낼 순 없는 법. 대천해수욕장은 본격 휴가철을 맞아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한 만발의 대책으로 무장했다.
대천해수욕장은 방역에 있어 입장 과정부터 적극적이다. 언택트의 대표 격인 ‘드라이브스루’를 활용한 것. 차량 입구 6개에 각각 검역소를 설치하고 모든 방문객을 대상으로 발열 체크를 진행한다. 여기엔 하루 500여 명의 근무자가 근무하며 24시간 빈틈없이 해수욕장 입구를 지킨다.
발열 체크 후 37.5℃ 이하인 관광객에겐 입장 요일별로 빨주노초파남보 각기 다른 색깔의 손목밴드가 채워진다. 이 안심 손목밴드를 착용하지 않은 관광객은 해수욕장 샤워실과 음식점 등 다중 이용시설에 출입할 수 없다. 이는 안심 손님을 식별하기 위한 가장 분명한 방법이자 첫 단계에 불과한 대천해수욕장의 방역이다.
해수욕장이라고 거리 두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대천해수욕장에는 백사장 내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위한 요원들이 있다. 이들은 백사장 곳곳에 배치되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마스크 쓰기’와 ‘파라솔 2m 거리 두기’를 계도한다.
같은 뙤약볕 아래 관광객들은 시원한 바다에 몸을 맡기는 사이 홍보요원들은 안전 수칙이 적힌 푯말을 온종일 들고 돌아다닌다. 바닷가에서의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가 얼마나 이례적이고 불편한 일인지 알기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특히 중년의 보령시민이 대부분인 이 요원들은 많고 많은 지역 중에 자신의 고장으로 휴강 온 관광객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의무와 공감 속에서 땀 흘리고 있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연인, 가족,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와 먹을거리는 빼놓을 수 없는 휴가의 묘미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가능하지 않게 됐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대형 해수욕장의 개장 시간 외에는 야간 음주·취식 행위가 금지되면서 밤에는 백사장에서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물을 먹는 풍경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합동단속 팀이 꾸려졌다. 충남도와 보령시 공무원, 보령 경찰과 지역 민간단체 등 네 개 집단이 협업하는 합동단속은 해수욕장이 폐장하는 오후 7시부터 즉시 시작된다. 합동단속 팀의 네 차례 계도에도 불구하고 백사장 내 취식을 이어간다면 벌금은 최대 300만 원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고마운 관광객들에게 강압적인 계도 활동을 펼치기 어렵다. 그래서 대천해수욕장은 백사장이 아닌 광장에 취식 가능한 구역을 마련했다. 일정 간격을 두고 마련된 이 공간은 QR코드로 방명록을 등록한 후 이용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만든 여름밤의 진풍경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이색 근로자가 생긴 한편 매년 대천해수욕장의 여름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물놀이 안전요원이다. 총 70여 명의 안전요원은 백사장과 물속으로 흩어져 온종일 입욕객을 지킨다. 견시부터 순찰, 구조와 응급 처치까지. 이들의 긴장 태세는 여름내 멈추지 않는다.
대규모 해수욕장답게 구역별로 나뉜 안전요원 근무지도 열세 개. 파라솔 요원들이 육지에서 바다를 예의주시하는 동안 기동대 요원들은 바닷속에서 수상 오토바이를 타고 대기한다. 감시탑인 망루 근로자와 야간 안전요원까지 더해져 대천해수욕장의 물놀이 안전사고 대비는 빈틈이 없다.
방역만큼이나 철저한 물놀이 사고를 대비를 매년 유지해 온 이들이야말로 여름을 여름답게 만드는 주역이다.
제아무리 제한이 많아도 그동안 참아왔던 답답함보다 더할까. 어쩌면 다른 곳보다 더 번거롭고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순간이라도 찌든 피로와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서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잠시 바다에서 숨 고르는 대학생들과 자녀 걱정을 바다에 던져 버리기 위해 찾아온 부부. 유치원도, 학교도 못 가는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부터, 노모와 함께 온 가족까지. 각기 다른 사연 앞에 바다는 한없이 넓고 끝없이 깊다.
번거로운 발열 체크와 갑갑한 마스크는 필수가 된 휴가철.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달라진 여름에 적응하는 중이다. 충분히 갇혀있던 우리의 일상에 ‘작지만 확실히 시원한 창’이 되어준 바다. 늘 그랬듯 바다는 오늘도 모두 앞에 열려 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