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이 입수한 정 아무개 씨의 진술서에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 접대비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명단 리스트 문건(위)과 진술서 사본. |
MBC 은 4월 20일 진정서 등을 바탕으로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 감찰부장 등 현직 검사장 2명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등 ‘스폰서 검사’ 실체를 방영해 파문을 일으켰다. 은 정 씨로부터 향응과 성접대를 받은 전·현직 검사들의 인원과 방법, 금액 등을 구체적으로 폭로해 충격을 던져줬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정 씨의 진정서 등에는 정 씨가 접대한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과 날짜, 장소, 휴대폰 번호, 접대비 등이 상세히 적시돼 있었다. 특히 ‘스폰서 검사’ 리스트에는 실명이 공개된 현직 검사장 2명 외에 현직 법무부 최고위직 A 씨를 비롯해 검찰 최고위직을 거친 검사장급 인사들도 10여 명이 올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야권은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고 시민단체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전·현직 검사 57명을 고발하는 등 ‘스폰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대검찰청은 ‘스폰서 검사’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진상규명위원회를 서둘러 가동하고 있으나 국민적 의혹을 속시원히 해소할 수 있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 조직은 물론 변호사업계와 법조계 전체를 메가톤급 태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검사 스폰서’ 파문과 ‘거물급 리스트’ 실체를 들여다봤다.
정씨가 진정서 등을 통해 폭로한 ‘스폰서 검사’ 실태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과거에도 법조계 주변에선 ‘검사 스폰서’ 논란이 심심찮게 불거진 바 있다. 하지만 리스트에 오른 전·현직 검사 수가 대규모이고, 접대 방법과 내용 등이 이번처럼 구체적인 사례는 드물었다. 정 씨는 진정서와 ‘접대 리스트’ 문건 등에 언급한 인원은 57명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접대한 전·현직 검사는 어림잡아 200여 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정 씨가 언급한 전·현직 검사 57명은 검사장급 3명을 비롯해 부장검사 17명, 평검사 8명 등 현직이 28명이고,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사가 29명이다. 정 씨는 이들에게 주로 촌지와 향응을 제공하고 성접대를 하는 방식으로 스폰서 역할을 했다.
진정서와 ‘접대 리스트’ 문건에 따르면 촌지는 검사들의 지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됐다. 지청장급 검사에게는 한 달에 두 번씩, 한 번에 100만 원을 전달했다. 1984년부터 1990년 12월까지 모두 1억 6200만 원이 지청장의 ‘용돈’ 명목으로 지출됐다. 평검사와 검찰 사무과장에게는 매달 각각 30만 원씩 모두 3억여 원을 지급했다. 검찰 체육대회나 등반대회 등 공식 행사는 물론이고 회식이나 환영식, 송별식 등 비공식적인 행사 때도 어김없이 비용을 댔다. 정 씨는 심지어 친분이 있는 검사의 친구가 서울에서 놀러왔을 때도 접대와 숙박을 책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고향이자 사업 기반이었던 진주지역 검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정 씨의 스폰서 행위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부산·경남지역과 서울로까지 확대됐다. 사업이 번창하자 정 씨의 스폰 비용도 늘어났고, 부산지검 인근에는 검사들을 접대하기 위해 단골 음식점과 룸살롱도 여러 곳 마련해 뒀다. 고향인 진주지청에서 인맥을 쌓은 검사들이 중견 검사로 성장하면서 후배 검사들을 정 씨에게 소개해 주면서 정 씨의 검찰 인맥은 해가 갈수록 확대됐고, 스폰 대상 및 비용 또한 크게 늘었다.
정 씨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14쪽 짜리 ‘접대 리스트’ 문건을 통해 “그간 접대해 왔던 사람들이 내가 힘들어졌을 때 전화 한 통 없어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검사 스폰서’ 실체를 폭로한 배경에는 검사들에 대한 강한 배신감이 작용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정 씨는 문건에서 “사업하는 입장에서 공권력이 무서웠고, 약자 입장에서 드는 보험 성격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분위기였다”고 주장하면서 검찰의 부도덕성을 질타하기도 했다.
정 씨는 <일요신문>과의 수차례에 걸친 전화 인터뷰(박스 참조)를 통해 “힘들다. 자살하고 싶다”는 심경과 함께 “검찰이 다시 구속시킬 경우 검사들의 실명을 추가로 폭로하는 동시에 만약을 대비해 유서도 작성해 놨다”고 밝혔다. 다만 정 씨는 추가 폭로 검사와 구체적인 유서 내용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공개된 ‘검사 스폰서’ 파장의 강도를 감안할 때 추가 폭로 내용은 이보다 더한 파괴력을 지닌 핵뇌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명이 공개된 2명의 현직 검사장을 능가하는 거물급이 포함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확보한 진정서와 문건 등에는 언론에 실명으로 거론되지 않은 검찰 출신 거물급 10여 명이 더 있었다. 현직 법무부 최고위층인 A 씨를 비롯해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등을 역임한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고위직을 역임한 B 씨와 고검장 출신인 C 씨, 대검 고위직 출신인 D 씨,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역임한 E 씨 등은 검찰총장 후보 하마평에 오르내리다 검찰을 떠난 거물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검사 스폰서’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날 경우 그 사람 개인의 명예는 물론 검찰조직의 도덕성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모 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 검찰을 떠난 F 씨도 ‘스폰서’ 리스트에 올라 있어 사실로 확인되면 치명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 출신으로 법무법인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G, H 씨 역시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어 변호사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스폰서 검사’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거물급 인사들 대부분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정 씨를 전혀 알지 못한다” “왜 내 이름이 거기에 적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상규명위 조사를 지켜본 뒤 법적 대응 등을 검토하겠다” 등 ‘모르쇠’ 내지는 ‘선 조사 후 대응’ 입장을 보였다.
스폰서 검사는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까. 검찰 조직을 송두리째 흔들며 메가톤급 태풍으로 진화하고 있는 거물급 리스트의 실체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