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봉하에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수많은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봉하마을을 찾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귀향 의도의 순수성과 낙향 후 간간이 이어진 그의 정치성 발언을 두고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촌부’로 살고자 했던 그는 그토록 그리워한 고향땅에 내려와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한 채 ‘불명예’를 안고 결국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노짱’이 떠난 봉하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년을 약 열흘 앞둔 5월 11일 봉하마을을 찾았다.
“오월은 노무현입니다” 5월 내내 봉하마을에서는 노무현재단 주관으로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마을에는 하루종일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고, 평일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회관 옆 주차장은 차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고 노인들은 아예 수십 대의 관광버스를 대절해 이곳을 찾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봉하마을 관광안내소도 새롭게 단장됐다.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에 따르면 작년까지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은 무려 350만 명이다.
재단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김해시에서 방문자 집계를 했으나 올해부터는 공식집계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봉하마을에서 비공식적으로 추산한 방문자 집계에 따르면 최근 평일에는 2000~4000명, 주말에는 5000명 이상 방문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고 전했다.
서거 1주기 추도식은 5월 23일 오후 2시에 묘역 완공식을 겸해 치러질 예정이다. 이날 추도식은 추모영상 상영과 추모시 낭송, 추도사, 추모곡 연주, 유족 인사, 헌화-분향 등의 순서로 이어지는데 523개의 노랑 풍선과 523마리의 나비를 하늘로 날리는 의식도 계획되어 있다. 특히 참배객들은 진영역에서 봉하마을 묘역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민주올레’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봉하마을 곳곳은 벌써부터 추모열기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생가뿐 아니라 그가 직접 지어 고시공부를 했던 ‘마옥당’과 길게 누운 뱀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뱀산, 다시 되살아난 화포천과 둠벙, 49재를 올렸던 정토원, 생태연못 등을 둘러보며 대통령을 회상했다. 또 마을에서 화포천 옆 철길과 뱀산 아래 논둑길로 이어지는 2㎞ 남짓한 산책로는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데이트코스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자취가 남아있는 공간들을 거닐면서 방문객들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한마디씩 말을 던졌다. 마을의 한 노인은 “우리 대통령이 어찌나 개구쟁이였는지 눈에서 깨가 졸졸 흘렀다. 머리도 보통 명석한 게 아니었다. 이런 환경에서 대통령까지 됐으니 정말 ‘난 사람’이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을주민 역시 “책 살 돈이 없어서 비료공장에서 막노동하면서 공부한 사람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마을의 자랑이자 영원한 대통령”이라고 거들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전시장을 둘러보며 회상에 젖은 방문객들. |
생가 옆 ‘아름다운 봉하가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각종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매장에는 쿠션과 담요, 티셔츠, 수첩과 필기구, 거울, 달력, 컵, 책갈피, 손수건, 액자, 메모지, 자서전 등 다양한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수많은 방문객들이 ‘노무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념품들을 구매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농기구 보관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장 입구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와 ‘당신은 갔지만 우리는 보내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걸려있어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생전 유품과 영상, 사진들을 둘러보며 그를 추억했다. 전시장에는 넥타이와 시계 등 생전 소장품은 물론 그를 다룬 신문기사와 국민들의 편지,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훔치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전시장 한켠 벽에는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어붙인 노란색 쪽지들로 가득했다.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노 전 대통령이 수시로 들러 휴식을 취하고 담배도 피우곤했던 매점에는 그곳에서 찍은 생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많은 방문객들은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에 직접 앉아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인기인이었는지 여기와 보니 실감이 납니다.”
“고향에 내려와서 한동안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사람 사는 세상’을 갈망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윗분들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적인 발언들도 적잖게 쏟아졌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모르는 사람 있소? 오죽 못살게 굴었으면 그랬겠나.”
“정치판에 발을 담그기에는 너무 순진했던 사람이었지.”
“그렇게 깨끗하고 도덕적인 척했지만 그 역시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더구나 국가 원수까지 지낸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적 해석을 지양하고 진정한 노무현 정신을 기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 해남에서 왔다는 한 노인은 “잘잘못을 떠나 ‘노무현’처럼 남녀노소에게 깊이 각인된 정치인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집결시킬 만큼 매력있는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충청도에서 온 주부도 “그를 추앙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편을 가르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통령 노무현’과 그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서는 서거 1주년을 맞이하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정치적 평가를 떠나 ‘인간 노무현’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애틋함과 그리움은 부인할 수 없어 보였다. 또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운의 정치인’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각인되고 있었다. 비록 노 전 대통령은 떠났지만 그의 고향인 봉하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묘역 조성사업 어떻게 돼가나
작은 비석 중심 추가공사 한창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유골은 매장하되 봉분은 만들지 않겠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지하에 안장시설을 하고 비석은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너럭바위(가로 2m, 세로 2.5m 높이 40㎝)를 봉분처럼 올렸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달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화장한 유골은 백자도자기와 연꽃석합에 담겼고 석함에는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5부작 다큐멘터리 DVD와 대통령 일대기 및 국민들의 추모 모습을 기록한 추모영상이 부장품으로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은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을 담은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철학이 담겨있다. 묘역은 추후 국민참여광장으로 이용할 방안도 구상 중이다.
김해=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