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이언맨2> |
부산에 현지처를 둔 남자 A의 충격적인 고백. A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사업을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남자로 서울의 집에서는 꽤 가정적인 남자로 포장돼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사건은 출장지에서 일어나게 되는 법. 1년의 반은 부산에서 살아야 하는 남자는 밤이 외로웠다. 룸살롱에서 2차를 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친구들과의 마시는 술값도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비밀유지가 안돼 와이프가 알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아예 현지처를 두었다. 룸살롱에서 만난 여자 B와 작은 살림을 차린 것. 한동안은 좋았다. 그런데 1년이 되는 즈음, B가 “오빠, 나,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라면서 냉장고에서 통통한 가지를 꺼냈다나? “오이는 아파서 안 돼. 바나나는 부러지고. 가지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면서 버자이너에 페니스 대신 가지를 삽입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한 술 더 떠 항문에 넣어달라고 했다는 것. 그 순간 A는 아찔해졌다. 술집에서 만나 2차를 나간 아가씨가 가지를 꺼냈다면 ‘참, 별 여자 다 만나보네’라고 웃어넘길 수 있지만, B는 A의 현지처가 아닌가. A는 “나, 대체 어떻게 해야 돼. 그동안 내가 성에 안 찼던 거 아니야?”라며 혼란스러워했다. A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나는 웃었다. 솔직히 B가 좀 너무하다 싶긴 했다. 아무리 판타지가 있어도 그렇지, 아무리 남자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어째 가지를 내놓았을까. 그것은 그냥 호스트에게나 풀면 되는 여흥이 아니던가.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판타지를 실험하지 않는다. 상식에서 심히 벗어나는 페티시를 강요하는 법도 거의 없다. 오죽하면 나의 바람둥이 친구는 “여자친구에게 요구하기 미안한 건 마사지 방에 가서 풀지. 솔직히 여자친구에게 애널 섹스하자고 말할 수는 없잖아.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변태취급 당할 걸. 게다가 부카케 같은 걸 하고 싶을 때에도 여자친구에게는 무리지. 어떤 때는 오럴 섹스를 제대로 받고 싶을 때에도 마사지 방에 가. 나는 서비스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서비스 받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자는 좀 다르다. 일단 호스트와 섹스 판타지를 실현시킬 만큼 섹스에 개방적이지 않고, 어떤 강력한 페티시를 가졌다 하더라도 오르가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섹스 상대이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애널 섹스에 호기심이 일어도 호스트를 비롯한 아무나와의 섹스에서 페티시가 만족되지 않는다. 물론 원나이트스탠드 상대와 판타지를 경험할 수는 있다. ‘하룻밤 만나고 말 사이인데, 어때?’라는 생각으로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시도해볼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판타지 혹은 페티시를 실현해보고 싶었다는 것은 원나이트 상대가 꽤 마음에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자가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페티시를 꿈꾸면서도, 정작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게는 페티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남자의 이중 잣대 때문이다. “야, 그동안 내숭이었던 거야?”라고 말하면서 그날 이후 여자를 가볍게 생각할 것이 두렵고, “야, 우리 둘 다 비아그라 먹어볼까?” “대마초를 피우면 섹스가 죽인다던데” “너, 내 앞에서 스트립 쇼 해볼래?” 등의 여자가 감당할 수 없는 과한 요구를 할까봐 두렵고, 무엇보다 “네가 그렇게 밝히는 여자인 줄 몰랐다”라고 말하면서 그녀를 멀리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B가 남자친구에게 페티시 혹은 판타지를 시도한 것은 실수였다. A는 ‘가지 사건’ 이후 B와의 섹스에 회의를 느꼈고, 현지의 살림을 정리했으니까. A는 B를 감당할 만한 남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A에게 묻고 싶다. “가지가 싫어? 그녀가 싫어?”라고. 불륜을 조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가지가 싫으면 가지를 버리면 되는 것이다. 가지가 싫은데 여자를 버린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남자는 여자의 시도를 무서워하는 것일까? 그 새로운 시도로 인해 섹스가 더 즐거워지고 다이내믹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얌전하고 조신한, 섹스할 때조차 너무나 소극적인 그녀에게도 오늘 밤 질문을 해보는 건 어떨까. ‘오늘은 네가 해보고 싶은, 상상 속의 섹스를 해보자. 뭐, 해보고 싶은 건 없어?’라고. “에이, 그런 게 어딨어”라고 답하는 여자친구에게 “왜 없어? 누구나 다 있는 거야. 생각해봐.” 강하게 졸라보는, 그래서 섹스의 신세계를 둘이 함께 개척하는 커플이 되면, 여자는 매일밤 남자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섹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상대가 쳐놓은 마음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달라고, 이 연사, 강하게 부르짖는 것이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