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헌재 신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 12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오른쪽)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부총리 인선의 표면상 이유는 총선 출마를 위해 부총리직을 내놓은 김진표 전 부총리의 후임 인사다. 그러나 이 부총리의 임명 과정을 보면 본인의 거듭된 고사에도 불구, 반강제로 그를 기용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차적으로 ‘시장에서 이헌재 부총리를 원했다’는 관측이다. ‘구조조정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이헌재 부총리가 재계, 특히 대기업들에 대한 ‘노무현식 개혁’을 이끌기 위한 수장으로 적임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특히 집권 1년차 내내 ‘정치개혁’에 몰입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4월 총선 이후 집권 2기를 맞아 대대적인 ‘경제개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2년차 ‘경제개혁’을 염두에 두고 ‘이헌재 효과’를 기대하며, 이 부총리를 경제 수장에 앉히기 위해 ‘삼고초려’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또다른 이유로는 99년 금감위원장 재직 시절 진두지휘했던 대우그룹 구조조정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이 부총리는 99년 대우사태 당시 ‘법정관리체제’로의 전환을 고수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뜻을 꺾고 채권단을 앞세워 ‘워크아웃’으로 유도했던 장본인이다.
이 부총리에 의해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갔던 대우그룹은 5년이 지난 2004년 현재 대부분 주력기업들이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이제 ‘주인찾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대우그룹 해체에 앞장섰던 이헌재 부총리가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우 계열사에 대한 ‘주인찾기’를 주도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헌재 부총리의 인선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금융감독위원장, 재정경제부 장관 등 주요 경제부처와 20여 년간의 민간기업 근무경험 등을 통해 경제, 금융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4월 금융감독위원장에 취임하여 은행합병과 기업구조조정의 사령탑 역할을 무난히 수행하여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에 기여하였다. 국가경제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을 바탕으로 투자증대를 통한 성장잠재력의 확충, 신용불량자 문제 해소, 금융시장 안정 등 당면 경제현안을 무난히 해결함은 물론 경제팀을 원만하게 조율하고 이끌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신임 이 부총리는 기업들에게는 ‘저승사자’로, 관계·금융계에서는 ‘구조조정의 달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김대중 정권 시절 금감위원장, 재경부 장관을 역임하는 동안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에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부총리는 재계 인사들 사이에서 ‘금융시장을 잘 안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이력이 이 같은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법대 졸업 후 행시 6회를 거쳐 재무 관료로 관계에 입문한 이 부총리는 옛 재무부 금융정책과장과 재정금융심의관을 거친 정통 관료 출신. 1979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우반도체 전무와 한국신용평가 사장 등을 역임, 실물 경제 감각을 익혔다.
재무 관료와 민간기업을 거치면서 익힌 금융시장에 대한 감각은 이번 발탁의 중요한 인선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그는 1998년 4월 김대중 정부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에 발탁돼, 1년9개월 동안 금감위원장을 맡아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국내기업을 해외에 매각하고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등 당시 그의 구조조정 노력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부총리는 99년 금융감독위원장 재직 시절 ‘대우그룹’ 해체를 진두지휘한 바 있다. 이 부총리는 당시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우그룹 처리문제를 두고 채권단을 통해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압박, ‘워크아웃’을 통한 그룹 해체를 주도했다.
‘법정관리체제’를 선호했던 김우중 전 회장은 이 부총리의 대우 처리방법에 반기를 들었으나, 채권단을 통해 압박해오는 이헌재 부총리에 밀려 해외로 망명 아닌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당시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갔던 대우 계열사 가운데 우량 기업들은 5년이 지난 2004년 현재, 대부분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시장에 매물로 나온 상태다.
자산관리공사가 대주주로 있는 대우 계열사 빅5 가운데, 대우종합기계는 CSFB를 주간사로 오는 5월경 예비입찰을 앞두고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3월경 매각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동반 졸업한 대우건설과 대우인터내셔널은 2월 중 주식매각협의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대우정밀은 매각을 위한 자산실사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처럼 99년 ‘대우그룹 해체’와 ‘워크아웃’으로 정리됐던 대우그룹 처리문제가 5년이 지난 올 한해 ‘주인찾기’ 작업이 예고돼 있는 것.
지난 99년 금감위원장으로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던 이헌재 부총리는 4년 만에 다시 경제 수장으로 컴백함으로써 매각을 앞두고 있는 대우 계열사들의 ‘주인찾기’에도 직접 간여하게 된 셈이다. 대우 계열사에 대한 ‘주인찾기’를 통해 결과적으로 99년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던 이헌재 부총리에 대한 성적표가 나올 전망이다.
매각을 앞둔 대우 계열사들을 제값을 받고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이헌재 부총리가 부총리 임명 직전까지 3조원 규모의 ‘이헌재 펀드’ 조성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는 점에서 또다른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 대우 계열사 등 정부가 대주주로 있는 워크아웃 기업이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의 매각에 ‘국내자본’ 참여의 길이 넓어졌다는 해석이 그것.
최근 이 부총리는 외국계 자본의 진출에 대항하기 위한 ‘토종 펀드’ 육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외견상 ‘우리금융지주’ 인수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내심 매물로 나온 주요 기업 등도 인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이헌재 부총리가 경제 수장에 등극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대기업 구조조정의 문제가, 또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소유의 기업 매각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2기 ‘경제개혁’을 모토로 한 국정운영 구상과 연관되면서 이 부총리가 꺼내들 경제 운영의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월 총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경제 수장에 오른 이 부총리가 어떤 카드로 재계와 ‘시장’에 개입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