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9세인 여자입니다. 일주일 동안 해외출장 간다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신혼여행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5월 27일, 대학 4학년 때부터 5년 동안 연애해 온 남자친구 A 씨가 자신을 감쪽같이 속이고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B 씨는 자신을 A 씨의 여자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 글을 A 씨 회사 직원들이 회사 메일을 통해 돌려보면서 A 씨의 연애사는 삽시간에 사내에 쫙 퍼지게 됐다.
이 글에는 ‘대학 4학년 때 S 기업 리쿠르팅에 참여한 신입사원 A 씨를 처음 만난 이후 만남을 이어갔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지난 5년 동안 결혼을 약속할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는 내용 등 두 사람의 상세한 연애사가 담겨져 있었다.
B 씨가 이런 글을 올리게 된 것은 우연히 웨딩업체 사이트에 올라온 A 씨의 웨딩촬영 사진을 발견했고, 5월 29일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A 씨는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으면서도 ‘5월 27일부터 일주일 동안 해외출장을 가기 때문에 연락이 잘 안 될 것’이라며 자신은 물론 부모까지 속였다고 B 씨는 주장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B 씨의 메일은 사내에 삽시간에 퍼졌다. 기자는 사건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채널을 통해 S 기업에 근무하는 임직원들과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5월 27일 기자와 통화한 S 기업 박 아무개 씨는 “A 씨의 면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B 씨 이외에 사내에도 4년 된 다른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A 씨의 실명과 회사이름을 붙여 ‘S 기업 A 사건’으로 칭하며 ‘경희대 패륜녀’에 이어 또다른 패륜남이 탄생했다며 A 씨의 복잡한 사생활을 질타하고 있다.
B 씨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A 씨의 복잡한 개인 연애사는 인터넷을 통해 악성 스캔들로 확전되면서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여기에 S 기업 측이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A 씨 스캔들 파문이 확산되자 S 기업 측은 해당 내용이 담긴 메일 열람이 불가능하게끔 차단했다. 임직원들은 아무리 사내 메일이라지만 이미 열람한 개인 메일을 회사 측에서 재열람할 수 없도록 조치한 것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 측에서는 ‘더 이상 해당 사건에 대해 소문을 퍼뜨리지 말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도 함께 전송했다.
차단된 것은 메일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개인 PC에 해당내용을 복사해 둔 직원들도 있었는데 이 텍스트까지 삭제시켰다고 한다. S 기업이 속해 있는 모 그룹 계열사에 다니고 있는 이 아무개 씨는 “사원들은 개인이 저장한 텍스트까지 강제 삭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로 깨달았다”며 “점심식사 시간 최대의 화두는 회사 측의 광범위한 정보감시였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회사 측의 대처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S 기업 사원들은 메일내용을 본 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A 씨의 사진과 신상을 검색하던 중이었다. 이후 회사 측에서는 사내 임직원 검색 사이트 역시 접근이 불가능하게끔 조치했다고 한다.
A 씨의 사내 직통번호 역시 차단했다. 기자는 임직원 검색이 제한되기 전 미리 파악한 A 씨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발신음도 가지 않은 채 ‘통화지역이 아닙니다. 전화를 끊겠습니다’라는 멘트밖에 들을 수 없었다.
S 기업과 계열관계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장 아무개 씨는 “회사 직통번호라는 건 몇 초 만에 삭제가 가능하다. 나 역시 문제를 일으킨다면 일단 직통회선부터 차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회사 측에서는 사태진화를 위해 강경한 대응에 나섰지만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문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인터넷 게시판 댓글에는 ‘S 기업 사원이다. A 씨가 인사팀에 불려가 권고사직을 권유받았다’라는 소식도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또 일부 인터넷 블로그에는 “A 씨는 B 씨 이외에도 사내에서 4년 동안 교제한 C 씨라는 여성도 있었다”며 각 인물들의 사진을 찾아 올려놓고 ‘양다리 아닌 세 다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5월 27일 기자와 통화한 S 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아마도 문제가 된 사내 메일이라는 것은 직원들끼리 쓰는 커뮤니티인 ‘싱글망’인 듯하다. 그곳에는 별별 연애사와 사적인 이야기들이 하루 수백 건씩 올라온다”며 “이번 파문도 무수히 많은 글 중 하나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글을 가지고 회사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도 없고, 현재까지 파악된 것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회사 차원에서 사내 메일과 임직원 검색 시스템을 차단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10년 전이라면 몰라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회사에서 사원들의 메일을 함부로 차단할 수 있겠느냐”며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경영진에서 문제삼아 지시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B 씨가 작성한 글 중에는 ‘A 씨의 아버지가 H 그룹 부사장 출신이고 어머니가 중학교 교장선생님이다’고 적혀 있었다는 점에서 ‘아버지가 대기업 부사장이다 보니 S 기업이 A 씨를 과잉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B 씨의 글과 S 기업의 과잉보호 논란이 확산되자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선 미확인 사실을 바탕으로 특정인을 ‘마녀사냥’ 하는 행태는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