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살 빼는 약으로 둔갑시켜 9억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린 이들의 기상천외한 수법을 들춰봤다.
노출의 계절인 여름이 다가왔다. 여성들은 이 시기만 되면 몸 이곳저곳 긴급처방에 들어간다. 당장의 효과를 위해서라면 살 빼는 약은 물론 주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같은 여성들의 심리를 이용해 마약을 살 빼는 약으로 둔갑시켜 불법 판매한 전직 간호사 일당이 경찰에 검거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들의 향정약품 불법판매 행각은 우연한 기회에 발각됐다. 전북경찰청 마약 수사대는 지난해 9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살 빼는 약을 먹고 정신을 잃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마약 수사대는 즉시 이 약을 회수해 감정을 의뢰했다. ‘펜디메트라젠’이란 향정약품이 살 빼는 약으로 둔갑돼 불법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경찰은 유통 경로 추적에 나섰다.
약을 구입한 성매매 여성들은 판매루트 중심에 있는 성매매 업자 A 씨를 지목했다. A 씨는 불법 유통 경로를 통해 향정약품을 대량으로 구매해오고 있었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판매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살 빼는 약이라고 속여 팔거나, 영업에 필요할 것이라며 효과를 과장해 구매를 유도했다.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은 마약류취급자가 아닌 자의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의 매매, 알선, 수수, 교부 등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마약이 자신의 손을 거쳐 간 사실만 있어도 위 법에 의해 처벌받게 되는 것이다. 4월 16일 기자와 통화한 마약수사대 관계자는 “성매매 여성들 대부분이 불법으로 유통된 향정약품이란 사실을 알고도 구매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이들 역시 입건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B 씨 등의 범죄행각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향정약품인 ‘펜토달소디움’을 이용해 성형 시술을 감행하는 등 불법 의료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B 씨 등은 불법 유통 사실을 알게 된 의사들이 병원을 그만두는 바람에 병원 명을 바꿔가며 무려 7개의 의원을 차려 영업을 계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불법 판매해 온 향정약품 ‘펜디메트라젠’은 이전부터 비만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한 약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값이 저렴한 데다가 단기간에 근육을 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간 복용 시 폐성 고혈압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최고 23배까지 증가될 수 있어 의존성 높은 향정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대다수 의사들이 이 약물의 위험성 때문에 신중한 처방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B 씨 등은 이 같은 처방 절차를 생략한 채 주부 및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1만 6000여 차례에 걸쳐 9억 원 상당의 향정약품 54만여 정을 판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기자와 통화한 마약수사대 관계자는 “B 씨 등은 경찰이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 간호사를 그만두고 병원을 옮겨가며 영업을 해왔다. 사건에 연루된 자들은 자신의 혐의를 일부 인정한 상태다. 이들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 외에 약사법 및 의료법 위반 혐의도 추가될 것이다”면서 “현재 120명을 상대로 한 조사가 거의 완료된 상태다. 주부 및 성매매 여성들이 향정약품인 사실을 알고 구입했는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다행히 진료 차트에 상담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기 때문에 입건 대상을 어렵지 않게 구분해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