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상 수술 자국을 보여주는 성호경 씨.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검찰 청사 내에서 그것도 대낮에 벌어진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 성 씨는 검찰 수사관과 피고소인 간의 검은 커넥션하에 이뤄진 살인미수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성 씨가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사기사건의 피고소인이자 채무자인 A 씨(58)로 모 종교집단 간부로 있는 인물이다. 특히 성 씨는 살인미수사건이 자해사건으로 돌변한 이유에 대해 오래전부터 친분을 맺어오던 검찰 수사관과 A 씨의 검은 유착관계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성 씨는 자해했다는 허위사실을 공포하고 사건은폐를 시도한 수사관과 자신에게 흉기로 상해를 가한 A 씨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사건의 진실규명 및 이들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5월 24일 원주의 한 병원에 입원해있는 성 씨를 만나 자세한 내막을 들어봤다.
성 씨는 사건 당일 오후 2시부터 ‘75억원 고소사건’과 관련, 담당 검사실에서 한 시간가량 피고소인인 A 씨와 대질심문을 벌였다. 대질심문 도중 언성이 높아지자 담당검사는 “30분간 나가서 대화하고 오라”며 두 사람을 내보냈다. 성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A 씨가 화장실에 가서 담배나 피자고 했다. 6~7분 정도 얘기하면서 A 씨가 ‘지금 당장 돈을 줄 수도 있다’며 담배를 주고 불을 붙여줬다. 담배를 물고 소변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갑자기 주먹이 가슴으로 날라 왔고, 동시에 ‘푹’하고 칼이 들어왔다. 화장실 칸으로 대피해 칼이 꽂힌 채 119에 ‘칼 맞았다’고 구급요청을 했다. 그때 밖에서 ‘여주지청을 10년 동안 먹여 살렸는데 너 하나쯤 없애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성 씨의 옆구리에 꽂힌 20㎝ 길이의 흉기는 일반인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종류로 성 씨의 가슴과 얼굴 등에서는 폭행의 흔적이 발견됐다. 그런데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한 성 씨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사건이 애초부터 담당 수사관들에 의해 성 씨가 자해한 것으로 되어버린 것이었다. 성 씨가 후송된 직후인 오후 3시 45분경 성 씨의 보호자는 여주지청 담당 검사실 L 수사관으로부터 “성 씨가 여주지청 화장실에서 자해를 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또 같은 검사실 K 수사관은 성 씨가 후송된 병원 응급실까지 따라온 후 성 씨의 응급진료카드에 “환자분은 검찰조사 중 재판 상대방과 언쟁하다 자신이 칼날 5㎝ 크기의 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른 분”이라고 자해를 목격한 것처럼 허위기재토록 했다는 것이다.
▲ ‘자해’ 응급실 차트 기록 내용은 정확한 확인 없이 임의로 기술됐다는 주치의의 정정 사유서. |
성 씨로서는 자해가 아님을 밝혀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결국 4월 27일 오전 11시경 성 씨에 대한 감식이 이뤄졌고 수사관 2명과 성 씨의 보호자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결과가 공개됐다. “칼의 찔린 방향과 각도, 12㎝ 이상 들어간 깊이로 볼 때 자해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었다. 또 이틀 뒤 정신과 감정에서도 “자해(자살) 의도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성 씨는 애초 수사관에 의해 ‘자해’로 기재된 응급실 차트내용과 관련, 5월 12일 주치의로부터 ‘검찰조사 중 재판 상대방과 언쟁하다 자해했다는 내용은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나 정보 없이 임의로 기술한 것’이라는 정정사유서를 받았다며 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성 씨는 조사관들이 A 씨와 결탁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한 증거들로 대질 당시 A 씨 측근 두 명에게 방문증을 교부해 검사실 2층 복도를 왔다갔다하게 하며 망을 보게 한 점, 4월 29일 밤 9시 30분경 도난당한 응급차트 원본의 복사본이 여주지청에서 발견된 점 등을 들었다.
지난 5월 20일 고소인 자격으로 심문을 받은 성 씨는 A 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수사관들에 대해서는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해 자해로 몰고간 혐의(직권남용·직무유기)로 진정서를 제출, 현재 이들 및 사건경위에 대해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성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L 수사관은 “사건 직후 성 씨의 보호자가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조금 다쳐서 이송 중이다’라고 알렸는데 재차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에 ‘자해를 한 듯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당시 피고소인인 A 씨도 황급히 들어와서 ‘화장실에 누가 쓰러져 있다’고 전했던 터라 피살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A 씨와 오래 전부터 깊은 유착관계를 맺어왔다는 성 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L 수사관은 “개인적인 친분이나 교류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2000년 당시 특정 종교집단이 개입된 A 씨 사건을 수사하면서 정말 많은 애를 먹었다. 특정 종교집단과 골치 아프게 얽힐까봐 특별히 몸을 사리고 사건 관계자들과 개인적인 교류는커녕 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 유착관계라니 말도 안된다. 또 내가 이번 사건을 은폐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나. 내가 성 씨와 개인적인 악연이 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수사결과가 나오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게 L 수사관의 반박이었다.
현재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모든 답변을 일체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여주지청의 담당 검사는 5월 26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워낙 민감한 사건이라 수사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해줄 수 없다. 수사가 언제 마무리될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대낮에 검찰 청사 내에서 벌어진 칼부림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검찰 수사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