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 데뷔해 21년 동안 45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은퇴한 여배우는 벌써 76세의 노인이 되었다. 배우 은퇴 후 지금까지 동물 보호 운동에 앞장서며 “한국은 개고기를 먹는 미개한 나라”라는 말로 우릴 격분시켰던 그녀는 프랑스 극우 정당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전 남편을 “천박하고 독재적이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난봉꾼에 알코올 중독자”라고 묘사해 명예 훼손으로 벌금을 물기도 했으며 자신이 출연한 영화는 절대로 보지 않았다. ‘BB’라는 이니셜로 불리는 브리지트 바르도, 그녀는 천방지축이었다. 그 이미지는 영화에도 그대로 이어졌으며 백치미와 야성미와 글래머 바디가 결합된 이 ‘천상의 피조물’에 1950~60년대 남성들은 환호했다.
“난 정말 댄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망할 <엘르> 화보가 내 운명을 바꿔버렸다. 그때 그 표지가 로제 바딤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아니 부모님의 설득대로 영화 일에 뛰어들지만 않았더라도 난 훨씬 진실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말처럼 바르도에게 영화는 그다지 열망했던 일도, 배우가 된 후에도 그녀의 삶에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 시대의 영화가 요구하는 이미지를 타고났기에 ‘운명처럼’ 배우가 되고 스타가 된 사람이었다.
기업가였던 아버지와 부잣집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의 유복한 가정에서 발레리나로 성장하던 그녀는 16세 때 심심풀이로 모델 일을 하곤 했는데 이때 찍은 <엘르> 화보는 당시 23세의 감독 지망생이었던 로제 바딤의 눈에 뜨인다. 바르도의 부모는 배우가 되는 걸 반대했으나 뭔가 화끈한 일을 하고 싶었던 바르도는 자살 미수 사건으로 부모의 뜻을 꺾고 1952년에 데뷔한다. 그리고 1956년에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로 신드롬을 일으킨다.
여러 남자들 사이를 오가며 한껏 육체적 매력을 뽐냈던 바르도는 첫 장면부터 파격적이었다.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에 유럽은 물론 미국 관객도 탄성을 질렀고 35-23.5-35라는 과격할 정도로 아찔한 몸에 대해선 “신은 여자를 창조했고, 악마는 바르도를 창조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풀어 헤친 금발과 뾰족한 입 모양, 터질 듯한 청바지와 남성 셔츠, 섹시하게 피우는 담배 등 그녀의 스타일은 곧 젊은 여성들의 모방 본능을 자극했다. 영화만큼이나 사생활에서도 자유로웠던 그녀는 18세에 바딤 감독과 결혼했다가 5년 만에 끝내고 배우 장 루이 트랭티낭과 사랑에 빠졌다(이후 세 번 더 결혼했다).
영화 속 캐릭터는 한결같았다. 파격적 섹시함으로 첫 단추를 끼운 그녀는 그 어떤 영화에 출연해도 캐릭터보다는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었다. 장 뤽 고다르나 루이 말 같은 뛰어난 감독들과도 작업했으나 대부분의 출연작은 그녀의 섹스어필을 이용한 상업영화들이었다.
그녀는 1973년에 <돈 주앙>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해했고 1976년에 재단을 설립해 자신의 보석을 판 돈으로 동물 보호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내 젊음을 남자들에게 바쳤다. 이제는 내 안의 더 나은 부분인 지혜와 경험을 동물들에게 바치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결심이었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브리지트 바르도와 롤리타 신드롬>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BB는 스캔들을 일으키거나 시도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느낌대로 행동할 뿐이다. 배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사랑을 한다. BB에게 욕망과 쾌락은 관습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무엇이다. BB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함으로써 말썽을 일으킨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한 시대를 사로잡았던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 BB 이후 지금까지, 그녀를 넘어서는 ‘거침없는 섹슈얼리티’는 등장하지 않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